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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Negri-후기 알튀세르의 사고 전개에 관한 노트

멍청이 2007.04.08 01:12 조회 수 : 912

Notes on the Evolution of the Thought of the Later Althusser
후기 알튀세르의 사고 전개에 관한 노트

by Antonio Negri
정치학과 박사과정 정 인 경

"무언가 툭하고 부러짐 Something Has Snapped"

현재 노동운동의 위기를 스탈린주의의 탓으로 돌릴 수 없으며, 문제는 훨씬 깊은 것이다. 이 문제는 투쟁, 모순, 위기들로 이뤄진 노동운동 자체에 각인된 것이다. 따라서 스탈린주의의 폐기를 넘어 공산주의적 사고의 형성 과정과 그 내부의 위기가 수행하는 창조적이고 건설적 기능에 대한 이론적 분석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마르크스 이론의 핵심적 지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잉여가치와 착취이론 - 알튀세르는 마르크스가 산술적인 잉여가치 이론을 수립함으로써 착취, 이데올로기의 기능, 자본주의 사회의 복합성 등을 이해하고 비판하기에 부적절한 정치적 결론 유도했다고 말한다.
2) 국가와 정치/경제 투쟁간의 변증법적 관계에 관한 이론 -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에게 국가이론이 부재함을 지적한다. 즉 부르주아 국가에 대한 급진적 비판이 대중운동 속에서 권력의 수립이라는 전망,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변용에 대한 예비적 비판, 국가의 파괴와 상이한 사회 질서의 구축 사이에서 뻗어 나갈 대중적 실천에 대한 창조적 가설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혁명에 기능적이었던 이 위기가 지금은 혁명 가능성을 부정한다. 왜 위기들이 긍정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가? 그것은 우연적이고 외부적인 요소가 개입했기 때문이다. 철학적 실천의 연속성을 파괴하는 이 새롭고 우연적이면서도 현실적 요소들은 무엇인가? 어떻게, 왜 위기의 방향이 전도되었는가?

알튀세르의 철학적, 이론적 작업은 이러한 위기들의 방향전환이 야기한 실천과 이론의 공백상태에서 출현한다.

마키아벨리의 고독 The Solitude of Machiavelli

현실에서만이 아니라 실천과 개념을 조직하는 철학 내에서 "무언가 툭 하고 부러졌다". 이제 우리는 이론과 실천의 기획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고독한 상황에 있다.
정치가이자 철학자로서 마키아벨리는 항상 고독하다. 초기 알튀세르는 그를 정치가로 간주하지만 이후의 분석에서는 철학적 측면을 강조한다. "마키아벨리의 고독"에서 분석을 뒷받침하는 원리는 다음과 같은 역설의 발견에 있다. "그 조건이 전적으로 부재한 상황에서 새롭게 사고하기". 이것이 마키아벨리이다. 봉건적 장애로부터 자유로운, 새롭게 통일된 국가의 이론가로서 마키아벨리. 이것이 핵심은 아니다. 알튀세르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뒤집는다. 모든 조건 혹은 가능한 모든 조건이 부재한 상태에서의 새로운 사고. 따라서 마키아벨리의 사고는 "사자"의 형상이 아니라 "여우"의 형상이다. 모든 조건이 부재한 상황에서 혁명을 하겠다고 시늉하는 것, 특정 상황에서 수용될 수 없는 혁명적 진실만을 말하는 도발. "여우"는 금지된 진실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가능성에 대한 끊임없는 이론적 정의definition이다. 따라서 역사적 단절을 꾀하는 고독은 창조적인 시기상조가 된다. 이전의 알튀세르의 이론적 작업은 이제 완전히 역전된다. 이론은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균열과 역설, 공백과 위기의 지점을 드러낸다.

이후에 알튀세르의 작업은 마키아벨리에 대한 그람시의 해석과 완전히 단절한다. "Power"와 "the political"은 결정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현재의 위기는 공산주의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필요로 한다.

여백과 틈새 Margins, Interstices

"모든 가능성의 부재" 속에서 혁명적 실천을 전개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어떠한 조건의 공백에서 새로운 것을 사고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첫째, 실재적인 것을 사고한다는 철학에 대한 전통적 견해를 파기하는 것. 문제는 관념주의를 거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유물론도 거부하는 것이다. 둘째, 어떤 조건의 공백 속에서 새로운 것을 사고하는 것은 몸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여기서 스피노자를 살펴봄으로써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스피노자의 신학의 탈신화화, 유명론에 대한 재확인, 육체와 생활세계에 대한 특별한 이론. 특히 알튀세르는 "제 3종의 인식"에 관한 광범위한 토론을 제안한다. 네그리는 이 개념이 다소 신비스럽긴 하지만 알튀세르의 "몸을 통해 사고하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이것은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삶 속에 있는 보편적 개별성들에 대한 이해와 관련된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 개별성들이 보편적인 것은 어떤 '상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즉, 모든 개별적인 것의 추상 불가능성과 상수를 통해 파악 가능한 보편적 개별성.
그리고 마르크스로 돌아가보자. 추상과 구체의 동학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이해가 혁명적 기획의 이론적 분석과 어떻게 결합하는가? 산 노동의 특이성singularity과 추상적인 자본의 지배, 국가 사이의 관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모든 것이 변했다. 무엇이 변했는가? 이데올로기가 실재 세계의 전반으로 지배를 확장해왔다. 세계는 자본으로 포섭되었다. 그러나 탈근대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ISA의 힘의 확장은 저항을 유발한다. 어디서, 어떻게? 신체와 직접적인 생활에서이다. 신체는 자본주의 지배의 틈새를 조직한다.

오늘날 공산주의는 기획이 아니라 대항권력으로서, 특이성으로서의 저항이다. 국가와 자본 정당들에 대항하여 대중운동에 의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알튀세의 방향전환 Althusser's Kehre

후기 알튀세르에게도 사고의 전환이 발생하는 계기가 있다. 많은 철학적 방향전환이 그렇듯 연속성과 혁신은 서로 얽혀있으며 다만 혁신이 우세한 것이다. 알튀세르는 현실에 대한 징후적 독해를 계속함으로써 방법론 상 연속성을 유지한다. Reading Capital에서 마르크스에게 적용된 징후적 독해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현존 사회주의의 재앙, 자본주의 지배의 응집성에 대한 분석을 넓혀주었다. 혁신은 한마디로 유물론에 대한 재정의라고 할 수 있다. "생산관계"의 비판에 초점을 맞추던 것에서 새로운 "생산력"의 구성적 과정으로 초점이 이동했다. 이것은 1)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더 이상 구조적으로 관련짓지 않는 것이며 2) 역사발전에서 주체적 요인들을 강조하는 것이며 3) 기회의 "우연성"에 대해 더 많이 고려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념적 전화는 ISA에서 다뤄진 주제들을 심화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알튀세르는 ISA의 기능의 팽창 및 심화에 "postmodern"이라는 정의를 추가하였다. ISA에 대한 이전의 정의가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을 정의하도록 했다면, 이제 계급투쟁은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권력에 조응하는 지반을 갖게 된다.
사회주의적 "이행"에 대한 비판은 어떠한 목적론적인 전망도 거부하는 것이다. 여기서 혁명적 과정으로의 "여타의 경로"라는 개념이 출현한다. 이것은 말하자면 공산주의로의 우연적 경로이다. 오직 공산주의만이 실재적이다. 이것이 알튀세르의 이론적 실천에서 방향전환의 내용이다.

해후의 유물론 Aleatory Materialism

철학적 사고의 역사에서 두 가지 거대한 전통이 충돌한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적대적 전통은 관념론과 유물론이 아니다. "해후의 유물론"과 그 외의 전통들이다. 해후의 유물론과 권력에 대한 관념론적 정당화는 서구사상의 전체 역사 속에서 충돌해왔다. 에피쿠로스 이래로 이단과 투쟁을 육성해온 오래된 전통(해후의 유물론)이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마키아벨리부터이다. 이 때부터 철학과 과학, 인문학에서 이데올로기적 충돌이 개시되었다.
알튀세르는 변증법, 인간주의, 역사주의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이것이 유물론의 철학이다.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 비판을 실현한 것처럼. 따라서 이론적 실천을 조직하는 유물론 철학은 반변증법적, 반인간주의적, 반역사주의적 견해를 지지한다. 사실 변증법은 관념론의 한 형상에 지나지 않으며, 역사주의는 상대주의의 위장일 뿐이고, 인간주의는 부르주아 문화의 산물이다. 이러한 적들과 싸우기 위해 해후의 유물론은 역사를 구체적인 사실성historicity으로 드러내며 "인간"을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역사 속의 주체로 재정식화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특별한 철학적 정의에 도달하게 된다. 해후의 유물론에서 "과정에서 모든 결정론은 현존하는 경향적 상수의 우연적 변수로서 나타난다". 철학과 정치의 우위를 재확인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지점이다. 따라서 틈새와 주변에서의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대중운동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을 신화와 이행의 단선적 개념으로부터 해방시켜 보자. 존재의 우위-실천으로 현존하는 공산주의의 우위에 기초하도록 하자.

부정의 힘 The Power of the Negative

알튀세르는 "틈새"와 "주변"의 기능에 대한 직관적 인식에서 나아가 점차 부정의 힘, 즉 無의 공간과 차원에 관심을 쏟는다. 어떻게 무에서 힘이 발생하는가? 알튀세르는 남미 해방신학 연구를 통해 이를 보여주고자 했다. 먼저 알튀세르는 해방신학 안에서 몇 가지 단어들(먹다, 마시다, 입다, 살다)로 이루어진 "완전히 벌거벗은 유물론"을 얻었다. 가난은 긴급한 행동이 요청되는 기본이었다. 이 때 가난한 사람들의 실천은 더 이상 구원의 신학 안에서가 아니라 해방의 실천적 전망에서 정의된다. 이 실천은 비판적이며 구체적이고 혁명적이다. 여기서 실천적 입장으로서 해후의 유물론이 설명된다.

철학자 마키아벨리, 혹은 le jet de l'Etre

포이에르바하는 모든 새로운 철학은 새로운 단어를 통해 자신을 표명한다고 썼다. 그에게 이것이 "인간" 개념이었다면 알튀세르에게 새로운 단어란 운alea이다. 존재의 형상으로서 보편적 방식으로 새로운 정치적인 것을 창조해내는 마키아벨리의 철학적 가치가 드러난다. 후기 알튀세르의 사고는 마키아벨리의 철학에서 정의된 정치적인 것을 기초로 한다. 탈근대사회에서 ISA들은 하나의 이데올로기 사회를 구축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조직된 사회는 비었으며, 의미없고 완전히 무이다. 즉,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전체주의는 깨지기 쉽다. 이 사회의 존재론적 특성은 우연적인 것이다. 그 한계와 경계를 넘어 새로운 저항과 권력의 존재가 발달한다. 저항과 공산주의의 모색 또한 이데올로기의 기초 위에서만 전개되고 이 지점에서 존재가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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