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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부안 코뮌, 자치천국을 꿈꾼다

나무 2005.09.01 13:13 조회 수 : 556

부안 코뮌, 자치천국을 꿈꾼다

핵폐기장 투쟁 속에서 놀랍게 단련되고 생각이 트인 주민들
반대만 하는 네거티브 운동 넘어 대안적 삶을 꿈꾸는 조용한 변화들

▣ 부안=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지난 8월14일 밤 11시 부안군 계화면의 살금 갯벌. 버스도 끊긴 시간에 주민 200여명이 밀물이 들어온 갯벌에 은막을 세워놓고 두런두런 모여앉아 다큐멘터리 <계화 갯벌 여전사전>을 보고 있었다. 제2회 부안영화제 마지막 행사로 열린 갯벌영화제. 영화는 새만금 간척공사로 조개가 사라진 갯벌에서 힘겹게 그레질(조개 캐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여성 어민들을 비추고 있었다.

44명 구속, 힘겨운 싸움이 끝난 뒤…

“자부심과 긍지! 나한텐 바로 그게 생겼어. 왜 핵폐기장 반대 투쟁이 한창일 때 노무현 대통령이 일개 부안군수한테 전화를 걸었잖아. 그렁께롱, 핵폐기장에 대통령이 힘을 팍 실어준 것인데, 우리가 못하게 막아부렀잖어.”

갯벌가 장금마을에 사는 정이동(62)씨는 부안 투쟁을 겪고 난 뒤 일어난 삶의 변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정씨는 특히 ‘자부심’과 ‘긍지’에 힘을 주어 말했다. 새만금 방조제가 완성되면 더 이상 갯벌 일을 못해 한평생 지킨 계화 갯벌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의 표정에는 낙천주의가 비쳤다.

부안 핵폐기장 반대 투쟁은 김종규 부안군수가 2003년 7월11일 갑작스레 유치 선언을 발표한 뒤 불붙었다. 주민 44명이 구속되고 157명의 전과자가 양산됐다. 그 무서웠다던 안면도 핵폐기장 싸움도 구속자 수는 13명이었다. 힘겨운 싸움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삶과 부안의 시민사회는 놀랄 만치 변했다.

“한마디로 주민들 의식이 깨었지요. 투쟁을 통해서 배운 거예요.”

1997년부터 부안에 와서 갯벌을 기록하고 있는 허철희 사진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외지인’이었던 그 또한 부안 투쟁의 격랑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부안의 자연이 좋아서 역사·문화 사이트인 ‘부안21’(www.buan21.com)을 열었는데, 별다른 부안 포털 사이트가 없던 때라 주민들은 이곳을 찾아 투쟁 소식을 나누었다. 그도 기자가 돼 기사를 썼고, 여러 인사들과 함께 새 매체 창간 준비작업을 벌였다.

△ 제2회 부안영화제의 마지막 행사로 열린 갯벌영화제. 밤늦은 시각임에도 200여명이 모였다.

<부안독립신문>은 그렇게 탄생한 지역 언론이다. 투쟁 당시 중앙과 지역 언론은 부안 주민을 님비에 빠진 폭도인 양 묘사했다. 고속도로 점거, 내소사 부안군수 폭행 등 폭력적인 모습만 부각했다. 수십 수백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국가폭력의 현장은 쉬이 지나쳤다. 이 상황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해줄 언론이 필요했고, 2004년 9월 군민주 신문으로 <부안독립신문>이 출발한 것이다.

부안 투쟁은 이렇듯 다양한 운동 영역에서 성과를 냈다. 부안영화제도 촛불시위 때 고양된 문화 역량을 이어가는 군민축제다. 부안 투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고길섶 <문화과학> 편집위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원래 부안 투쟁은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였어요. 주민들의 의견 수렴은커녕 군의회의 의결조차 없이 김종규 군수가 기습적으로 유치 선언을 한 거예요.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지키지 못한 군정에 대한 분노가 끓어올랐죠. 그러다 투쟁의 중반에 이르면서 운동의 주제와 영역이 확대돼요. 핵폐기장이 가지고 있는 본질성이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환경과 생태, 언론, 여성, 주민자치의 문제라는 점을 깨닫게 된 거죠.”

“태양광·풍력 발전소를 보급하라”

특히 2003년 7월26일부터 ‘반핵민주광장’이라고 불렸던 부안읍 수협 앞 도로에서 이뤄진 촛불집회는 ‘무식해서 당했다’고 생각하던 주민들의 산 교육장이었다. 촛불시위마다 포함된 촛불강좌에는 진보 진영의 명사들이 총출동했다. 최열·이필렬과 같은 환경·에너지 전문가뿐만 아니라 백기완·권영길·황평우·장하순·박홍규·홍성태 등 통일과 반전, 언론과 문화 인사들이 망라됐다. 주민들은 두 눈이 뜨인 듯 기뻤다. 주민들은 삶에 변화를 주었고, 운동은 다양한 영역에서 꽃을 피웠다.

부안 의정참여단은 핵 투쟁 때 시골 곳곳을 다니며 활약했던 ‘아줌마 홍보단’의 회원들을 중심으로 2004년 7월 설립됐다.

“처음에 들어가보니 의원들이 회의 중에 담배를 피우더라고요. 큰소리로 휴대전화를 받는가 하면, 답변하러 나온 공무원에게 반말하고…. 말이 아니었죠. 그래도 우리들이 방청하고 나서는 이런 게 없어졌어요.”

군 의원들의 ‘군기’를 잡는 데 성공한 의정참여단은 최근 부안군의 사회단체보조금 지원조례를 바꾸는 운동을 하고 있다고 최문희 총무는 말했다. 올해 새마을운동 부안군지회, 바르게살기운동 부안군협의회, 자유총연맹 부안군지부 등 3대 관변단체에 지원된 돈이 총 예산 3억5200만원 가운데 35.4%에 이르더라는 것이다. 사업 내용에 대한 평가 없이 단체의 운영비를 지원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지원액을 결정하는 보조금 심의위원회 15명 가운데 7명이 부안군청 공무원이라는 문제도 지적했다.

핵폐기장 문제도 반대하는 네거티브 운동에서 대안을 만드는 포지티브 운동으로 전환되고 있다. 오는 9월 첫 송전을 할 부안 시민발전소가 바로 그것이다. 3kW짜리 태양광 발전소가 부안 투쟁의 성지였던 부안성당과 원불교 부안교당 그리고 하서면에 있는 생명운동단체인 생명평화마중물 옥상에 설치된다. 시민발전소는 주민 출자를 받아 회사를 설립하고 바이오매스와 태양광, 풍력발전소를 보급할 꿈을 꾸고 있다. 이현민 사무국장은 “부안은 영광핵발전소에서 전기를 받아쓰고 있다”며 “핵이 아니더라도 부안이 지속 가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시적 문제에서 시작된 고민은 주민들 삶의 문제로 파고들어, 여기저기서 대안적 삶을 꿈꾸는 조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보안면에 사는 조미옥(36)씨는 될 수 있으면 마트 가는 일을 줄였고, 갈 때에도 비닐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장바구니와 함께 그릇을 가져간다. 그릇은 두부를 담아오는 용도다. 조씨는 “이젠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집안에 전기 플러그가 꽂혀 있는 걸 보면 뽑아놓는다”며 “자연에서 잘 뛰어놀라고 얼마 전에 컴퓨터도 치웠다”고 말했다. 유기농 소비자 모임인 ‘두리반’의 회원들도 대안 달거리대 만들기, 천연염색과 뜸뜨기를 하고 있다.

△ 8월14일 부안군 계화면의 갯벌 배움터 '그레'에서 열린 여성어민 토론회. 시민단체와 대학생들에게 개방되는 갯벌 교육장인 그레도 부안 투쟁 이후에 생겼다

주민들은 줄포면 농민회, 주민자치 참여연대, 변산 주민자치연합, 부안희망 등을 잇달아 만들면서, 통치의 대상에서 벗어나 정치의 주체가 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부안지역위원회도 ‘자생적으로’ 생겼다. 지난해 총선 때 반핵 진영이 지역 정서와 반핵 명분 사이에 고민하면서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하다가 핵폐기장을 주도한 정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지역구를 내준 데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다.

부안영화제 장소 놓고 팽팽한 싸움

부안의 주민들은 힘이 세졌다. 융성한 주민운동은 주민권력과 행정권력이 대립하는 이중권력 구조를 만들었다. 특이할 만한 점은 핵 투쟁을 통해 주민들의 지지를 얻은 주민권력의 헤게모니가 행정권력을 앞선다는 사실이다. 상당수의 부안 주민들은 아직도 부안군수를 ‘핵종규’나 ‘쥐새끼’라는 별칭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번 부안영화제 장소 문제를 두고도 주민권력과 행정권력은 팽팽한 싸움을 벌였다. 부안영화제 조직위원회는 군내의 유일한 문화시설인 부안예술회관 사용을 요청했다. 그러나 부안군은 ‘군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예술회관 운영조례를 들어 2년째 사용을 금지했다. 결국 올해 부안영화제는 변변한 음향시설도 없는 부안성당에서 진행됐다. 백종기 부안군 문화체육시설사업소장은 “반핵 성향의 단체가 정부를 비방하고 부안군을 폄훼하는 내용의 행사를 공공시설에서 진행하도록 놔둘 수 없다”고 말했다. 양쪽은 지난해 예술회관 문제를 두고 행정소송을 벌인 데 이어 현재는 군수의 업무추진비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 방식을 두고 소송을 진행 중이다.

‘진보 부안’을 꿈꾸는 주민권력은 아직 시험대에 있다. 절반 이상의 주민이 지속 추진을 원하고 있는 새만금 방조제 사업과 주민권력의 내부 민주주의 문제를 헤쳐나가야 한다.

김효중(41)씨는 2년이 다 돼서 줄포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계속되는 수배 생활로 아예 부안성당에서 부인과 아이 둘을 데리고 살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무언가에 정면 도전해본 것은 처음이었어요. 우리는 승리했고, 핵폐기장이 안 들어오리란 건 분명해요. 그런데 기껏 일상으로 돌아와보니 다시 출발점에 선 거예요. 아이들이 서로 때리고 싸우는 ‘전경놀이’를 하며 놀아요. 과연 내 삶과 가족부터 민주주의와 생명의 가치를 실현시킨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는 내 삶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김씨는 2년을 쉬어 잡초가 무성한 논과 밭을 바라보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주민권력과 행정권력의 동거

(유례 없는 부안군민의 핵폐기장 투쟁 경험-김종규 부안군수는 인터뷰 거부 )
면적 492.73㎢, 인구 6만8천명의 부안군은 서해안의 농업·어업·관광 지역이다. 이렇게 작은 인구에서 주민운동이 이처럼 융성한 사례가 없다.

2003년 7월1일 부안군 위도 주민들이 군 의회에 핵폐기장 유치 청원을 하자, 김종규 부안군수는 11일 전북도청에서 ‘깜짝’ 유치 선언을 한 데 이어 곧바로 14일 정부에 유치 신청을 낸다. 산업자원부는 24일 위도를 최종 후보지로 발표한다. 반면 주민들은 “우리가 뽑은 부안군수에 배신당했다”며 반핵부안대책위(핵대위)를 결성한다. 7월26일부터 반핵민주광장에서 매일 촛불집회가 열리고 초·중·고생들의 등교거부, 부안~전주 삼보일배 등 투쟁은 전 군민적으로 이뤄진다.

이때까지 부안의 진보적인 단체라 할 만한 곳은 부안농민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도뿐이었다. 하지만 투쟁의 구심체라고 할 만한 거대조직도 없이 투쟁 대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주민의 반발이 커지자 정부는 2004년 2월4일 ‘주민청원 → 예비신청 → 주민투표 및 본신청’을 내용으로 하는 신규 공모 절차를 발표해, 사실상 핵폐기장 터를 다시 선정하기로 했다. 주민들은 2월14일 독자적 군민투표를 실시해 92%의 반대 결과(투표율 72%)를 내놓았다. 사실상 위도 핵폐기장은 실현되기 힘든 것처럼 보였고, 주민들은 12월1일 ‘부안군민 승리의 날’을 선포했다. 이즈음 주민권력은 부안영화제, 의정참여단, 부안독립신문, 시민발전소 등으로 안착하기 시작했다. 주민권력과 행정권력의 동거 시대가 돌입한 것이다.

이런 이중권력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부안 행정권력의 수장인 김종규 부안군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김 군수는 응하지 않았다. 서면 인터뷰라도 해달라는 취재진의 간곡한 요청을 승낙했다가, 인터뷰 질문지를 보고는 “핵폐기장과 관련한 내용에 대해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다시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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