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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전쟁을 통한 이익, 평화배당금 _ 심숀 비클러와 죠나단 닛잔


전쟁을 통한 이익, 평화배당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은 나불루스의 거리나 예닌 난민촌의 판잣집에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전쟁은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곳은 바로 무기, 석유산업의 지도자들이 모여 새로운 전세계적 자본의 힘에 대항하여 부활을 노리고 있는 다국적기업의 회의실이다. (심숀 비클러와 죠나단 닛잔)













중동 평화협상 과정의 전모가 밝혀지자 전문가들은 계속해서 당황하고 있다. 오슬로 평화협정 초기에 걸었던 낙관적 기대는 이제 절망으로 바뀌었다. 라빈 총리는 유대인 극단주의자에게 암살되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새로운 인티파다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의 상당부분을 재점령했다. 왜 이렇게 상황이 반전되었을까? 균열은 얼마나 깊은 걸까? 치료될 수는 있을까?


이 주제에 관한 대부분의 글에서는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에서 사용한 언어들이 반복되고 있다. 현재의 중동 사태는 또 한번 “지하드 vs. 맥도날드”를 증명하는 사례일 뿐이라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반복되었던 “종교적 근본주의” 대 “시장”, “배타적 민족주의” 대 “신자유주의”, “제3세계” 대 “제1세계” 논리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반화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대해 제3세계가 “반발”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확실히 이해하기는 쉽다. 팔레스타인인들을 포함하여 이른바 “남반구”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난 10년 동안 더욱 심각한 불안, 빈곤, 절망에 빠졌기 때문에, 그들이 분노하는 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북반구” 정부들, 특히 미국과 영국 정부가 갑자기 호전적이 된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이 정부들은 “지구촌”을 쉴새없이 찬양해왔다. 세계는 지금 국경개방, 자유무역, 자본이동이 필요하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그렇다면 왜 돌연 “우리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애국주의로 태도를 바꾼 것일까? 이들이 정말 “테러와의 전쟁”이 세계를 안전하게 할거라고 생각할까? 군사비를 증강하고 덜 개발된 국가들을 차례차례 공격하는 것이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을 “자유시장”의 신봉자로 만드는 최선의 길일까? 이들의 목적이 평화와 안정이라면, 왜 이스라엘을 유엔 결의에 따르게 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마침내 자신들의 국가를 가질 수 있도록 놔두지 않을까? 아리엘 샤론이 다시 요르단강 서안으로 쳐들어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평화를 위해 더 나은 해결책일까, 아니면 이번 무용담에는 평화와 안정이 진정한 목적이 아니기 때문일까? 부시, 블레어, 샤론의 머릿속에는 어떤 종류의 세계 질서가 들어 있을까, 그리고 누가 이러한 “질서”에서 이익을 얻을까?



“전쟁을 통한 이익”에서 “평화 배당금”으로


중동사태의 표면에는 “외교정책”에 관한 문제들이 놓여있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이면서도 종종 무시되는 원인은 자본축적, 소유권, 자본간의 갈등에 있어서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더 넓은 안목으로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잠깐 되돌아보아야 한다. 1970년대와 80년대 초기에는 무기공급과 고유가로 힘을 얻은 미국과 유럽의 여러 정부들의 후원으로, 거대 석유기업, 군수업체, 석유수출기구(OPEC)의 불안한 “무기달러-석유달러 동맹”이 세계 자본축적을 지배했다. 이 동맹의 주요한 축적 “메커니즘”은 당시 계속되던 중동의 “에너지갈등”과 “석유위기”였다. 축적과정의 논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유가가 상승하면 석유기업에 막대한 이윤이 돌아갔다. 또 유가상승으로 막대한 석유달러 수익을 얻은 OPEC의 정부들은 그 돈으로 다음 전쟁준비를 위해 비싼 무기를 구입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따라서, 중동은 전세계 무기구입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무기수출 시장이 되었다. 물론 거대 군수업체들은 이러한 협상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했고, 닉슨부터 아버지 부시에 이르는 미국의 여러 정부들도 마찬가지로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사실 공산주의와 싸우고, 중동을 분할지배하고, 자신의 기업친구들을 부자로 만드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으랴? 그것도 단 한번에, 돈 한 푼 들이지 않고서.



이 협상은 대단히 극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전세계 수많은 국가들이 유가상승으로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물가상승을 동반한 경기침체 현상)에 빠졌고, 도처에서 분쟁이 발생했으며, 심지어는 서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말까지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럼에도 무기달러-석유달러 동맹은 번창했다. 석유와 군수업체 동맹은 표 1에서 볼 수 있듯이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 전 세계 총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로 상승하고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 후에는 21%로 상승하는 등, 세계 최대의 수익업체가 되었다. “전쟁을 통한 이익”은 확실히 짭짤했다.


이 모든 것이 1990년대에 들어와 바뀌었다. 냉전이 끝나고 전 세계가 신장개업 분위기로 바뀌면서 무기달러-석유달러 동맹은 해체되었다. 그 대신, 고도첨단 기술산업과 기업 인수합병에 기반을 둔 “기술달러-합병달러 제휴”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전쟁을 통한 이익”, 민족주의, 분쟁 대신 “평화 배당금”, 해외투자, 신흥시장이라는 새로운 수사가 등장했다. 자본규제는 규제완화에, 보호주의는 민영화에, 그리고 유혈전쟁은 평화협정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확실히 2000년 말까지만 해도 기술달러-합병달러 제휴는 승리한 듯이 보였다. 표 1에 나타나듯이, 이 제휴의 총 수익률은 15%로 증가한 반면, 석유-군수업체의 수익률은 3%로 형편없이 떨어졌다.



세계로 확장한 이스라엘 자본주의



1990년대 들어와서 이스라엘이 복지-전쟁 국가에서 신자유주의와 지역화해를 추구하는 국가로 전환한 것은 이러한 세계적인 변동의 일부였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민간기업과 국가안보는 서로 협력적인 관계였다.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군사원조, 핵 전력 증강에 대한 암묵적인 승인, 폐쇄적인 전쟁 경제를 운영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대가로, 이스라엘은 주기적인 전쟁과 은밀하게 다양한 작전을 수행하여 무기달러-석유달러 동맹에 봉사했다. 1970년대 중반에 이스라엘의 군비지출은 GDP의 33%로 증가했으며, 이 중 대략 15%를 대미수입에 사용하고 나머지 18%를 국내에서 지출했다. 국방예산으로 차린 점심을 먹은 이스라엘의 거대기업들은 경제의 상당부분을 피폐하게 한 인플레이션 덕분에, 자신들이 주가를 조작한 주식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라 이익을 두둑이 챙겼다. 이러한 전쟁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복지지출, 시오니스트 민족주의, 상습적인 무력충돌로 사회적인 결속력을 다져야했다. 이러한 방정식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값싼 노동력이 이용되었으며, 비교적 전보다 나은 생활수준을 제공하는 한편 엄청난 무력을 사용하여 팔레스타인인들의 불만을 잠재웠다.


그러나 1990년대 초가 될 때쯤에는 숫자가 바뀌었다. 조지 부시가 “새로운 세계질서”를 선언함에 따라, 90년대 중반이 되면 이스라엘의 군비지출은 GDP의 10%로 뚝 떨어지고 무기수출은 곤두박질에 국내경제를 개방하라는 압력이 밀어닥치게 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반란을 일으켜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했다. 급격히 감소하는 전쟁이익과 비교해 볼 때, 인티파다를 진압하는데 드는 비용이 상승한 것은 엄청났던 것 같다. 방식을 바꿔야 할 시기가 분명했다. 적자만 보는 복지-전쟁 국가를 폐기 처분하는 의식을 치르고 나서 더 수익성이 높은 새로운 대안으로 초국적 신자유주의를 채택했다.


오슬로 평화협정은 물론 이 과정에서 정치적 선전용이긴 했지만, 그 이상의 목적이 있었다. 팔레스타인과 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다른 아랍 국가들과도 평화협정의 길이 열렸고, 이 협정들 덕에 아랍 보이코트가 끝을 맺었다. 그리고 갈등이 금새 해소되면서 이스라엘은 지구화의 주요 장벽인 자본규제를 철폐할 수 있었다. 분쟁 초기에는 자본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자본규제가 필요했다. 갈등이 해소되어 이러한 규제를 철폐할 수 있게 되자, 변동환율제 도입과 소유권의 지구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그 몇 년 사이 이스라엘의 선두기업들은 시야를 국외로 돌려 신흥 초국적 기업들과 제휴, 통합하는 일이 늘어났다. 이러한 통합의 증거는 압도적이다. 현재 외국 기관투자자들은 텔아비브 주식시장의 10-15%를 소유하고 있다. 주요 은행 중 하나인 하포알림 은행을 사들인 카니발 크루즈의 소유주 아리슨가(家)와 쿠르 재벌을 인수한 비벤디 시그램의 소유주 브론프만가(家)와 같은, 해외거주 “이스라엘인들”이 이스라엘의 최대기업들 중 상당수를 인수했다.


컴버스, 체크포인트, 암닥스, 테바 같은 이스라엘의 선두 첨단기술 기업의 대부분은 명목상으로는 이스라엘 기업이지만, 뉴욕 증권거래소에 주식이 상장되어 있으며 기업활동의 상당부분이 국외에서 수행하고 있다. 국내에서 창업하는 기업들 중 대부분이 세계적인 거물기업에 인수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 이른바 “inverted cannibalism(거꾸로 잡아먹히기를 바라는 것)”에 내몰려 왔다. 확실히, 이스라엘 기업분야의 전체적인 전망은 해외로 향해 있다. 최근 들어 수출이 GDP의 3분의 1까지 상승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이러한 현상은 대개 수출증가율에 반영되어 있었지만, 1990년대 초 이후에는 자본도 해외로 이동하기 시작하여 투자유출이 GDP에서 대략 1-2%를 차지하고 있으며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텔아비브 주식시장과 나스닥의 상호연관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표2에서 이러한 초국적 기업화의 결과를 뚜렷이 볼 수 있다. 1980년대 초 -0.3에 불과했던 상호연관성은 지난 5년 동안 0.8로 뛰어올랐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본축적의 80%가 국내가 아닌 전세계적인 첨단기술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자본가들은 국내에서는 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절하)를 통해, 세계에서는 축적을 통해 마침내 “새로운 중동”이라는 자신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게 되었다.



자국민을 포기하기로



그렇다고 해서 이런 변동이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쉬운 것은 아니었다. 자본주의 지배분파들이 점점 더 나스닥, 첨단기술 산업, 세계의 나머지 시장들에 열을 올리게 되면서, 국내와 지역의 “사소한 문제들”은 점점 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어쨌거나 문제는 자신들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어쨌든 이제 세계에서 축적을 해야지 국내는 더 이상 아니니까.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 보니 이 문제들은 “스스로 고쳐지지” 않았고 사소한 것도 결코 아니었다. 우선, 이스라엘의 지배자들은 기업이 받는 평화배당금을 진정한 평화와 혼동한 듯하다. 이들의 의도는 아파르트헤이트 분리정책을 본 따, 원래 영토의 절반밖에 안 되는 땅에 군대, 재정주권, 통화주권이 없고 물 사용이 제한되어 있으며 이스라엘의 인프라에 완전히 의존하는 반(半)자주적 독립체 “팔루스탄”의 우두머리로 아라파트를 세우는 것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지배자들이 유대인 정착촌을 그대로 놔두어, 팔레스타인을 마치 구멍마다 인종-종교적 시한폭탄으로 꽉 찬 스위스산 치즈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또 한 번의 인티파다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처방전이었다.


더 넓게 보면, 이스라엘은 이집트, 요르단과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다른 인접국들과 관계를 정상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여전히 고립되어 있었다. 주변국들과 외교관계를 떠나 무역과 투자교류를 했지만 규모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았고, 문화와 지적교류는 지극히 적었다. 이렇듯 비종교적인 유대관계를 맺지 못한 탓에, 이스라엘에 대한 종교적 적대감은 별다른 이의 없이 쌓여만 갔다.


기업이 받는 평화배당금 역시 국내에 더욱 심각한 불균형을 가져왔다. 이스라엘은 지난 10년 사이 산업국 중에서 상대적으로 불평등한 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첨단기술 산업 붐은 오로지 소수에게만 미소를 지었다. 상위 20%와 하위 20% 사이의 소득률 차이는 미국의 경우 10.6이었던 비해, 이스라엘은 21.3으로 증가했다주). 실업률이 10%에 달하는 데다 계속 상승중인 이스라엘에서는, 평화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번영을 가져다주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주) 1950년대 초에는 ‘사회주의’ 국가 이스라엘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에 속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상위 20%의 소득은 하위 20%보다 불과 3.3배 높았다. 특히 소득률 차이가 무려 9.5에 달했던 미국을 비롯한 ‘자유시장’ 국가들에 비하면, 이러한 성과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빨리 충고에 귀기울여 두 세대 동안 ‘미국화’한 뒤부터 이미 스승을 능가해버렸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스라엘 전체 인구에서 시온주의자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잠식되도록 지배자들이 방관했다는 것이다. 전체 총인구 600만 명중에서 현재 무슬림이 15%, 기독교도와 드루즈파 아랍인이 4%, 1990년대에 구 소련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15%(이 중 일부는 유대주의와 거의 관련이 없고 대다수가 약간의 시온주의 사회화 과정을 거쳤을 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팔레스타인의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 수입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4-6%다. 결국 전체 인구 중 대략 40%가 시온주의 국가건설에 제한적이거나 혹은 아무런 매력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나머지 60%의 사람들도 두 가지 점에서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 인종적으로는 (유럽계인) 아쉬케나지와 (중동계인) 세파르디로, 종교적으로는 정통파와 세속파로 분열되어 있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보통 더 가난하고 아랍인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는 있지만, 상당수가 군에 입대하지 않는다. 세속파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점차 확산되어 시대착오적으로 민족주의적 목적을 위해 죽고 죽이는 것을 기피하지만, 종종 더 협조적이다. 그러나 다수가 점점 개인주의적이 되어 결속력이 약한 까닭에, 외국인 혐오증에 사로잡힌 소수에 대항하여 함께 싸우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선두 기업들이 초국적이 된 그 만큼, 자신들이 기반을 두고 있는 국내에서는 불안정해졌다. 더욱이 이들은 무엇을 해야할 지에 대해서 생각이 명확하지 못했다. 세계적인 기업연대는 평화를 원했지만, 지구화정책 그 자체는 평화에 대한 전망을 암울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진정한 문제는 샤론도, 아라파트도 아니다



2000년 10월 두 번째 인티파다가 터졌을 때 시온주의에 대한 충성과 초국적기업이 되려는 열망으로 나뉘어진 지배자들의 대표인 바라크 총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했다. 두려움이 없어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놀라 (전면전은 고사하고) 게릴라전에서도 승리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걱정과 분쟁 때문에 힘들게 얻은 기업의 자신감이 무너질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바라크는 주도적이라기보다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적극적인 대응을 꺼렸다. 그러면서도 “유대인들”의 결속력이 무너질까 두려워한 그는 민주적이고 비인종적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후임자에게는 조금도 이런 주저함이 없었다.
아리엘 샤론은 집권하자마자 즉시 수사적인 압력과 군사적인 압력을 동시에 고조시켰고, 결국 요르단강 서안을 사실상 재점령했다.


많은 이들은 이러한 변화를 개인의 성격과 사상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들은 샤론이 절대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평화를 원하기는커녕 그는 항상 “Greater Israel(더 강력한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해 요르단강 서안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낼 계획을 갖고 있으며 지금이 그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훨씬 더 큰 그림을 볼 필요가 있다.


샤론이 집권했을 때에는 이미 신자유주의적 첨단기술 산업의 질서가 기운 상태였다. 세계적 범주에서 처음으로 그 징조를 드러낸 것은 과잉생산으로 일련의 위기가 촉발되어, 1997년의 아시아 위기를 비롯하여 러시아, 남아프리카, 브라질, 그리고 나머지 개발도상국들에서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유가가 1999년에 10달러였던 것이 2000년에는 30달러로 급상승하여 전후(戰後) 가장 오랫동안의 경제팽창에 대못을 박았다. 이미 주가가 극단으로 치달았던 나스닥과 여러 첨단기술산업 시장들은 주가급락으로 붕괴했고, 2001년 초에는 석유, 군수업체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강경파 정부가 백악관에 들어섰다. 요컨대 도처에서 운명의 반전을 예고하는 조짐이 보였다. 그리고 확실히,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자 첨단기술산업의 이윤은 뚝 떨어진 반면 석유, 군수업체의 수익은 상승했다.


이런 더 넓은 관점에서 본다면, “9-11”과 아프가니스탄 공격처럼 중동분쟁의 고조는 자본축적에 있어서 또 한번의 전지구적 변동의 일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두 거대 기업구조간의 새로운 투쟁이 이 과정의 핵심이다. 10여 년 이상 내리막길을 걷던 무기달러-석유달러 동맹은 이제 다시 한번 분쟁과 스태그플레이션을 꾀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확실히 정치적 분위기 또한 이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 경쟁에서 누가 승자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러한 변동으로 신자유주의적 국경개방, 첨단기술산업 성장, 국경을 초월한 합병에 사활을 걸고있는 기술달러-합병달러 제휴는 큰 손실을 입었다. 그리고 9-11의 충격에서 회복한 이 제휴의 유럽과 미국 대표들은 워싱턴의 이라크 공격 계획을 비롯하여 분쟁의 격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문제는 샤론이나 아라파트가 아니라, 전지구적 자본축적의 성격이다. 종교가 기층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어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석유-군수업체가 우세하게되면 분쟁과 폭력은 이스라엘과 중동지역에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축적을 시도하는 자들은 최소한 아직까지는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평화배당금을 받기 위해서는 정치적 안정이 필요하기 마련이고 이스라엘, 그리고 어디에서나 이 배당금을 받으려는 자들은 사태를 진정시키려 할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아마도 모든 이스라엘 정착촌을 점령지역에서 철수시키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일 것이다. 이 지역에서 계속되는 분쟁에 대한 주요명분을 제거하게 되면, 석유달러-무기달러 동맹과 종교적 근본주의는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Shimshon Bichler와 Jonathan Nitz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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