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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전자 분회 조합원 권명희 동지가 운명하셨습니다.




 


‘이곳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일터 기륭 전자입니다.’라는 글씨 밑에서 조합원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제가 아이를 안고 주먹을 들고 있는 그 사진입니다. 그 사진 속에 분홍색 모자를 쓰고 있던 조합원, 기륭이라는 글자 밑에 있는 조합원이 권명희 조합원입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병 기운이 확연한 얼굴을 가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렵게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힘이 되는 건강한 얼굴이 아니라 암 투병을 하고 있는 얼굴을 보여 주기가 미안하다고 한 동안 병을 숨겼습니다. 그러나 조금 증세가 나아졌다고 용기를 내서 농성장을 찾아 온 날, 똑바로 얼굴도 들지 않았지만 이렇게 모두 함께 흔적을 남겨 놓은 조합원입니다.




 


권명희 조합원이 병을 얻은 것은 노동조합 투쟁을 시작한 후라고 알고 있습니다. 암이라는 치명적인 병명을 안 것은 불과 2년 전입니다. 4년 투쟁의 기간 중에 2년의 투쟁을 하다 얻는 병이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닙니다. 투쟁을 하다 얻은 병이 아닙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불법 파견 노예 노동의 억울한 한이 뭉쳐 우리 선량한 사람들 남에게 제대로 화 한 번 내지 못하는 그 마음속에서 아프게 뭉쳐 암세포 암덩어리가 됐을 것입니다.




 

‘일터의 광우병, 일터의 말기 암’ 비정규직 노동, 파견 노예 노동에 맞서 싸우던 기륭전자 분회의 숨은 조합원, 보이는 투쟁만이 다가 아님을 보여 주었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음에 맞서 분투하던 우리 권명희 조합원이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2008년 9월 24일에 운명하셨습니다.



 

너무 분합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너무 서럽습니다. 끝내 우리만 죽어야 하는 현실의 냉정함에 소름이 돋습니다. 그런데도 마지막 남은 10명만이 조합원인줄 아는 기륭자본, 파견 노동자들은 피눈물을 흘려도 옆집 개처럼 인지조차 하지 않았다는 기륭자본의 흉폭한 외면과 탄압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음을 양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마저 안아버린 지금 우리는 너무나 참담 합니다. 평생 외로웠고 노조를 통해 사람 사는 맛을 알게 됐다며 남편과 함께 농성장을 찾던 동지를 우리는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도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조신하고 조신했던 동지의 모습은 백합처럼 고결했습니다. 현장 농성장에서, 병원 침상에서 언제나 기륭 비정규직 투쟁의 승리를 염원했던 동지의 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는 동지의 명복을 심장에 새길 것입니다. 그 죽음의 한을 풀기 위해 더 한 층 눈빛에 힘을 담을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투쟁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의 승리를 반드시 동지의 영전에 바치겠습니다.



 

* 장례식장은 부천의 순천향병원입니다.

고인도 가족도 단촐한 집안입니다. 많은 분들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가시는 님의 마지막 모습이 결코 외롭지 않도록 많은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2008년 9월 25일

국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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