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수빅만'에 증폭되는 '반한 감정'
[집중분석] 한진重, 잇단 산재사고·다단계 하도급·일당 3달러…철거민 보상도 제대로 하지 않아
지난 7월4일 한진중공업의 조남호 회장이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이유는 "황무지와 다음없던 필리핀 수빅만에 70만평 규모의 조선소를 성공적으로 건립해 필리핀 경제에 기여했다"는 것이었다. 필리핀에서 지난 93년 대통령훈장이 제정된 이래 이 훈장을 받은 사람은 12명에 불과하다. 그런 가운데 최근 수빅만 조선소에서 산업재해가 빈발하고, 노조가 탄압받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제건설목공노련(BWI)은 지난달 1~8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국제 청년활동가 조직훈련 워크숍'을 개최했다. 국제 청년조직활동가 역량강화 교육의 일환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이다. 한국을 비롯해 말레이시아·인도 등에서 참가한 아태지역 노동활동가들은 모두 4조로 나뉘어 해비타트 재단의 빈민지역 주택사업 현장과 필리핀 제1의 건설회사로 알려진 EEI, 그밖의 지역공동체를 방문했다.
그들 중 한 조가 방문한 곳이 바로 알랑가포 수빅만이었다. BWI는 지난 3년 간 아시아에서 다국적기업의 노조를 조직하는 데 역량을 쏟고 있다. BWI가 필리핀에서 조직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곳이 한진중공업의 수빅만 조선소 건설현장이다. 이번 워크숍에 참가했던 건설노조는 31일 필리핀 수빅만 한진중공업 조선소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산재와 노조탄압 실태를 폭로했다.
필리핀에 뿌리내리는 '한국식' 다단계 하도급
필리핀건설연맹(NUBCW)에 따르면 수빅만 조선소 노동자들은 채용되면 먼저 1개월에서 3개월 간 훈련을 받는다. KC Tech(최근 Green Beach로 변경된 것으로 알려짐)라는 1차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은 노동자들은 수습기간이 끝나면 다시 2차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는다.
KC Tech는 한진중공업이 만든 기술교육센터에서 1기에 500명 정도의 하청노동자들을 교육한다. 한국에서 두 달 정도 기술연수를 받는 노동자들도 있다. KC Tech에 고용된 훈련생은 하루 일당으로 불과 150페소(약 3달러)를 받는다.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해고당할 경우 훈련비를 반환해야 한다.
필리핀 현지에 다녀온 건설노조 관계자는 "노동자들은 한진중공업의 푸른색 작업복을 입고 출퇴근을 하고 있지만 왼쪽 가슴에 부착한 소속회사는 각기 달랐다"고 말했다. 필리핀건설연맹에 따르면 건설부문의 경우 약 140여개의 업체가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데, 심한 경우 5단계까지 다단계 하도급이 이뤄지고 있다.
필리핀 노동법(Presidential Decree NO.442)에 따르면 사용주가 견습직을 채용한 후 6개월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현지 하청업체들은 정규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3개월 단위로 계약을 해지한 뒤 다단계하청의 다른 도급사업주와 계약을 맺는다.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조선·건설업종의 다단계 하도급이 필리핀 현지에 그대로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원청의 사용자성 회피는 결국 산업재해 등의 책임을 하청에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일주일에 한 명꼴 '산재 사망' 의혹
지난 7월 수빅만 조선소에서 일한 지 한 달 만에 폭발사고로 숨진 한 노동자의 아버지. 그는 "너무 억울하다"며 "밤마다 아들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
ⓒ 건설노조 |
"아들이 죽은 뒤 충격을 심하게 받았다. 매일 밤 아들을 생각한다. 아들이 죽은 뒤 하청업체로부터 아주 적은 보상금을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100만 페소를 준다한들 무슨 소용인가. 그곳(수빅만 조선소)이 그렇게 위험한 곳인줄 몰랐다. 너무 억울하다."
지난 7월 수빅만 조선소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작업 중이던 스물 네 살의 한 노동자가 숨졌다. 그는 약혼자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아들을 잃은 부모는 건설노조와의 인터뷰에서 "현장에서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진중공업은 위험공정을 개선하지 않았다"며 "심지어 사고 발생 이후에도 유가족에게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네지 않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사망노동자의 아버지는 “나는 20년 동안 건설현장에서 일했어도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았는데 아들은 조선소에 출근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차디찬 시체로 돌아왔다”고 비통해했다.
실재로 수빅만 조선소 산재사고는 몇 차례 국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문제는 현지 노조조차 정확한 산재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리핀건설연맹은 "공식적으로 2006년 5월 조선소 착공 후 현재까지 20명이 사망했고 비공식적으로는 70여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1주일에 1~2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워크숍이 진행되던 1주일 동안에도 무려 3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맹에 따르면 공사현장에는 안전난간대와 추락방지망과 같은 안전장비가 미비하고 개인보호구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맹은 지난 3월과 6월 두 차례 성명을 내고 산재사망 사고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명확했다. 한진중공업 현지법인(HHIC-Phils.Inc.)이 산업안전보건 국제기준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연맹은 이어 직업건강안전기준 위반 여부를 조사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구를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결성 움직임에 해고 잇따라
필리핀 노동자들은 수빅만 조선소의 이같은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지난 7월6일에는 한진중공업 필리핀 현지법인 노동조합(HHICWU) 창립총회가 열렸다. 필리핀건설연맹은 그러나 "노조 설립과 관련해 현재까지 해고통보를 받은 노동자만 14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회사측은 각 경비초소마다 노조 지도부 사진을 붙여놓고 출입을 막고 있는 상태다.
HHICWU는 △해고자 복직 △노동조건 개선 △임금인상 △인간다운 처우 △산업안전기준 준수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진중공업 현지법인은 “노조가 조직화사업을 중단하지 않으면 400여명의 노동자를 해고할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보상금 못 받고 강제로 쫓겨난 철거민
"정부는 2006년부터 한진중공업이 보상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아이들이 공부해야 할 학교도 없어졌다."(HHICWU 관계자)
한진중공업은 조선소 건립 이전에 수빅만에 살던 현지 주민들에게 △주거이전비용 보장 △고용안정 △지역경제 육성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공수표에 그쳤다. 필리핀에서는 국유지에 사는 민간인이 철거를 해야 할 경우 정부와 개발업자가 보상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2006년 4월 철거 이후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진중공업의 수빅만 조선소 건립 추진에 따라 지난 2006년 4월 주거지가 철거된 주민들은 현재 가스·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판잣집에 살고 있다. 건설노조는 이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
ⓒ 건설노조 |
철거당한 주민들 중 일부는 집을 제공받았지만, 건물에 균열이 발생하는 등 부실공사 의혹이 일고 있다. |
ⓒ 건설노조 |
현지를 직접 방문한 건설노조에 따르면 철거민들은 전기와 수도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산비탈에 판잣집을 짓고 살고 있다. 지역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아이들은 말라리아 등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상황이다. 노조 관계자는 "초기에 주거이전 장소를 제공받은 집단거주지 지역의 집들도 심한 균열로 붕괴직전이었다"며 "안전상의 문제가 있는 집들이 여러채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점점 증폭되는 '반한 감정', 연대 절실
"일을 열심히 해도 계속 빨리빨리 하라고 한다. 단 10분도 쉬지 못하게 한다. 식당 음식의 질이 너무 안 좋다."(수빅만 조선소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
"10개월 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다. 교통도 불편하고 임금도 너무 적다. 처우가 안 좋아 일하는 것이 만족스럽지 않다. 때때로 한국인 관리들이 머리를 때리기도 한다." (또 다른 노동자)
현지를 방문한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필리핀 노동자들에게 "한국말을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대답이 이랬다. "Pali Pali Sekya.(빨리 빨리 새끼야)." 박 국장은 "현지에서 반한 감정이 극도로 증폭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며 "한진중공업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고 싶다면 선진국 기업수준에 맞도록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설노조는 "수빅만 조선소 건설현장의 문제는 결코 필리핀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한국에 있는 노조가 필리핀 현지노조와 연대를 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건설산업연맹은 이번 워크숍을 통해 필리핀건설연맹에 수빅만 조선소 노동자 조직사업에 써달라며 후원금을 전달했다. 현지노조는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가 국제연대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 한진중공업의 수빅만 조선소는 어떤 곳인가
미군 해군기지였던 필리핀 루손 중부지역의 알롱가포 수빅만에 최근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한진중공업의 초대형 조선소가 세워지고 있다. 한진중공업이 약 7천억원을 투자해 짓고 있는 수빅만 조선소는 2006년 5월 공사에 들어가 지난해 말 1단계 공사가 완료됐다. 70만평 규모로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만 8천여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건설노동자가 1천여명, 조선업 관련 종사자가 7천여명으로 파악된다.
수빅만지역은 지난 92년 미군이 철수하면서 경제자유지역특구로 지정됐고, 한진중공업은 현지 '투자장려법'에 의해 8년 동안 세금면제 혜택을 받게 됐다. 이 지역 최대 외국인직접투자 프로젝트다. 한진중공업은 8만평 규모인 부산 영도조선소의 협소한 부지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수빅만에 조선소를 건립하고 있다. 영도조선소에서는 기술집약형 선박을, 수빅만 조선소에서는 대형 선박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수빅만 조선소와 관련, 국내 언론들은 대부분 '조선분야 국내 1호 기업인 한진중공업이 세계 일류조선소 발판을 마련했다'는 식으로 앞다퉈 보도했다. 하지만 언론이 다루지 않은 이면에는 현지노동자들의 산업재해와 열악한 노동환경, 주거지에서 쫓겨나 보상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필리핀 국민들의 삶이 존재하고 있다.
기사입력 : 2008-08-31 01:34:11
최종편집 : 2008-09-01 10:07:42
최종편집 : 2008-09-01 10: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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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의 참세상 기사보다 상세한것 같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