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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새만금이 서른아홉 젊은 각시를 데려갔다"

정편팀 2006.07.15 10:43 조회 수 : 560








"새만금이 서른아홉 젊은 각시를 데려갔다"
익사한 계화도 주민, '바다의 수호천사' 류기화씨













친정처럼 평화롭다던 바다, 바다를 그리도 좋아하더니만…. 고인이 된 류기화씨.
태풍 에위니아가 북상하면서 전국 곳곳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지레 겁을 먹은 농업기반공사는 수문을 죄다 열었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완료되지 않은 지난해 8월, 집중호우로 새만금 지역 농경지가 침수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쌀 수입 개방을 반대하는 '한미FTA 저지 범국민대회' 참석차 서울로 가고 있는 한 농민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고은식씨의 아내가 생합을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그만 익사를 했다"는 전갈이었다.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인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만날 때마다 고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지난 6월 6일, 계화도 포구에서 노랑조개 작업을 하던 자매님이 아닌가.

그토록 사랑하더니, 결국 바다로...

토란잎에 맺힌 이슬처럼 이마에 송골송골 짠 방울들을 달고서, 남편은 삽질을 하고 아내는 그물망을 잡아주지 않았던가. 작업이 끝난 그물망을 목선에서 트럭으로 옮겨 실지 않았던가. 그보다 더 아름다운 삶의 풍경이 어디 있겠는가.

고은식·류기화씨 부부는 누구보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바다를 사랑하다 보니 '바다의 수호천사'라는 닉네임이 따라다니기도 했다.







▲남편 고은식씨 초등학교 동창이다. 그는 허리에 묶인 그레만 둥둥 떠 있는 류기화씨 시신을 보트에 싣고 계화포구로 나왔다. 너무 참혹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며 소주잔만….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한창일 때 부부는 마치 죽어 가는 어머니를 살리려는 자식처럼 광화문으로, 대법원으로, 조계사로 새만금을 살리는 일이라면 그 어디도 마다하지 않고 쫓아다녔다.

장례식장으로 들어서자 마을 주민들과 친구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하나같이 천사 같은 기화씨가 죽었다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새만금 방조제가 서른아홉 살 천사를 데려갔다"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눈물을 훔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서는 걱정만 태산처럼 쌓아놓고 갈 때가 많았어. 방조제를 막으면 어떻게 사냐는 것이었지. 5월로 접어들면서부터 생합 잡히는 것이 급격하게 줄어드니까.

한날은 나한테 이런 말까지 하더라니까. '간병이라도 해서 살아야 할 것 같다'고. '올 겨울에는 붕어빵 장사를 하겠다'고 맘도 먹고 그랬어. 그랬던 사람이 이렇게 가버렸으니…. 인자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인 저것들은 어쩐디야. 불쌍해서 못 보겠어."


"누가 생합 잡으러 안 가겄어. 목구멍이 포도청인디."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동네 아줌마들. 누가 저들의 슬픔을 위로할 수 있을까. 방조제의 수문은 열리기라도 하지만, 새만금을 강행하고 있는 자들의 마음은 열릴 줄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례식장은 주민들의 성토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2.7Km 구간을 막아버린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끝난 뒤로는 밀물과 썰물이 개판이 되었단게. 지 맘대로 들랑날랑 헌다니께. 갯벌이 드러나는 시간도 지 맘대로고, 바닷물 수위도 지 멋대로여. 그레질은 뒷걸음질로 하잖여.

그레질을 하면 단단한 갯벌 다음에 물렁물렁한 갯벌이 이어지고, 그 다음은 발이 빠지는 갯벌이 이어졌는디, 방조제를 막음서부터는 단단한 갯벌 다음에 갑자기 바닷물이 드나드는 깊은 갯골이 나타난 거여."

"10일(월)하고, 11일(화)에는 수문을 모두 열어서 담수를 최대한 방류했다고 하더구먼. 그러자 그 동안 방조제 때문에 바닷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아서 드러나지 않았던 갯벌이 드러난 모양이여. 어민들한테는 좋은 기회였지.

화요일에 많이 잡은 사람은 27만원까지 벌었다고 해. 은별이 엄마(류기화씨)도 그날 그만큼은 벌었던 모양이여. 물막이 공사가 끝난 이후로는 하루 고작해야 2~3만원 밖에 되지 않았는데 횡재를 했다고 봐야지. 그러니 누가 생합 잡으러 안 가겄어. 목구멍이 포도청인디."

기화씨는 만날 때마다 바다가 친정 같다고 말했다. 그레 하나만 들고 나가면 10만원이고, 20만원이고 생합을 잡아 왔으니 그만한 친정도 없어 보였다.







▲지난 6월 6일 새벽 5시부터 계화포구에서 노랑조개 선별작업을 마치고 그물망에 조개를 담고 있다. 땀방울이 거룩할 수 있다는 것을 바다의 수호천사 부부에게서 보았다.

지난 11일에 어민들이 잡은 생합은 태풍 에위니아로 인해 민물이 갑작스레 호수로 들이닥치면서 염도가 낮아지자, 숨이 막힌 생합들이 갯벌 위로 올라온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그 생합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대피를 한 셈이었다. 기화씨는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새만금에 대해서라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자신이 아닌가. 새만금은 그만큼 기화씨에게 피붙이나 다름없었다.

"수문만 열지 않았어도..."

같이 생합을 캐러 갔던 동네 아주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 동네에 시집 와서 친언니처럼 지낸 동네 아줌마(박현숙씨). 망연자실한 눈망울이 촉촉하다. 누가 절망의 눈물을 강요하는가.
"새벽같이 일어나서는 밭일을 하고, 바다에 나간 것은 아침 여덟 시나 되었을 거여. 오늘은 수문을 열지 않아서 가슴까지 물이 차는 곳도 있었어. 20년 넘게 해온 대로 단단한 갯벌을 따라 뒷걸음질로 그레질을 하는데, 갑자기 깊은 갯골이 나타난 거여.

그러니 어떻게 하겠어. 소리 한번 못 지르고 허우적대다 바닷물 속으로 들어간 거지. 어제 수문만 열지 않았어도 그 갯벌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그곳에서 생합도 잡지 않았을 것인디…. 새만금 방조제가 은별이 엄마를 죽인 거여."

마을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모으자면 기화씨는 소탈한 사람이었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 시부모에 시숙까지 모시고 살았으니 속상할 때도 많았으련만, 그는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속이 상해도 바다에만 나가면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고 한다. 그런 기화씨가 죽었다고 장례식장에 모인 마을 사람들은 술잔을 들이키다 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밭에서 일하다가도 선박이 들어오면 부엌에서 선 채로 물 말아 시장기 때우고는 선별작업을 했지. 때가 되면 시부모님 저녁식사를 차려 드리고 돌아와서 새벽 1시까지 야간작업도 하고 그랬는디…. 그래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늘 낯꽃이 달덩이처럼 환혔는디….

바다한테 가서 먹고 살기가 힘들다고 하니까 바다가 데리고 가버린 모양이여. 저 죽일 놈의 방조제만 안 생겼더라도 서른아홉 살 젊은 각시가 죽지는 않았을텐디. 표만 얻으면 그만인 정치인들이 죽인 것이지…. 남편도 남편이지만 올해 여든 한 살인 시아버지하고, 고등학생하고, 중학생인 남매는 어쩔 것이여. 왜들 없으면 없는 대로 오순도순 살라고 하는디 훼방을 놓는지 모르겄어."






-이 글은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도 송고됐습니다.




2006-07-14 12:12:08 최종수 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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