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광장을 대중적 정치주체 탄생의 공간으로
[기고] 촛불집회에서 넘어서야 할 수많은 경계
백승욱(중앙대) / 2008년06월24일 17시48분
현 정세를 규정하는 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신자유주의하에서 ‘안전’의 총체적 붕괴에 대한 심각한 우려이고, 다른 하나는 ‘헌정적 위기’ 요소들의 확산이다.
미국 소고기 수입 협상 문제로 시작한 현재 저항의 배경에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문제라는 좁은 의미의 먹거리의 안전성 문제만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광우병 문제로 터져 나온 것은 광우병이 가장 직접적/가시적이며, 또한 ‘국가’의 ‘임무방기’의 가장 적나라한 측면을 집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 문제는 고용, 물가, 교육, 부동산 등등 생활 전반으로 확산되어 있는데, 이 모든 문제들은 사실 사회적 국가가 담당해야 하는 것들을 방기한 결과 등장한 것들로, 이는 신자유주의하에서 국가의 존재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안전이라는 문제는 광우병으로 시작한 문제가 신자유주의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는 중요한 핵심 고리가 된다. 안전은 상이한 조건에 처해있는 대중들이 서로 교통을 확대할 수 있는 고리이며, 이를 통해 연대가 가능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연대가 불가능해 질 수도 있는 쟁점이다.
현 상황에서 헌정적 위기의 요소들이 확산된다는 것은 그 쟁점이 1987년의 연장선 속에 있고, ‘1987년 정세의 자유주의적 포섭과 그 균열’이라는 문제가 다시 터져 나온 정세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87년의 정세는 ‘대중들의 해방은 대중 스스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대중들의 정치를 본격적으로 무대에 올린 계기였고, 그런 점에서 1980년의 연장이었다. 물론 실제적 과정은 그 ‘자유주의적 포섭’이라 할만한 ‘대의제’로, 즉 ‘대중들 스스로’의 의미가 대중들의 투표를 통해서, 그리고 부분적으로 그것이 부족하다면, 일부 NGO적 매개를 통해서라는 방식으로 협소하게 해석되면서 그 더 폭넓은 가능성이 봉쇄되었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2008년 촛불시위는 인민주권이라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2008년은 유예된 1987년의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총체적 무능력을 노정하고 있고, 그러다가 정말로 이 정권이 무너지고 대통령이 하야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대중들의 ‘공포’를 배경으로 하여, 더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뒤를 돌아보면, 야당이라고는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사기꾼들 뿐이고, 진보적 정당은 사분오열되어 있고, 아직도 ‘대중들의 정당’이라고 여겨질 수는 없는 상황에서 이 문제가 등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때로는 더 이상의 진전을 주저하지만, 그럼에도 이와 동시에 주권적 계기라 할 몇몇 제도의 도입으로 한정되지 않을 만큼 대중들은 이미 훨씬 더 앞서나가고 있는 측면도 나타난다.
따라서 문제는 이런 계기를 어떻게 더 전진적으로 추동할 수 있는가, 헌정적 위기에 대한 민중적 대안 모색에 어떻게 나설 것인가 하는 더욱 근본적인 부분에 있다. ‘우리는 어떻게 주권자일 수 있고, 우리는 어떻게 시민일 수 있는가?’, 현재와 같은 국가의 헌정적 위기의 확산 속에서.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보편적 정치이념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까? 문제는 단순히 대안적 집권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가 집권 하던 후퇴시킬 수 없는 대중들의 민주주의의 최저선을 확보하는 것이고, 그로부터 더 많은 민주주의를 작동시켜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앞서 말한 ‘불안전성’의 해결과도 뗄 수 없는 것이다.
헌정적 위기의 요소들과 삶의 현장에서의 투쟁을 결합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그러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어떻게 조직될 수 있을까?
우리는 2008년 상황과 1987년 상황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1987년은 각종 조직화가 시작되는 기점, 또는 이미 시작된 조직화의 노력이 분출하는 계기였다. 학생은 학생대로, 각종 직장은 직장대로, 지역은 지역대로, 조직화가 시작되었고, 1987년 정세는 각자의 공간에서 조직화의 성과가 광장으로, 다시 광장의 집회에서 촉발된 고양된 정치적 열기가 자신 공간에서의 새로운 조직화와 영향력의 확대로 이어진 바 있다. 그러나 2008년의 정세는 아직까지 광장의 열기는 광장에 남아있고, 삶의 각종 공간은 이 광장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의 소통만으로는 실질적으로 서로 다른 조건에 처해있는 ‘운동들의 운동’이 되지는 못한다.
우리는 2008년 상황과 1987년 상황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1987년은 각종 조직화가 시작되는 기점, 또는 이미 시작된 조직화의 노력이 분출하는 계기였다. 학생은 학생대로, 각종 직장은 직장대로, 지역은 지역대로, 조직화가 시작되었고, 1987년 정세는 각자의 공간에서 조직화의 성과가 광장으로, 다시 광장의 집회에서 촉발된 고양된 정치적 열기가 자신 공간에서의 새로운 조직화와 영향력의 확대로 이어진 바 있다. 그러나 2008년의 정세는 아직까지 광장의 열기는 광장에 남아있고, 삶의 각종 공간은 이 광장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의 소통만으로는 실질적으로 서로 다른 조건에 처해있는 ‘운동들의 운동’이 되지는 못한다.
1987년은 특히 7,8,9 투쟁의 결과가 보여주었듯이, 대중적 고양의 정세가 일정한 ‘조직적, 제도적’ 실천의 형태들을 낳았는데, 그 핵심적 특징은 대중들 자신의 주체화 조건의 근본적 전화를 개시할 수 있는 그리고 그 주체화 조건의 재생산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시작점에 운동이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광장과 생활공간은 서로 괴리된 것이 아니다. 광장이 소통과 연대, 그리고 정세적 집중점의 장소라면, 삶의 공간은 그 정세의 과잉결정 하에서 작동하는 구체적 변혁의 장소라는 점에서 중요한데, 실제로 대중들의 재생산 조건이 변화하는 곳은 이곳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광장의 모임의 집중성을 흩뜨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공간에서의 조직화와 재생산 조건의 변화의 시도가 광장의 모임과 결합될 때 촛불집회의 파괴력과 집중력이 비로소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포스트-1968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바리케이트는 다수로 존재하고, 그것은 특히 삶의 공간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것은 교육제도에, 작업장에, 그리고 가족제도에 있다. 그리고 그것의 변혁은 대중들이 스스로 해방적 주체가 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물론 그러나 바리케이트들은 단순히 분산되어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다. 동시에 이렇게 분산된 바리케이트는 국가를 매개로 강력하게 집중된 효과를 발휘한다. 삶의 공간에서의 변혁을 위한 노력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조건들이 없이는 곤란함을 겪을 것이며, 그럼에도 이런 삶의 공간들 속에서의 변혁을 위한 시도가 없다면 대중들을 정치의 주체로 만들려는 인민주권의 시도의 내용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헌정적 위기의 요소들과 삶의 현장에서의 투쟁을 결합하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우리는 더욱 많이 고민해야 하는데, 그것은 적어도 세 가지 요소들을 담아내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즉 첫째로 법이데올로기를 의문시하는 효과를 가져야 한다는 점, 둘째로 ‘노동자 시민’이라는 계기를 활성화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 셋째로 사상적 자기검열의 벽을 허무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하나의 구호가 이 모든 효과들을 한꺼번에 담아낼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고 서로 다른 운동들이 결합되어야 하겠지만, 우리는 <‘나는 이런 세상에 살고 싶다’ 선언자대회> 같은 운동이 아래로부터 조직되어 전국적 파장력을 갖게 되고, 그것이 ‘민중의 권리선언’으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그 세 가지 요소들의 효과들이 결합되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촛불집회는 아직 넘어서야할 수많은 경계들이 있고, 이 경계들을 넘어설 때 비로소 연대의 조건을, 그리고 해방적 주체의 탄생이 가능한 조건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대중들이 느끼는 분할선이 ‘안전’ 대 ‘불안전’이라면, 거기에 연대하기 시작하는 고리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불안전한’ 지위에 놓인 사람들이 누구인가. 비정규직, 그리고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한 정도로 이주노동자이다. 그럼 촛불집회의 목표는 그 참석자들이 ‘우리는 모두 비정규직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이주노동자다’라고 선언할 때, 그리고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들이 우리는 ‘노동자-시민이다’라고 선언할 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자신이 처한 삶의 불안전함에서 출발하여 연대하여 공동의 싸움을 해나가지 않을 때 자신이 거리에 나온 이유인 자신의 삶에서 느끼는 불안전함도 극복될 수 없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해방의 조건이 자신의 해방의 조건이 된다는 오래된 평범한 구호를 여기서 다시 확인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 경계를 넘어서려는 고민스러움이 없는 단순한 축제에 머물려 할 때, 해방의 계기는 오지 않을 것이다. 해방의 계기는 고통스러운 자기 전화의 과정이고, 그런 점에서 이데올로기적인 당연스러움의 경계를 뒤흔드는 것이다.
* 이 글은 6월 9일 사회진보연대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일부 수정해 축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