좌절모드,
삶은 암울하고 활동은 아득하다
20대 젊은 활동가들의 고민
랑 | 노동자의 힘 회원 |제 141호
우리는 지금...
편집실에서 먹고 살기 힘든 문제, 집안으로부터의 독립 등에 관해 20대 젊은 활동가들의 고민을 글로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그런데 이런 고민이 들었다. 사실 활동가들의 현실에서 가장 큰 고민은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같다. 나만 그런걸까? 모르겠다. 주변의 활동가들은 눈 씻고 찾아보기도 힘들고, 뭔가 해보려 해도 막막하고 선배들은 옛날에 얼마나 잘 나갔는지 얘기하며 우리에게 그것을 때로는 요구하기도, 불평하기도 한다. 나는 21세기에 학교에 들어갔다. 21세기 학번대 활동가들의 공통점은 무기력하고 패배적인 분위기에 휩싸여있다는 것이다. 한 학교 수준에서나마 투쟁도 성공해본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는 현실에 대해서 너무나 당연히 생각하게 되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지금까지 버텼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단한 일이라 자부하는 지경까지 왔다. ‘너무 심한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 동지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정말 그랬다. 많은 젊은 활동가들이 운동을 그만두며 나에게 던진 말은 그런 말이었다. “너 정말 대단하다. 혼자서... 여기까지 오다니...” 그 말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학생운동, 그 암울하고 참담했던 시절
학생운동을 하던 시기에 나는 학생회 대표자를 했다. 당시 학내 사안은 참 많았다. 정말로 신자유주의 흐름이 학내 곳곳으로 들어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활동가들은 없었다.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있었지만 다들 자기 자신이 기반한 대중공간 현안 사안에서조차 아무 힘도 쓸 수 없었다. 노무현 정권이 비정규악법과 각종 노동탄압 정책으로 노동자들을 옥죄고 있었던 시기에 나는 학생운동을 했다. 열사가 탄생할 때마다, 노동자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활동가들과 무엇이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논의에 논의를 거듭했지만, 밖으로 나가 앉아 있는 것 외에 학교에서 하는 것이라곤 자보 한 장 쓰는 것, 그것만으로 실천이라 자위하며 살아갔다. 그리고 난 뒤에는 학교 복도 끝에서 학내 활동가들과 깡소주에 담배 빡빡 피워대며 우리의 무기력함에 대해 한탄했다. 그런데 그것마저 그리운 시절로 다가왔다. 활동가들이 하나, 둘 떠나가더니 어느덧 졸업반이 되었을 시절에는 정말로 아무도 남지 않았다. 함께 활동하는 후배들을 겨우겨우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다보면, 후배들이 항상 던지던 말이 있었다.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우리는 할 수 있다’고... 그러던 후배들이 하나 둘씩 무기력함으로 떨어져나가고, 결국에는 나와 함께 술 한 잔 마시며 한탄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건 아니다’ 싶으면서도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별로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학내에서 우리가 손 놓고 마냥 그러고 있었던 건 또 아니다. 외면당하더라도 패배하더라도 질긴 놈이 살아남는다는 구호처럼 그렇게 끈질기게 조직하고, 투쟁하고, 깨지는 것을 거듭했다. 그리고는 나만 살아남았다. 그 때 그 시절에 함께 했던 동지들은 정말로 ‘그때 그 사람들’로 남았다. 그리고는 나에게 붙는 수식어는 ‘끈질긴, 독한, 열심히 하는’ 뭐 그런 것들이었다. 초기에 활동가가 되고자 마음먹었을 때 내가 바란 나에 대한 수식어는 ‘대중과 함께 하는, 잘하는, 꿈이 있는’ 활동가였다. 우습게도 혼자 살아남고 나니, 정말로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학교에는 후배 혼자 활동하고 있다. 그 후배를 보면서 한 번은 세 시간을 혼자 펑펑 운 적이 있다. 그 때 한 동지가 내게 “야, 니 후배만 그러냐? 요즘엔 다 그래. 요즘 학생운동 하는 애들 봐봐. 다 소수야. 뭐 그렇게 특별히 힘들다고 그래. 다 그렇게 활동하는 마당에...” 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나와 같은, 어쩌면 나보다도 더 심한 조건과 상황에서 힘들게 활동을 할 그 친구를 생각했을 때 울컥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적어도 ‘이렇게 하면 잘 할 수 있어’라고 충고조차 하지 못하는 내 상황이 한심스러웠다. 결국 그 친구도 혼자 남은 사실에 읍소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운동을 그만두고...
학생운동을 그만두고 상근 활동가를 결의했을 때, 내심 기대하는 점이 많았다. 이 조직에서 내가 정말로 많은 동지들을 만나고 배우고 또 그렇게 살아가야겠다는 기대감에 가슴까지 설레였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 또는 해야 하는 것이 뭔지조차 감을 잡기 힘들었다. 그냥 막막했다. 선배 활동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술자리에서 “00아 미안하다, 선배활동가들이 네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길을 잘 닦아놨어야 하는 건데...” 부터 “나이 들면 귀농하거나 어느 단체 대표 하거나 둘 중에 하나야. 그 밖엔 길이 없어” 라는 이야기까지... 너무나 다양했다. 그러면서도 선배활동가들은 내 나이 때 책을 몇 권 읽었고, 어떤 활동을 했다는 등의 무용담부터 진취적으로 제기하고, 자기계발에 힘쓰라는 충고까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이 이상하게 단 하나도 가슴 속 깊은 곳까지 들어오지 못했다. 그저 앞으로 우리 운동이 어떻게 될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만 깊어질 뿐이었다. 돈에 쪼달리며 사는 것도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고, 예전에는 무일푼으로 일했다고 그러니 너희 때는 좋아졌다며 말하는 선배활동가도 짜증나기 시작했다.
“그 땐 꿈이 있었고, 전망이 있었으니까 그랬겠죠. 지금 뭐가 있어요? 다 망해가는 판에!”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너무 우습기도 하고 그런 말을 하는 내 자신이 어린애 투정부리는 것만 같아 꾹꾹 참았다. 선배활동가들의 미안하다는 말도, 진심어린 충고도 이제는 그저 흘려들을 뿐이다.
진짜 고민은?
전망이 없다는 말에 흔히들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전망은 너 자신이 만드는 거다”이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레닌처럼, 체 게바라처럼, 맑스처럼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나는 그들이 아닌 걸 어쩌겠는가? 레닌이 아니더라도, 체 게바라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다면, 그런 거라면, 지금의 암울한 상황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면 당신들은 왜 못하는 거지? 누구에게는 신문좌파라고, 누구에게는 생디칼리스트라고 명명 짓기 게임에 빠져있을 뿐... 한마디로 입만 살아서 운동하고 있는 게 지금의 나다. 무언가에 짓눌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저 무기력한 상황에 빠져 있는 나에게, “해답은 네가 찾는 거야”와 같은 말을 한다면 정말이지 그런 말들은 시궁창에 박아버리고 싶다.
“답을 달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당신들도 모른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런 말은 하지 않으련다. 다만, 지금의 젊은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불가능할지라도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이다. 나는 사실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암울하기 때문에 투쟁이 자꾸 패배하기 때문에 우리가 전망을 찾지 못하고 꿈을 꾸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전망을, 꿈을 못 찾는 이유는 우리에게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보 전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건지, 그리고 그 일보 진전은 어떻게 해야 가능한 건지... 나는 그런 것들조차 답을 못 내리고 있다. 선배활동가들이 보기에 어쩌면 젊은 활동가의 투정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보일수도 있겠다. 어떻게 보이든 간에 나는 말하고 싶다. “버티는 것만으로 굉장한 거야, 대단한 거야”
이제 이런 이야기는 나를 더 힘들게 한다고...
“너 스스로가 전망을 찾아. 일상에서 너의 운동의 전망은 네가 진취적으로 나아갔을 때만이 가능한 거야”
이런 이야기는 나를 그만두고 싶게 만든다고... 사실 선배활동가들도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 아닌가?
“나도 답답해 죽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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