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학교는 그동안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명예정치학박사 학위를 수여했고, 이번에는 현직 대통령인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학위를 수여한다. 그 학위 수여의 이유를 보자면, 이 나라의 ‘정치’에 공헌한 바가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위’는 교육기관에서 일정한 학업을 마친 것을 증명하는 일종의 자격이다. 하지만 원광대학교에서 수여한 ‘명예학위’는 그 학문적 성과가 보증되지 않는 허울만 있는 ‘학위’일 뿐이다. 아무리 훌륭한 ‘정치’를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학위 수여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정치학’으로서의 학문과 정치적 행위는 엄연히 서로 다른 영역이다. 정치적 행위가 결코 학문을 보증할 수 없다. 더군다나 원광대학교에서 학위를 수여한 세 명의 대통령은 재임기간에 대한 평가가 매우 다양하고, 그 평가가 현재진행형일 뿐 아니라 부정적인 평가도 많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에게 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학문이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다른 것의 수단으로 전유되는 한국의 학문 풍토를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엄밀한 학문 연구가 진행되지 않고, 취업훈련기관으로 전락한 대학에서 ‘학위’는 이미 학업을 보증하는 자격으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이렇게 학문이 무너져가는 교육현실에 대해 앞장서서 비판해야할 학교가, 오히려 형식적으로도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학위를 남발하는 것은, 학문의 붕괴를 더욱 부채질하는 태도이다. 돈을 주고 외국에서 학위를 받아 국내로 들어오는 사례에 대해 사회적인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었다. 원광대학교에서 명예학위를 남발하는 것이 이름 뿐인 외국대학 학위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일까?
특히 원광대학교가 그간 전․현직 대통령에게 학위를 수여한 속내를 짐작해보면 그 한심함이 더욱 심각하다. 학위 수여의 목적이 학교의 이미지를 좋게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원광대학교를 알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 이미지 제고를 다시 살펴보면 이른바 ‘경쟁력’ 있는 대학을 만들어 더 많은 이들이 등록하게 하는 것의 수단일 뿐이다.
학교는 교육기관이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해야지, 학교의 돈벌이를 우선해서는 안 된다. 또한 내용이 없이 외양만 꾸며 학교의 인지도를 고민하는 것은 현재 대학을 다니고 있는 구성원들에 대해서도, 또한 앞으로 원광대학교에 들어올 이들에게도 책임방기일 뿐이다.
명예학위의 수여가 특정한 부류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지난 2005년 한국인 명예학위 수여자 중 경력 파악이 가능한 14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내 대학 명예박사 최대 수여자들은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7개), 김종필 전 국회의원(6개), 김운용 전 IOC위원(5개), 민관식 전 교육부 장관(5개) 등 가장 사회적 권력이 막강한 지도층에 집중되고 있었다. 자기대학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대학의 속셈과 학위를 통해 자신의 경력에 학문적 권위까지 보태보려는 권력자들의 잇속이 서로 맞물린 것이 현재 한국사회의 명예학위 실태이다. 그리고 원광대학교는 여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있지 않다.
원광대학교는 학위의 남발을 통해 학교의 인지도를 높이려고 생각하기 보다, 현재 학교에서 학문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들이 더욱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 학문적 성과를 통해 사회가 학교를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 자신들을 교육기관이라고 생각한다면, 교육에 대한 최소한의 원칙과 정의를 갖출 것을 요구한다. 정치적․경제적 목적의 학위수여를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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