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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일반 여성과 비정규직

멍청이 2007.09.20 12:10 조회 수 : 648

매듭 게시판에서 댓글 토론 중인 글인데.. 같이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요..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여성 노동권 쟁취 투쟁으로,
여성 노동권 쟁취 투쟁을 온 민중의 보편적 권리 쟁취 투쟁으로!


김 혜 진 | 사회진보연대 여성부장


출처: http://www.pssp.org/bbs/view.php?board=document&id=1449&page=1&category1=5





이랜드-뉴코아 투쟁이 진정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향한 투쟁이기 위하여


........이 투쟁에서 승리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의 투쟁(이하 ‘이랜드 투쟁’)을 통해 최근 대부분의 비정규직 투쟁과 마찬가지로 단지 ‘여성 노동자들이 많은 사업장의 투쟁’ 이상의 것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왜 갈수록 비정규직 투쟁의 상당 부분을 여성 노동자들의 싸움이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구조적 원인과 배경을 제대로 분석하고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홈에버, 뉴코아에서 투쟁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발언을 들어보면 그 대부분은 남편의 소득만으로는 부족해서 아이들 학원비와 가계 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일하게 되었다는 어려운 가계 형편에 대한 것이거나 남편이 부재한 상태로 실질적인 생계부양 책임자로서의 열악한 처지에 관한 것이다. 이 여성들에게 차이가 있다며 생계 ‘보조’냐 생계 ‘부양’이냐 정도이며 사실 그 차이마저도 결국 그녀들의 출혈 노동 없이는 가족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런 노동자들의 형편이 실제로 ‘안쓰러운 아줌마’들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바로 이 시대 ‘보편’적인 여성들의 모습이기 때문에 이에 동질감을 느끼는 대중들의 우호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랜드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이 이 시대 민중의 보편적인 삶이게 된 구조적 배경은 무엇일까.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여성에 대한 착취가 이루어지는지 그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과 이해가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여성


...... IMF외환위기 때에는 여성노동자들을 우선적인 해고 대상으로 삼아 남한사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본격화한다. 이것은 노동자가족의 생계가 남성 생계 부양자의 ‘가족 임금’에 의해 유지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삼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애초에 불가능한 ‘가족 임금’은 해고된 여성노동자들을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로 다시 노동 시장에 진입하게 했다. 노동의 불안정화, 빈곤의 극심화 속에서 대다수 여성들이 노동 시장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여성들의 노동은 여전히 뿌리깊은 ‘가족임금 이데올로기’로 인해 항상 ‘부수적’인 것, 즉 남성 생계부양자의 노동에 대한 ‘보충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자본은 노동 시장에서 비용 절감과 이윤 창출을 위해 ‘노동의 유연화’를 달성하는 데 이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자본은 남성에 비해 순종적이며, 노조를 조직할 경향이 더 낮고, 더 열악한 작업환경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 대상인 여성을 선호하게 되었는데 즉, 이런 면에서 여성의 고용이 확대된다는 말은 곧 저임금 서비스 부문과 비공식 부문으로의 고용 증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성 노동력은 전반적으로 ‘주변화’와 성별 분업구조에 따라 구축되었다.


특히 이랜드와 같은 한국의 유통서비스산업은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유통시장 개방에 따라 급성장했고, 노동시장의 변화를 주도해왔다. 한국정부는 UR 협상 이후 수도권 지역 유통시설 신축 허용, 할인판매에 대한 규제 완화, 외국인 투자기업 부동산 취득 제한 완화, 판촉사원 파견 허용 등 규제 완화 조치를 시행하면서, 90년대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재구조화되던 국내 유통산업은 더욱 대형화·독점화되고, 하이퍼마켓과 대형할인점을 중심으로 한 초국적 유통기업의 진출이 확대되었다. 이러한 유통시장 개방과 유통업체 간 경쟁 심화는 유통산업 고용구조를 상용직 중심에서 임시직 중심으로 전환하여 불안정한 고용계층을 확대시켰고, 특히 판매노동과 계산노동을 중심으로 여성 비정규직, 임시직 고용을 크게 증가시켰다. 여성 노동력 활용, 영업시간 연장을 통한 매출증대를 특징으로 하는 유통업의 활성화는 장시간 영업에 따른 시간제 노동력의 필요에 따라 기혼여성들의 분절화 된 노동시간을 활용하여 기혼 시간제 여성의 고용을 증가시켰는데, 이는 주부라는 지위로 여성을 이차적 노동자 지위에 가두는 가부장적 성별분업을 바탕으로 질적 저하된 고용형태에 여성을 배치하는 과정이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일부 여성의 성공적인 사회진출을 대표적 모델로 제시하지만 실상은 시간제, 임시직, 파견직, 특수고용직 등에서 여성 노동자의 고용을 확대하고, 육아와 가사 부담이라는 여성의 책임은 크게 변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유연한 노동력으로 적극적으로 여성을 활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의 노동을 수행하다가 해고당한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렇게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과정에서 여성이 어떻게 활용되고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에 처해지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하나의 사례다.


(중략)


‘반찬 값 벌러 온 아줌마’의 진실
- 여성 노동권을 쟁취하는 투쟁이 민중의 보편적인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이다!

이렇게 이랜드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수적 증가가 단순히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구조와 ‘가족 임금’이데올로기로부터 발생한 필연적인 결과였다면, 그리고 점차 확산되고 있는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서 자본의 전략에 대응하고 그것을 끝장내는 것이 노동자 운동의 과제라면 이제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를 쟁취해가는 과정에서 온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쟁취해갈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랜드 투쟁에서는 먼저 여성 노동자를 저임금과 유연한 노동이라는 ‘충격 흡수층’으로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분명히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대중적으로는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단지 심정적 안쓰러움이나 동질감을 넘어서 ‘왜 그녀들이 투쟁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분석과 구조적인 이해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가들이 비아냥대며 ‘반찬 값 벌러 온 아줌마’라고 하는 말은 바꿔 말하면 남편의 임금만으로는 반찬은 살 수 없어 따로 돈을 벌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진실이다. 이러한 그녀들의 문제가 왜 나의 문제이며, 우리의 문제인지에 대해 즉, 이 시대 민중의 보편적인 투쟁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대사회적인 쟁점을 만들고, 신자유주의의가 어떻게 민중들을 착취하는지에 대한 발언과 더불어 허구적인 가족 임금 이데올로기와 대결해나가는 것이 관건적이다. 남성 가장이 생계부양자라는 전제 하에 ‘부수적인 수입을 위한 여성의 유연한 노동’이라는 지위가 지금 그녀들의 투쟁의 원인이라는 점에서 이를 건드리지 않고는 고용안정과 같은 요구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랜드 투쟁은 남성 생계 부양자에게 종속된 부수적 수입의 여성 노동자가 아니라 여성 스스로의 권리를 위한 ‘여성 노동자 주체’를 형성하는 것에 고민이 모아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저임금, 불안정한 노동의 악순환에서 여성노동자들은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중략)


이랜드 노동자들의 지금의 투쟁은 이런 점에서 바로 보편적 투쟁이어야 하며 상징적인 싸움이 되어야한다. “비정규직으로 비참하게 살아갈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그녀들의 발언에서 이미 자신들의 투쟁이 향후 비정규 투쟁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대한 투쟁임을 직감하고 있다. 여성을 우선적으로 비정규직화하고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것은 결국 전체 노동자의 비정규직화와 노동의 권리 해체로 이어지고 있음을 투쟁을 통해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랜드 뉴코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가장 먼저 비정규직의 굴레에 빠지는 노동자들의 피맺힌 절규임과 동시에 가장 먼저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이 안고 올 전체 노동자들의 비참한 미래에 맞서 싸우는 오늘의 투쟁인 것이다. 여성 노동권에 대한 고민과 실천으로, 적극적인 연대와 투쟁으로 온 민중에게 불안정 노동과 빈곤의 굴레를 씌우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파열구를 낼 수 있는 승리하는 투쟁으로 만들어가자!








바닥♥ 그렇지만 생계부양자인 남성 노동자들 또한, 유연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는 현실을 잊지 말아야 겠지요. (07.09.17 12:43)





김동근 그렇지만 비정규직문제에서 '여성'문제를 놓치고서는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요.
병렬적으로 '남성노동자도 여성노동자도 강요받고 있어요'라고 해서는 그냥 '비정규직 철폐투쟁'이겠지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이에요. 어떻게 보는지는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전 예전에 같이 들었던 김진숙씨 강연에서 '비정규직 70%가 여성노동자인 상황은 남성들의 묵인이 없이는 불가능했다'라고 했던 말이 정말 와닿더라구요. 청이가 밥꽃양 얘기를 수다방에서 풀어놓기도 했지요. (07.09.17 14:18)댓글





바닥♥ 당부, 뭐 이상한 댓글일수 있겠지만..;ㅠ; 잡소리라면.......뭐..........살포시 밟아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저도 여성문제를 놓치고선 해결이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다만 댓글을 단 이유는노파심에서였습니다.; 음. 지금 이싸움이 왜 여성투쟁임과 동시에 비정규직 철폐투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저절로, 되는건 없습니다. 왜 남성들의 묵인이 왜 일어나게 되는지 알아보는 상황도 중요할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노동자라고해서 모두다 노동자 의식을 가지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후진적일수도 있고, 선진적일수도 있고 동요하는 의식을 가질수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절로 되는것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설득과 토론이 필요한것이지요. ktx여승무원의 싸움에 경우에서 자신들의 일이라고만 여겨 정규직 철도 노동자와의 연대를 그리 신중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지금은 ktx여승무원분들이 자신들이 비정규직이어서 이렇게 해고당한 것처럼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는 일 역시 ‘외주화’ 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며 다닌다고 합니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 드리며 철도 노동자들에게 연대를 호소한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철도 노조도 사측과 협상을 할 때 KTX 여승무원들의 문제를 논의한다고 합니다. (한노동자분이 김경욱 위원장에게 쓴 편지에서 인용한내용입니다) 어찌되었던 '남성'노동자!'들이 연대를 보내고있고ㅡ특히 화물연대의 운수거부운동?!연대를 보낼정도로 이싸움은 판이 커져버렸습니다.~ 그만큼 중요합니다.~~~ 어찌되었던 이렇게 싸움 열심히 투쟁하고 계시는 여성 비정규직 여러분 존경합니다!! (07.09.18 16:20)





김동근 정연의 글에서는 마치,
'여성노동자'들에게 노동자의식이 부족했던 것'만'이 문제였고, 그것이 해결되고나니 문제가 없어진 것으로 비춰지는데요... ktx승무원들이 자기들만의 문제인 것으로 생각해서 투쟁해서 연대를 받지 못하다가 '노동자성'을 찾으면서 '(정규남성)노동자운동'의 세례를 받게 됐다는 것처럼 읽혀집니다. 실제로는, ktx여승무원싸움에 남성노동자들이 연대를 했건 안했건 철도노조에서 논의하건 안하건 여성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구조에는 변화가 없지요.
ktx노동자들의 운동에 부족한 점이 있었던 것은,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정규남성)노동자 운동에게 여성노동자들이 중요하지 않았고, 조직이 안되어 있었다는 뜻도 되겠지요. ktx여승무원들의 싸움이 무조건 짱이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물론 아닙니다. 다만, 여성노동자들의 싸움이 '노동자들의 싸움' 혹은 단지 '여성인 노동자들의 싸움'이 되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바닥이의 글에서 '여성투쟁임과 동시에 비정규직 철폐투쟁이어야 한다고' 썼지만, 실제로는 '여성투쟁이 비정규직 철폐투쟁으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남성노동자들의 묵인이 일어나는 이유가 노동자 의식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구요.
논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글을 좀 삐딱하게 썼지만 일종의 막대 구부리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노동운동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노동운동과 페미니즘이 어떻게 통합적으로 갈 수 있을지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07.09.18 17:43)댓글





바닥♥ 난 노동자 의식이 부족했던것 만이 문제라고 하지 않았습니다만, 노동자 의식에 대한 비판은 여성노동자를 비판한것이 아니라 정규직 철도 남성노동자들을 빗대에서 한말입니다. 같은 처지가 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연대하지 않는 정규직 남성?노동자로 일컬어지는 부류에 대해 후진적인 노동자의식을 가졌다는 의미로, 그렇기 떄문에 저절로 만들수가 없다는것이고 여성노동자들이 남성노동자들에게 설득을 해야한다는 의미로 적은것인데 의미전달이 잘못된것 같군요. 그저는 그리고 여성투쟁이라고만 보는 시각이 있는거 같아서 비정규직 철폐투쟁이 되어야 한다라고 적어놨습니다만, 이미 이 이랜드 투쟁은 그정도로 판돈이 커져버렸다는것을 말하고 싶었던것입니다. 표현이 서툰점이 있었습니다
남성노동자들의 묵인에는 꼭 의식부족만이 있는것만은 아니겠지요. 사회적인 조건도 물론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07.09.19 12:32)





김동근 좀 더 깊이 얘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언제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07.09.18 17:49)





멍청이 후진적이거나 선진적인 노동자 의식이 존재하는 걸까요? 어떤 것을 선진적이라고 정의할 수 있고, 또 어떤 것은 후진적인 것일까요. 우리의 활동은 더 선진적인 활동이 존재하고 더 후진적인 활동이 존재하는 건가요?

저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그것의 흐름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다시 말해서 설득과 토론을 통해서 도달하는 어떤 '상태'에 대해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어떤 상태를 가정하는 것은 역사에 목적을 상정하게 만든다고 보는데요. 그런 방식들은 누군가를 수동적인 위치에 놓게 되고(대상화 시키고), 그것은 수동성을 일깨워줄 주체를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운동사회의 권위주의를 필연적으로 만들었다고 봐요.
KTX 노동자들이 택했던 방식들 중 어떤 것이 더 선진적이고,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처음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행동에 나서기 시작하는 그 순간의 흐름 - 오히려 그 흐름들에 주목하고 싶어요.
독일이데올로기에 많이 인용되는 문구가 있죠. 공산주의는 어떠한 상태가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관념속에서만 떠다니는 말들이라 잘 풀어지지는 않는데..

원래 논점에 돌아와서 보면, 저는 모순에 수많은 층위가 존재하고 그 어느 층위가 더 절대적이라고 보지 않아요. 어느 모순도 다른 모순에 복속될 수 없는거죠. 하나의 노동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가 존재하는 거라고 바라봐요. 마찬가지로 동성애자도 존재하고, 장애인 노동자도 존재해요. 하지만 여기에서 반드시 '노동자'라는 틀에 복속해서는 안된다고 봐요. 장애인은 장애인으로서의 다른 모순의 층위를 가지고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그안에서 또 여성장애인이 있고 남성장애인도 있어요. 그렇게 양분되지 않는 성적 정체성을 가진 장애인도 있을거에요. 또 그 안에는 장애인 이주노동자도 있겠죠. 그러니까 모순은 어느 한가지로 환원되지 않아요. (07.09.18 20:52)





바닥♥ 청이의 이야기를 들으면 후진적이거나 선진적인의식이 없다라고 들리는데. 전 후진적이라던가 선진적인 노동자의식의 예를 간단히 들자면 노동자들이 노조를 욕하는 한나라당을 경선에서 찍는다던가, 혹은 이주노동자들에대해 적대감을 품는다던가 이런걸 노동자들의 후진적인 의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당부이지만 의식만을가지고 노동자를 규정짓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청이씨의 발언처럼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말은 동의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상태에 대해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하시는데 어떤 일에있어서는 잘못된것은 반성하거나, 다시 피드백하는 과정은 분명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수동적인 위치에 놓는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정세를 판단해서 자신이 스스로 극복해나가는 과정입니다. ktx여승무원들이 수동적으로 남성노동자들에게 연대를 호소해야했다 라고 하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스스로 효과가 없어보이는 방향이아닌 좀더 효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능동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상태의 흐름이나 이런건 굉장히 저에게 있어 추상적이어서 이정도로 코멘트하겠습니다.

저도 전 남성 노동자가 여성노동자들과 똑같이 피해를 받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여성노동자들이 남성노동자들에게 비해 더 가해지는 억압이 더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비정규직문제야 라고 환원시키려고 하는게아니라 상기시켜보기위해 적은것입니다 그리고 절대적이라고 하지 않았고 전 동시에를 분명히 강조했습니다. 여성투쟁임과 동시에 비정규직 철폐투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썼던 제 글을 보세요; (07.09.19 12:40)





판다 우선 바닥씨가 '생계부양자인 남성들 또한...'이라고 한데서 남성들이 으레 '생계부양자'로 생각되는 점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가장이 가족을 꾸릴 경우 여성이 '어쩔 수 없이'생계부양자가 되지만 여성과 남성이 한 가족을 꾸릴 경우 생계부양자는 으레 남성이지요. 남성이 곧 '가부장'이라는 얘깁니다. 줄여서 말하자면 그게 바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입니다. 그래서인지(?) 같은 정규직이라도 여성의 평균임금은 남성의 70%이고 같은 비정규직이라도 여성의 평균임금은 남성임금의 70% 수준입니다. ㅜㅜ

여성의 평균임금이 적은 것은 여성들이 '저임금 노동'에 배치되기 때문인데 (이것이 곧 성별분업입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여성의 노동은 남성 생계부양자의 노동에 부차적(남성 가부장의 수입으로는 불충분하니까 좀 보태는 정도)이라고 여기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담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IMF 구조조정 당시에도 사내부부가 있으면 '남자는 생계를 부양해야 하니까'라는 논리로 여성을 먼저 해고했었죠.

그리고 구조조정은 항상 노동시장의 주변을 차지하고 있는 탈숙련화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먼저 이루어졌는데 이 말을 들으면 구조조정이 얼핏 성별중립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주변'은 주로 여성노동자들이 차지하기 때문에, 그리고 여성을 노동시장의 주변에 배치시킨 자본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은 절대 성별중립적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별분업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탈숙련화된(즉, 덜 전문화된) 저임금 노동자부터 자른다'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본주의의 성별분업구조를 은폐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를 이랜드 대량해고에 적용해서 말하면, 자본의 성별분업구조에 대한 고민 없이 이랜드 투쟁을 그냥 '비정규직 철폐 투쟁'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구조조정의 성차별성, 여성노동이 부차화되고 가치절하되는 자본주의의 가부정성을 은폐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07.09.19 03:50)댓글





바닥♥ 그렇습니다. 저임금 노동자 부터 자른다 뿐만 아니라 요새는 전문직 (선생님) 비교적 고임금 노동자도 자르는 현실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성별 분업구조를 은폐하고 싶다던가 없다고 환원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일이 커져버렸네요. ;; 전 단지 비정규직 철폐투쟁이 되었을정도로 판돈이 커져버렸다는것을 상기시켜쓴것인데 ..... 여성투쟁임과 동시에라고 했던 제말을 상기시킨다면;;;;;(-_-;;;)부족하려나. (07.09.19 12:45)





판다 이 문제제기는 멍청이씨가 말한 '하나의 노동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에도 여러 다른 층위들이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노동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단순히 노동자에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 층위가 더 절대적이 아니다는 논의를 넘어 자본이 역사적으로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어떻게 배제되어 왔는지 그 구조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07.09.19 03:50)댓글





바닥♥ 동의합니다^^ (07.09.19 12:41)





김동근 음..내가 받아들인 청이의 의견과 판다와 바닥이가 받아들인 청이의 의견은 조금 다른 것 같군요..^^;; (07.09.19 18:16)댓글





김동근 그리고 제 덧글에 덧붙인 바닥이의 의견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이를테면 여성노동자들이 남성노동자들에게(이런 구분법을 쓰게 되어 계속 불편합니다만, '기존의 조직된 노동운동에게'라는 표현이면 좀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비정규직문제가 정규직에게도 닥칠 수 있는 문제다'라고만 말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지요. 스스로를 무성화시킬 것인가 하는 얘기입니다.
바닥이는 '노동자의식'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습니다만, 선진적 노동자의식(이를테면 비정규직-정규직 연결고리를 잘 인식하는)을 가지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적 관점이 결합된 노동자의식이어야겠지요. (07.09.19 18:22)댓글





김동근 선진화된 노동의식을 갖추기만 하면 성별문제(와 연관된 비정규직 문제)도 함께 해결될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07.09.19 18:23)댓글





멍청이 판다 / 네.. 동의하구요 ^^..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건 그런만큼 여성노동자들이 가지는 독자적인 특성을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거였어요. 모순은 평면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바닥/ 말로 풀어내는 게 부족해서 너무 추상적으로 적었는데, 전 선진 혹 후진이 존재하느냐 아니냐 이전에 그런 구분이 가져오는 효과는 무엇이 있는지 바라보는 거에요. 그런 구분을 통해서 누군가는 계몽되어야 하고, 더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게 되고 - 또는 이른바 선진화 된 어떤 상태와의 비교를 통해 다른 활동들이 가치매겨지고, 그것에 복속되곤 해요. 그 '상태'라는 걸 제가 쓴 것과 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은데.. 좀 많이 단순화 시키면 이런거죠. 한 30년 활동했고 어디 간부로 있는 사람이 매일 계급철폐를 외치는 '상태'가 있고, 한 노동자가 이제 막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활동을 시작한 상태가 있을 때 전자가 더 낫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거에요.

전 누구에게 가해지는 억압이 더 크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에요. 그 억압이란 게 하나로 존재하는 게 아니고 매우 다양한 억압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렇기에 어떤 억압이 더 큰지 비교할 수 없는 거구요.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일상은 남성노동자가 겪는 일상과 다르고, 그 안에서 공통점을 뽑아 둘다 노동자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여성노동자들만이 겪는 그 일상 자체에 대해 이야기 하자는 거지요.. '여성투쟁임과 동시에 비정규직 철폐투쟁이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러니까.. 좀 밀어부쳐서 이야기 하자면 차라리 '비정규직'을 빼고 '여성투쟁'이라고만 한다 해서 그것이 미완성의 운동이고 그런 건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이건 정말 밀어부쳐서 이야기 하는 거에요.) 제 논점은 여기에요. (07.09.20 12:07)






멍청이 조금 벗어난 맥락에서
역사적으로 어떻게 여성의 노동이 주변화 되었고, 혹 무평가 내지 저평가 되어왔는지를 바라보는데, 전 여기에서 자본주의 이전(이외라고 해야하나..)에 더 초점을 두고 싶어요. 그러니까.. 왜 자본은 여성을 택했는가..일까요..(부연하자면 더 '초점'을 두는 거에요. 어느 것을 선택한다는 게 아니라요..) 제가 쓴 글에 전제된 내용이에요.. (07.09.20 12:33)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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