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계급의 헤게모니를 강화할 것인가? 하부 구조의 이행에 방점을 찍을 것인가? ‘대안 세계화 운동 이념과 전략의 국제 비교’라는 주제의 국제학술대회가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주최로 지난 5월29일 서울 동교동 린나이빌딩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국내외 진보 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3부로 나눠 진행된 이번 학술대회는 세계 각국의 경험을 비교하며 신자유주의 이후의 사회에 대한 조망과 대안 담론을 제시했다. 제라르 뒤메닐(Gerard Dumenil) 파리 10대학 경제학 교수는 제3부 주제 발표에서 “지금은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위기로, 강력한 대중운동을 통해 사회적 민주주의로의 타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토론에 나선 김정주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교수는 “계급투쟁에 앞서 금융화를 핵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의의 동력에 대한 일관된 경제적 분석이 우선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한국의 진보 진영에 여러 시사점을 던져주는 뒤메닐 교수의 주제 발표와 김정주 교수의 토론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편집자
자본주의 역사 전반에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의 위기도 이윤율 저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확장에 의한 폭발로, 헤게모니의 위기다. 계급 관계를 자본가 대 노동자로 보는 마르크스주의적 이분법도 잘못된 것이다.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관리자 계급(기업의 경영자와 행정부의 관료들)이 자리하고 있다.
자본주의 역사의 광범위한 시기는 세 개의 ‘사회질서’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20세기부터 뉴딜까지는 전통적인 부르주아 계급과 금융기관이 지배하면서 새로운 관리자 계급에게 조직 업무가 위임된 최초의 ‘금융 헤게모니’ 시기다. 뉴딜 이후 1970년대 말까지는 자본가의 이해가 담겨 있지만 관리자 계급과 대중 계급 사이의 타협이 이뤄진 ‘사회적 민주주의’(케인스적 타협) 시기다. 그 타협이 자본가의 욕구를 규제하던 케인스주의의 실패 이후 사회 최상층에서 자본가 계급과 관리자 계급의 동맹이 이뤄진 ‘2차 금융 헤게모니’, 바로 신자유주의 시기가 도래했다.
미국 경제의 지속불가능한 궤적
신자유주의는 상위 계층의 소득 복원과 증가를 목적으로 한 새로운 사회질서다. 자본의 자유로운 국제적 이동은 이러한 목적 실현에 기여한 신자유주의의 제국주의적 측면이다. 2007년까지 이런 노력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으며,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서 파괴적 위기를 초래했다.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중심인 미국에 영향을 미쳤고 신자유주의의 전세계로의 확산은 중요한 조정을 요구한다.
정리 한광덕 국내 편집장 kdhan@ilemonde.com
자본주의 역사 전반에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의 위기도 이윤율 저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확장에 의한 폭발로, 헤게모니의 위기다. 계급 관계를 자본가 대 노동자로 보는 마르크스주의적 이분법도 잘못된 것이다.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관리자 계급(기업의 경영자와 행정부의 관료들)이 자리하고 있다.
'대안전략' 국제학술토로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제라르 뒤메닐 교수 |
자본주의 역사의 광범위한 시기는 세 개의 ‘사회질서’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20세기부터 뉴딜까지는 전통적인 부르주아 계급과 금융기관이 지배하면서 새로운 관리자 계급에게 조직 업무가 위임된 최초의 ‘금융 헤게모니’ 시기다. 뉴딜 이후 1970년대 말까지는 자본가의 이해가 담겨 있지만 관리자 계급과 대중 계급 사이의 타협이 이뤄진 ‘사회적 민주주의’(케인스적 타협) 시기다. 그 타협이 자본가의 욕구를 규제하던 케인스주의의 실패 이후 사회 최상층에서 자본가 계급과 관리자 계급의 동맹이 이뤄진 ‘2차 금융 헤게모니’, 바로 신자유주의 시기가 도래했다.
미국 경제의 지속불가능한 궤적
신자유주의는 상위 계층의 소득 복원과 증가를 목적으로 한 새로운 사회질서다. 자본의 자유로운 국제적 이동은 이러한 목적 실현에 기여한 신자유주의의 제국주의적 측면이다. 2007년까지 이런 노력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으며,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서 파괴적 위기를 초래했다.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중심인 미국에 영향을 미쳤고 신자유주의의 전세계로의 확산은 중요한 조정을 요구한다.
신자유주의 내 사회계층의 최고 정점에서 자본가 계급과 관리자 계급 사이의 동맹은 대중 계급적 투쟁의 패배 위에 구축됐다. 상위 계급의 높은 소득(상당 부분 중첩되는 자본소득과 높은 임금)에 대한 요구는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와 세계화 안에서 극단적으로 추구됐다. 미국 최고 부유층의 소득은 제2차 세계대전부터 1970년까지 계속 축소되다가 다시 상승하고 있다. 노동자 상위 5%와 나머지 95%의 소득 격차도 크게 벌어지고 있다. 마침내 탈규제화와 무제한 혁신이란 맥락에서 ‘허구성’(fictitiousness)을 갖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이로 인해 자본 축적 경향이 감소하면서 국내 부채와 무역적자는 다른 국가들의 자금 유입과 결합하며 미국 경제의 지속 불가능한 궤적을 그려냈다. 오직 미국의 국제적 헤게모니만이 이러한 궤적의 지속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지속 불가능한 궤도는 상위 계급의 점증하는 소득과 강력하게 연관돼 있다.
이러한 역사적 궤적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은 신자유주의적 계급 목적과 양립할 수 없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신자유주의를 넘어 현대 자본주의 역사의 네 번째 사회질서인 새로운 체제를 확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대안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와 유사한 사회적 타협이다. 자본가 계급의 이해가 주요하게 관철되지만 관리자 계급의 리더십하에서 이뤄지는 대중 계급과의 타협이다. 중도 좌파적 대안이 될 것이다. 1940년대 계급 타협이 왼쪽으로 이루어졌던 것은 대중 투쟁과 전쟁의 영향이다. 위기의 심화와 강력한 대중운동의 압력만이 그러한 구성을 강요할 수 있다. 반대로 관리자 계급의 리더십하에 자본가 계급과 이루어지는 타협이 이뤄질 수 있다. 중도 우파적 대안이다. 대중 계급이 약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대중운동 약해 상층 타협 가능성
대중적 리더십은 높은 수준의 의식과 조직을 요구한다. 대중적 리더십을 새로운 부르주아적 관리자 계급으로 ‘대체’했던 역사적 경향성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철저하게 재정의된 정치적 가이드라인과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궤적에 대한 수정은 힘들며, 특히 새로운 금융 부문 구축과 생산의 ‘재영토화’는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새로운 사회질서가 확립되려면 세계 질서가 지금보다 훨씬 더 다극적이어야 한다. 다극적 세계 내에서 좌파의 사회적 실험이 가능한 공간들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경우에서처럼, 위기와 사회적 투쟁의 가장 강렬한 국면을 넘어 새로운 사회적 타협이 어떻게 상위 계급에게 더 유리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지금은 대중운동이 약하고, 관리자 계급에게 사회적 타협을 강제할 힘도 없다.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상층 계급끼리의 타협이다.
대중운동 약해 상층 타협 가능성
대중적 리더십은 높은 수준의 의식과 조직을 요구한다. 대중적 리더십을 새로운 부르주아적 관리자 계급으로 ‘대체’했던 역사적 경향성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철저하게 재정의된 정치적 가이드라인과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궤적에 대한 수정은 힘들며, 특히 새로운 금융 부문 구축과 생산의 ‘재영토화’는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새로운 사회질서가 확립되려면 세계 질서가 지금보다 훨씬 더 다극적이어야 한다. 다극적 세계 내에서 좌파의 사회적 실험이 가능한 공간들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경우에서처럼, 위기와 사회적 투쟁의 가장 강렬한 국면을 넘어 새로운 사회적 타협이 어떻게 상위 계급에게 더 유리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지금은 대중운동이 약하고, 관리자 계급에게 사회적 타협을 강제할 힘도 없다.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상층 계급끼리의 타협이다.
[반박토론] 계급투쟁보다 체제위기 분석이 우선
김정주/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경제학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 경제 위기를 바라보는 뒤메닐 교수의 관점은 다소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그는 이번 위기의 원인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불가피한 이윤율 저하로 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위기라고 본다. 이처럼 뒤메닐 교수는 계급 분석이 가진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이분법적 구분에 반대하면서 제3의 계급으로서 관리자 계급(managerial class)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도 <자본론> 3권에서 자본의 기능을 상당 부분 이전받은 새로운 계급에 대해 언급했으며, 실제로 20세기 초반부터 국가 관료를 포함한 이른바 관리자 계급이 광범위하게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요인에 집중해야
뒤메닐 교수는 케인스주의하에서 자본가 계급이 소멸하지 않은 이유는 대중적 계급들이 계급투쟁에 대비하지 못한 반면, 자본가 계급은 이에 대비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그는 경제위기 이후 자본주의의 미래는 강력한 노동운동을 통해 관리자 계급과의 타협을 이끌어내면서 대중 계급의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것이 좌파적 개혁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주/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경제학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 경제 위기를 바라보는 뒤메닐 교수의 관점은 다소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그는 이번 위기의 원인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불가피한 이윤율 저하로 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위기라고 본다. 이처럼 뒤메닐 교수는 계급 분석이 가진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이분법적 구분에 반대하면서 제3의 계급으로서 관리자 계급(managerial class)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도 <자본론> 3권에서 자본의 기능을 상당 부분 이전받은 새로운 계급에 대해 언급했으며, 실제로 20세기 초반부터 국가 관료를 포함한 이른바 관리자 계급이 광범위하게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요인에 집중해야
뒤메닐 교수는 케인스주의하에서 자본가 계급이 소멸하지 않은 이유는 대중적 계급들이 계급투쟁에 대비하지 못한 반면, 자본가 계급은 이에 대비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그는 경제위기 이후 자본주의의 미래는 강력한 노동운동을 통해 관리자 계급과의 타협을 이끌어내면서 대중 계급의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것이 좌파적 개혁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뒤메닐 교수의 주장이 수정주의적인 것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바로 이 점에서 그의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을 획득하지는 못하고 있다. 우선 20세기 초 이후 등장한 관리자 계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과연 현대자본주의의 경제적 동학과 관련해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과연 관리자 계급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자본주의 체제 내의 경제적 위기를 설명하는 데 전통적인 계급보다 훨씬 더 규정적인 역할과 의미를 갖고 있는가? 더 중요한 것은 계급 타협이나 국면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과연 무엇이었는가 하는 물음이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계급동맹에 대한 뒤메닐 교수의 주장은 분석이라기보다는 묘사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뒤메닐 교수의 주장은 신자유주의 국면을 설명하는 데에도 한계를 보여준다. 뒤메닐 교수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국면은 사민주의에 대한 자본가 계급의 대대적 반격과 계급투쟁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본가 계급의 반격이 왜 하필 금융화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자신의 수단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 사학자 로버트 브레너(Robert Brenner)의 설명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는 1960년대 이후 세계 제조업 시장에서 자본 간 경쟁의 격화, 그에 따른 가격의 상방 경직성과 이윤율의 지속적 저하,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쇠퇴가 금융화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국면을 초래했음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더 중요한 것은 브레너가 현대자본주의 동학을 분석하면서 놀랍도록 일관되게 유지하는 이론적 분석틀이다. 이런 점에서 뒤메닐 교수의 주장은 자본의 동학과 계급투쟁의 동학이 내밀하게 결합하지 못하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자본의 동학과 그것이 낳는 위기적 징후들에 대한 설명을 계급투쟁의 동학으로 대신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대항 헤게모니 구축 방법에 답해야
몇 가지 문제점에도 자본주의하에서의 계급 대립과 관련된 뒤메닐 교수의 주장은 위기 이후의 대안 모색과 관련해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 국면 속에서 목격했듯이 국가기구 내의 관료를 포함한 관리자 계급이 어느 계급의 헤게모니 속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자본주의 동학은 상이한 방향으로 결정될 수 있다. 이것은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경험에서도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은 관료집단은 자본의 논리를 스스로 내면화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충실한 집행자로 역할하게 됨을 목격할 수 있었다.
대항 헤게모니 구축 방법에 답해야
몇 가지 문제점에도 자본주의하에서의 계급 대립과 관련된 뒤메닐 교수의 주장은 위기 이후의 대안 모색과 관련해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 국면 속에서 목격했듯이 국가기구 내의 관료를 포함한 관리자 계급이 어느 계급의 헤게모니 속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자본주의 동학은 상이한 방향으로 결정될 수 있다. 이것은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경험에서도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은 관료집단은 자본의 논리를 스스로 내면화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충실한 집행자로 역할하게 됨을 목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가 기대하는 대안이 직접적인 혁명 과정을 수반하는 것이 아닌 점진적인 개혁의 과정이라면, 관리자 계급을 어떻게 대중 계급의 헤게모니하에 둘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본가 계급의 헤게모니에 대항하기 위한 대중 계급의 헤게모니는 어떻게 구축될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뒤메닐 교수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현 시점에서 최종적으로 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정리 한광덕 국내 편집장 kdhan@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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