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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울학교 이티 감상문

멍청이 2008.09.15 13:09 조회 수 : 523


거의 최악의 영화였다.
하지만, 이 사회가 가진 역설적인 가치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볼만하다.

입시경쟁으로 파괴되는 교육, 입으로나마 이것이 문제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이 영화는 이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적 인식이 그렇듯이, 이 영화에서도 서로 섞여서는 안될 것을 섞어 놓는다. 그것은 '교육은 무엇인가'와 '학교는 어떠한 공간인가'라는 질문이다.

입시경쟁사회에서 시험을 잘 치르는 사람들이 인정받고 대접받는 것은 당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것이 바람직한 건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다. 그래서 그 구조를 승인하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인지 성적 이외의 다른 가치들도 중요한 것 마냥 이야기 하곤 한다. 예의 바라야 하고, 운동도 잘해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건, 성적이 좋으면서 예의바르고 운동을 잘해야지, 예의바르고 운동만 잘해서는 아무 소용 없다. 이미 가치는 서열화되어 있지만 마치 그렇지 않은 양 행동하는 것이 가증스러웠다.

설사 공차는 재주가 훌륭한 가치라 하더라도,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그 재주는 특권화 되고, 그 재주를 갖추지 못한 학생들을 소외시킨다. 어쨋든 이 가치의 인정도 다른 가치들을 깎아내면서 이루어 지는 것이었다. 같이 몸을 부대낀다는 것만으로 형성되는 끈적한 유대 또한 그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소외시키는 역할을 했다. 별다른 재주가 없어 체육시간이면 남는 공을 어설프게 갖고 놀던 친구들은, 보통 학급의 의사결정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었다. 이게 나만 겪은 특수한 고등학교 상황일까?
그리고 그런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공부를 잘하던 아이들이 운동도 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미 갖고 있는 아이들이 하나 더 가진다.

한편 나에게 체육시간은 꽤나 끔찍했는데, 내가 체육교과를 잘 못하는 걸 떠나서 똑같이 줄을 맞춰 서서 한 동작도 틀리지 않게 체조를 해야하고 발을 맞춰 같이 뛰어야 하는 것들이 힘들었다. 누군가 한 동작을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고, 위에서 그것을 시키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짜증과 분노가 같이 뺑뺑이 치던 그 아이에게로 돌아간다.

영화에서 '체육'교과가 축소되는 게 입시교육으로 인한 폐해로 언급되고 있다. 체육시간이 있던 시절에는 아이들이 즐겁고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던 것 마냥.
그 '체육'시간이 권위적이고, 전체주의적이라는 것은 영화에서 가장 밉상인 '차선생'의 입을 통해 제기될 뿐이다. 교육이 언어, 수리, 외국어 문제풀이로 환원되는 것은 문제이지만, 그 해결이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운동장에서 개개인의 체력적 차이를 무시한 채 모두가 똑같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뛰는 것이어야 할까? 이게 부당하다는 게 나에게는 상식인데, 저런 내용으로 영화까지 만들어진다는 걸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납득이 되나보다. 그런 생각에 한없이 불편해졌다. 이런 전체주의적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가 입시경쟁(개인을 개별화시키는)을 옹호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은, 입시경쟁 반대편을 전근대적 병영학교로 단순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입시경쟁은 당연히, 사람들을 개별화시키고 나아가 파편화시킨다. 내가 한 등수 오르면 다른 누구는 한 등수가 내려간다. 이런 현실 앞에서 공동체적 연대는 묘연한 향수 같은 것일게다. 영화는 그 향수를, 공부는 못하지만 의리는 있는, 주먹 좀 쓰는 '남자'들에게서 찾는다. 그 '남자'들이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 행사하는 폭력은, 선생이 아이들을 체벌하는 것과 비슷한 선상에서 찬양!!된다.(이미 저건 합리화가 아니다.) 영화의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는 세상은, 그런 것들이 되려 멋있어 보이려 한다.

고등학교를 다시 떠올려보면, 운동과 마찬가지로 공부 잘하던 아이들이 쌈 잘하는 애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많았다. 그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유대란, 역시 운동과 마찬가지로, 그 끈적끈적함에 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분리시킨다. 그 선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서 더욱 긴장되는 이런 날선 떨림은 중고등학교 내내 나를 괴롭혔다. 나를 어디에 위치시킬 것인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이런 떨림이 잘 느껴졌었다. 이 떨림을 잡아내고 재현한 유하씨, 놀라웠다.)

남자들이 여성을 지켜준다는, 특히 여성을 강간이라는 성폭력의 위험에서 구출해낸다는 저 환타지는 구역질이 났다. 사회적으로 강간에 대한 위협을 확대생산함으로써 여성의 행동을 제약하게 되는 효과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여성을 보호해주겠다는 영화속 관념은, 아이들을 보호하겠다는 선생과 그대로 유비된다.

세상에는 참 복잡다양한 관계가 있는데, 그것들을 쉽게 단순화시키곤 한다. 천선생과 차선생의 대립 사이에서 구도는 쉽게 이분되고 다른 논점이 소거된다. 입시경쟁과 병영학교의 대립으로 모든 차이를 삭제하고 나면, 선택은 최악과 차악의 논리 이상으로 펼쳐질 수 없다. 그나마 객관식도 보기가 2개에 불과해서야, 이건 5지선다형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다. 양편으로 갈린 공간 속에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반드시 무엇인가를 택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는 그 두가지 이외의 것을 사유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런 효과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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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폭력이 가지는 효과와도 동일하다. 적과 내가 명확하게 구분되도록 선을 긋는 행위는 그 자체로 정치적이고 어느 편에 속하든 세상을 그렇게 나누어진 시각 속에 가둔다. 촛불시위에서 폭력에 대한 논쟁이 그러했다. 집회에서 경찰의 물리적 폭력도 폭력이지만, 그 폭력 속에서 누가 나이고 누가 너인가를 구분짓는 행위에 집중하게 하는 것은 그 방식이 가지는 함의때문에 더 큰 폭력으로 작용한다.

사실 활동의 안에도 이런 것들이 많지 않나. 내가 선명해지는 것은 좋지만, 그 선명함이 다른 무엇에 대한 반정립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 반정립이 인민전선/민중전선의 기반일 게다. 이명박을 적으로 삼는 것에도, 최시중을 적으로 삼는 것에도 그렇다. 그들의 활동은 그래서 두렵고 끔찍하다.
하지만 이것들은 또 매우 작은 순간마다 벌어지곤 한다. 예를들어 이랜드 집회를 하다보면 박성수에 대한 증오심으로 순간순간 적과 아, 이외의 것들이 머리속에서 사라지곤 했다. 나를, 사람들을 그런 극과 극의 대립으로 몰고 가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폭력이다.(또 그 과정이 대부분 폭력으로 채워져 있기도 하다.)

 

근데, 반폭력은 현실에서 가능할까? 저 매 순간마다 그 폭력 너머를 사유할 수 있을까? 지금의 인간에게 그것이 가능한걸까? 다른식으로 주체화된 인간이 아니면 안되는 게 아닐까? 차라리 비폭력이 낫지 않을까? 내가 못하는 걸까? 내가 너무 흥분을 잘하게 타고나서 그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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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경쟁이든 학교병영체험이든 모두 같이 가지는 특성은 그 가치들을 내면화 시킨다는 점이다. 하지만 보다시피 그 두 가치가 잘 겹치지 않는다. 오히려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성적이 최우선이라면, 성적만 잘 나오면 되지 쓰잘데기 없이 복장.두발 검사를 왜 하는 것이며, 학교에서 친구들과 우정을 쌓고 사회성을 키운다는 허울 좋은 명목에 줄세우기는 어찌 이루어지는 것이냔 말이다. 그런 것들을 섞어서 학생들에게 내면화 시킨다. 사실 어느 쪽을 내면화시키든 상관 없을 테고, 중요한 건 학교가 그런 가치들을 공급시키는 역할을 하는 기구라는 점이다. 어떤 선생들은 자신들의 '교권'을 빼앗기고 있다며 과거를 향수하지만, 학교에서 내면화시키는 주된 가치가 옮겨갔을 뿐, 학교는 여전히 공적인 권력기구이다. 이런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세상은 가증스럽다.

세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영화를 탓하는 건 별로 도움될 게 없지만, 그래도 영화는 이 지긋지긋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도피해보고 싶은 이들을 겨냥하는 것도 있잖은가? 그래서 도피해보려면, 제대로 도피해주면 좋겠다. 최소한 서로 다른 질문을 겹쳐놓지는 말아라. 아니면, 보는 사람들이 제발 저런 내용없는 신파에 웃음을 주지 말고 철저히 냉소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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