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중심은 중간 계층들이었다 | ||||||||||||
[대공황의 법칙들] 강자 더 강해지고, 기층은 원자화되고 | ||||||||||||
세계 체제가 대공황을 당할 때에 그 체제의 본래 법칙들은 가시적으로 노골화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대공황만큼 사회과학 공부에 도움되는 계기는 없을 것입니다. 대공황 때에 일어나는 일들을 유심히 지켜보기만 하면, 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심층적 원리가 무엇인지 당장에 알아차리게 되지요. 가장 중요한 법칙 2개를 열거해봅시다:
1) 지리적 측면 : 세계 체제의 핵심부에서는 '부양책'이라도 쓸만한 여윳돈이 있지만, 주변부는 물론 준주변부의 상당수 약체들은 운신의 폭이 훨씬 좁습니다. 예컨대 여름쯤 되면 디폴트에 빠질 위험성이 상당히 있는 라트비아나 우크라이나와 같은 유럽 연합 주위 준주변부의 약체들 같으면 자체적 '부양책'이 아니고 IMF과 유럽 연합의 '지원금'으로 지금 그 경제적 생명을 겨우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금년에 8% 쯤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듯한 앙골라의 경우에는 '부양책'이 문제가 아니고 아사 사태 대비가 문제지만, 그 앙골라에서 떼돈을 버는 노르웨이 석유 등 재벌들에게는 그게 별로 관심사도 아닌듯합니다. 대공황 때에는 약체들이 강자들의 먹이가 됨으로써 강자들은 보다 강해지는 것입니다. 예컨대 중국이 계획대로 5~6% 이상의 성장할 경우 일부 중국 대기업들에게는 이번 위기는 실로 기회가 될지도 모르지요. 어느 정도의 숙련도가 있는 비정규직도 위험하지만 위험도가 덜 되는 것이고, 대기업 정규직은 - 한국 경제가 아예 파산으로 치닫지 않는 한 - 소득 절감 정도의 고통으로만 국한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는 위기를 기회 삼아 현금 쌓아두기에 들어간 일부 기업에서는 기업잉여를 불려 '득'을 볼 수도 있고, 이번 정부의 망상적 토건 프로젝트로 득을 볼 기업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 사회의 먹이사슬이란 뭔지 다 보입니다. 일반적 통념과 달리 저항을 주도하는 이들은 꼭 '가장 어렵게 사는' 이들은 아닙니다. 1960년 4월, 1987년 6월의 데모 학생들도 상당수 중산층이었지만, 1917년 2월에 러시아 제정 정권의 타도에 앞장선 페트로그라드의 브보르그스카야 스토로나의 고숙련 금속공들도 그들의 적대자인 경찰들보다 월급을 더 많이 (한달에 60~70루블 내지 그 이상) 받았습니다. 1987년, 1996-1997년 한국 파업 운동도 고숙련 정규직 중심이었습니다. '맨 밑'의 고통은 아주 커도 조직화될 만한 여력은 많이 부족하고, 외국인 노동자나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에는 '파업'이라는 무기를 빼앗기고 만 상태입니다.
즉 최처 계층들이란 원자화된 상태에서 '생존 전투'에 몰두해 있는 만큼 지배자들에게 집단적으로 대들기가 아주 힘들어요. 반대로 임금근로자 그룹의 중위, 상위 부분을 이루는 광범위한 의미의 중간 계층들(중간/고소득 정규직 노동자, 공무원 노동자, 전문직 노동자 등)은 정치의식의 발달 기회가 많은데다가 조직화의 기회가 보다 많이 주어져 있고 집단 행동을 취할 만한 여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들은 선두에 나선다면 최저 계층들을 포함한 광범위한 '민중' 복합 그룹의 저항적 동원은 가능할 듯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등록금 마련하느라고, 없는 직장을 찾느라고, 결혼해서 살 집을 마련하느라고, 직장에서 안잘리려고 버티느라고, 저항이고 뭐고 신경쓸 틈은 없지요. 그게 바로 한국적 체제의 최강의 무기 중의 하나입니다. 여름 휴가 5주의 나라와 기껏해봐야 4~5일 쉬는 나라에서 '저항'에 나설 만한 근로자의 여력은 다를 수밖에 없는 법이지요. 한국적 체제란 일단 '딴 생각'을 할 만한 여유를 주지 않는 체제입니다. 그러나 절망적 정서가 어느 정도 고착되어 대중화, 보편화되면 대한민국도 어쩌면 그리스처럼 '젊은이들의 만성적인 불만 폭발의 나라'가 될 수도 있지요. 결국 현금 상황의 절망성을 어느 정도 깊이 인식하는가 라는 문제는 핵심적일 듯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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