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반신자유주의 연합’을 주장할 준비가 되어있나 | ||
‘반신자유주의’ 거론하기 전에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부터 합의해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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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진보논쟁’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 용어가 있다. 바로 ‘(반)신자유주의’이다. ‘신자유주의 반대’ 혹은 ‘반신자유주의’는 ‘진보대연합’ 논의의 준거로 활용되고 있다. 『민중의 소리』나 『레디앙』 등 진보적 인터넷 매체들에 연속적으로 실리고 있는 진보 논객들의 기고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사실은 반복해서 확인된다.
신자유주의가 뭐길래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 진보진영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이 분들의 주장은 기실 매우 공허하다.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정의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들을 듣다 보면, ‘반대’를 하긴 해야겠는데 도대체 무엇을 반대하란 말인가. 그 치열한 논쟁들을 추적한 끝에 깨닫게 되는 진실은 관련 논객들이 ‘신자유주의라는 것’을 무척 싫어하고 반대한다는 것밖에 없다. 이분들에게 신자유주의는 양극화, 한미 FTA, 재벌의 사회권력화, 고용 불안정, 노동의 사회적 배제, 시장관계의 심화 등 끝없이 열거할 수 있는 ‘사회적 악(惡)’ 중 일부를 가리키거나 전부를 포함하는 기표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항목들은 신자유주의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들이거나 심지어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공허하고 설명력을 가지지 못한다. 우선 양극화는 신자유주의 그 자체라기보다, 신자유주의의 한 양상일 뿐이다. 또한 시장관계의 심화나 고용 불안정, 노동의 사회적 배제 등도 신자유주의를 포괄하는 개념인 자본주의 그 자체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50대 한국인으로 대기업 경영자인 김철수씨에 대해 ‘정리해고를 선호한다’(양상)거나 ‘사람’(김철수라는 구체적 개인은 사람이란 개념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이라고 정의하는 행위는 비록 틀린 것은 아닐지라도 부정확하고 쓸데없는 짓이다. 진보진영은 IMF 사태 직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무지 때문에 국민경제에 대한 초국적자본의 공격을 ‘개혁적’이라고 평가하면서 심지어 갈채를 보낸 ‘전과’를 가지고 있다. 더욱이 ‘신자유주의 반대’를 가장 선명하게 주장하는 민주노동당이 가장 선명한 신자유주의자(소액주주운동, 사모펀드 등으로 상징되는)들과 때로 공조하는 모습을 보여 관전자들을 허탈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오류를 다시 범하지 않으려면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을 더욱 정확하고 설명력 있게 다듬고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집단적 노력이 절실하다. ‘반대’를 논의하기 이전에 반대해야 하는 대상부터 명확히 하자는 이야기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할 것인지, 편승할 것인지, 적극적으로 적응할 것인지는 다음 문제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의 결론부터 말하면 필자는 신자유주의를 ‘국민적, 국제적 차원의 금융화와 이의 사회·경제·문화적 효과’로 정의하자고 제안한다. 이 같은 정의의 장점은 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 나타난 다양한 현상들에 대한 설명력이다. 예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원배분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의 존재 양태(소유지배구조)를 ‘금융적 이익의 추구’가 가능한 형식으로 바꾸는 것을 금융화라고 부를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기업에서 물건을 생산해 거래하는 것을 넘어서 ‘기업 자체’(기업 경영권 시장의 형성)를 거래의 대상물로 바꾸었다는 뜻이다.(기업지배구조 개혁과 주식시장 자유화) 또한 이런 ‘기업 자체’의 거래를 국가 내에서가 아니라 국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한 조치를 국제적 차원의 금융화라고 명명할 수 있다.(주식시장 개방) 기업(경영권)을 구입한 뒤 비싸게 팔려면 구조조정으로 비핵심 부문과 노동자들을 처리해야 하며 이를 가능하게 만든 장치로는 비정규직, 정리해고 등의 제도가 있다. 기업 주식에 대한 금융투자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소액주주 운동이다. 금융투자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인플레이션이므로 국가는 재정정책(물가인상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을 점점 더 꺼리게 된다. 이 같은 ‘투자자 보호’는 한미 FTA 등에서의 투자자-국가소송제 조항으로 절정에 달한다. 민영화는 공기업을 주식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대다수 공기업들은 생활 필수품을 생산하니까 시장이 넓고 현금흐름도 양호한 데 이런 기업들을 민영화해서 사고팔 수 있게 한다면 얼마나 많은 금융적 이익을 누릴 수 있겠는가! 또한 연기금, 실업보험금 등 공자금을 국내외 주식시장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한 조치에 따라 한국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 금융시장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게 된 셈이다. 한편 이런 금융 중심 사회의 경우 저성장과 이에 따른 고용불안이 불가피하므로 복지제도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문화적 측면에서는 탈민족주의와 반집단주의, ‘웰빙’을 강조하는 문화상품들이 부상한다.(예컨대 ‘백수 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 고실업, 저성장 사회에 의욕적인 시민들이 ‘지나치게’ 많은 경우 그 사회는 지탱될 수 없다. 이처럼 1997년 IMF 사태 이후 한국에서 벌어진 일은 자본시장(주식시장)의 활성화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 경제, 문화 부문을 재조정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을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은행과 기업의 강제 이혼 1960년대 이후 한국은 국가-은행-기업의 ‘밀착’하에서 국가적 전략산업에 자금을 몰아주는 경제발전 전략을 고수해왔다. 재벌로 불리는 대기업 집단은 사실상 국가적 경제발전 전략의 단위였으며, 재벌 계열사들은 상호지급보증 등을 통해 시장 상황의 변화에 따른 긴급자금을 조달해왔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 한국의 기업들은 과도할 정도로 많은 자본을 고수익-고위험 대형 산업 - 예를 들면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 - 에 투자했다. 다행히 이런 투자 중 상당수가 성공함으로써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한국경제가 탄생했다.
그러나 IMF와 새로이 집권한 한국의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기존 시스템의 뿌리를 뽑았다. 우선 IMF는 한국은행법을 개정하도록 강요함으로써 국가의 경제개입을 봉쇄했고, 재벌에 대해서는 상호지급보증을 금지하면서 부채비율 200%를 맞추도록 명령했다. 동시에 은행에게는 BIS(자기자본비율) 8%를 제시함으로써 은행-기업간의 자금흐름을 축소시켰다. 이런 은행-기업 관계의 ‘결별’은 기업에겐 빨리 빚을 갚고, 은행에겐 대출금을 회수하도록 했으며, 각자의 경영권을 주식시장에 내놓는 것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은행과 기업은 강제로 이혼을 당한 결과, 주식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상품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상품의 새로운 구매자는 외국인 투자자들이었다. 기업·금융 구조조정과 함께 IMF가 요구한 것은 자본시장의 개방이었다. 정부는 1998년 5월에 적대적 M&A를 까다롭게 만들던 의무공개매수제를 폐지하고 외국인에게 국내 기업과 은행의 인수합병을 허용했다. 외국인들이 특정 기업 지분을 10% 이상 매입할 때 대상 기업 이사회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했던 규정도 폐지했다. 결국 해외자본은 외환, 국민, 하나, 제일, 신한은행에서 1대 주주이거나 50%를 상회하는 지분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삼성전자, SK텔레콤, LG화학, 포스코 등 한국의 대표 기업에 의미있는 지분을 갖게 되었다. 개혁의 결과 : 저투자-저성장 자본시장의 강화에 반비례하여 은행에서 많은 돈을 빌려 전략산업에 과감히 투자하는 고부채-고성장-고위험 모델은 역사의 피안으로 사라졌다. IMF 이후 기업은 주식이나 채권을 통해 내부자금을 육성하고, 순이익의 절반을 주주들에게 지급한 뒤 남은 돈으로 투자를 해야했다. 물론 부채는 축소되고 재무구조도 건전화되었지만, 그러나 이런 경제에 고성장과 낮은 실업률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 되었다. 이같은 개혁으로 은행의 영업 행태도 극적으로 변화했다. 기업대출-가계대출 비율의 역전이 그것인데, IMF이전까지 은행의 기업대출 대 가계대출 비율은 7:3 정도였다. 그러나 2005년 말에는 가계대출이 기업대출을 앞질렀고, 2006년 10월말에는 기업대출 310조원, 가계대출 335조원으로 그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다. 사실 기업의 입장에서 자금 조달 방법이 은행 대출이냐, 주식시장 상장이냐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기업의 부채비율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불량한 기업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IMF 이후 기업의 은행 대출은 그 자체가 죄악시되었다. 은행 입장에서도 BIS비율을 맞추려다 보니 ‘위험한’ 기업대출을 피하고, ‘좀더 안전한’ 가계대출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다른 한편으로 대기업의 경우 상장이나 내부 유보금으로 인해 은행 돈을 빌릴 필요가 줄어들었으며, 역으로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담보가 없거나 정부의 보증을 받지 못하면 대출이 거의 불가능했으니 은행의 기업대출 비중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IMF 사태 이후의 한국경제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지표 중 하나가 바로 설비투자이다. 2005년 11월, 산업은행이 발간한 『한국의 설비투자』에 따르면 2005년 국내 설비투자 금액은 모두 78조원으로 1996년의 77조원 보다 1조원 늘어난 데 불과했다. 증가율이 1.3%에 불과한 것이다. 이 같은 투자부진은 현재 낮은 경제성장의 원인일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을 훼손한다는 측면에서 심각한 현상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논객들은 설비투자보다 디자인이나 획기적 기술혁신으로 제품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술혁신은 설비투자 내에 체화되어 있다. 투자를 수반하지 않는 기술혁신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설비투자의 증가 없는 기술혁신이란 공염불에 불과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기업의 설비투자 증가율 또한 연평균 1.2%에 머물렀다. 심지어 제조업 21개중 18개 업종 내 대기업(300인 이상 종업원 고용기업)의 경우 설비투자 규모가 지금까지 외환위기 이전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나머지 3개 업종도 상위 3개 우량 대기업을 제외하면 대다수 대기업이 외환위기 이전보다 설비투자 규모가 떨어져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에 역전당한지 오래이다. 한국의 경우 외환위기 당시를 제외하고 2000년 이전까지 미국, 일본보다 설비투자 증가율이 높게 유지되었으나 2000년 이후 역전되었다. 2001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물가변동을 고려한 설비투자증가율의 평균은 한국이 0.8%에 불과한 데 비해 미국은 3.0%, 일본은 2.4%에 달하고 있다. 국내 상장기업 501개 사에 대한 삼성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수요부족(61%)과 함께 경영요인(59%)에서 설비투자 부진의 원인을 찾는 기업들이 많았다. 경영요인이란 경영행태의 보수화, 자본조달 비용의 상승,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의 증가 등을 가리키는데 이는 IMF 사태 이후 경제개혁으로 발생한 현상들이다. 월스트리트식 혁명의 수출 그런데 IMF는 왜 이런 종류의 개혁을 한국에 강제했을까? 물론 IMF 사태를 초래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1997년 하반기의 ‘유동성 부족’이었다. 여기에 미국 정부나 IMF의 의지가 작용했는지는 이후 역사학자들의 작업으로 미뤄두자. 그러나 확실한 것은, IMF 사태의 발생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든 안했든 상관없이 미국 정부와 월스트리트는 김대중 정부의 ‘개혁’을 통해 그들이 오랫동안 한국에 갈망해오던 정치경제적 변혁을 이뤄냈다는 사실이다. 외환위기 이전, 국내 대기업 및 은행은 외국자본이 소유·경영권을 사들일 수 없는 난공불락의 기지였다. 국내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지나치게 많은 외자를 빌렸다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대출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자와 원금만 제대로 상환한다면 기업의 소유·경영권이 위협받을 위험은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금융시장은 ‘단지 빌려줘서 이자를 받는 것’(예대 마진, 즉 예금이자와 대출이자의 차이로 은행의 주된 수익원) 이외의 돈 놀이로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이른바 ‘첨단기법’을 이용한 금융상품 개발에 골몰하고 있었다. 이 첨단 금융기법의 핵심은 주식시장을 통해 기업의 소유경영권을 획득하고 그 가격의 변화를 조정하면서 차익을 챙기는 것이었다. 예컨대 일단 잠재력은 있지만 유동성 위기를 겪는 바람에 주식시장에서 저평가된 기업의 주식을 싼 가격으로 사들여 그 기업의 지배주주가 되는 것이다. 그 다음 인력과 설비를 정리하고 이 사실을 선전하여 해당 기업의 주가를 띄운 다음 주식을 매각하면 예대 마진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다. 이 같은 첨단금융상품들의 메카는 당연히 미국의 월스트리트였다. 이런 방식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월스트리트의 ‘첨단 금융인’들은 같은 종류의 돈 놀이를 세계적 차원에서 하고 싶었고, 이에 금융업을 차세대 주력 산업으로 간주한 미국 정부가 가세하면서 ‘자유로운 돈 놀이’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화려한 명칭을 달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수사는 “월스트리트의 돈 놀이에 유리한 방식으로 경제 시스템을 바꾸라”는 명령을 다른 나라에 강요할 수 있는 훌륭한 명분이었다. 예컨대 한국에 자유롭게 돈을 투자했다가 자유롭게 돌려받을 수 있어야 하고, 한국의 기업을 자유롭게 사들였다가 자유롭게 팔 수 있어야 한다. IMF가 외환위기를 빌미로 한국에 강요한 이른바 ‘구제금융 조건’의 핵심은 정확히 이 같은 환경을 조성하라는 것으로 김대중 정권의 정책 기조가 되었으며 노무현 정권은 이를 계승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안 : 동북아 금융허브
IMF의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은 ‘적극적인 적응’이었다. 이러한 적극적 적응을 하나의 ‘전략’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동북아 금융허브론’이다. 동북아 금융허브론은 2003년 초 노무현 정부 인수위원회에서 최초로 제기된다. 유의할 것은 이 동북아 금융허브론이 단순한 ‘금융산업 발전 방안’ 정도가 아니라 일종의 ‘국가 발전 모델’로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이같은 시각으로 볼 때 동북아 금융허브론은 ‘박정희 모델 파산론’과 ‘디제이노믹스’에서 한미 FTA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동북아 금융허브론은 범세계적 신자유주의 금융화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책이다. 즉 금융세계화의 물결은 세계경제 내에서 국민경제 간 서열을 변화시킬 것인데, 이 수직적 서열 체계에서 가급적 높은 자리에 한국경제를 세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중국에 IMF 사태와 비슷한 경제위기가 발생한다면 이로 인해 기업가치가 현저히 낮게 평가될 회사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회사를 인수,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인 다음 되팔아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금융 연금술의 주인공이 반드시 미국이나 유럽의 금융회사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한국을 신흥 ‘금융강국(!)’으로 키우자는 것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꿈이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무현 정부는 금융허브를 건설하기 위한 법률적 준비를 치밀하게 추진해왔다. 우선 한국을 ‘자산운용업 중심의 금융허브’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지난 2003년 한국투자공사(KIC)를 설립했으며,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을 제정했다. 2005년엔 금융기관의 아웃소싱을 활성화할 목적으로 ‘금융기관의 업무위탁 등에 관한 규정’의 개정안을 냈으며, 2008년부터 자본시장통합법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는 결국 한국의 자본시장 관련 제도를 이른바 선진국 기준에 맞추는 한편 해외 금융회사와 자본시장 부문에서 경쟁할 수 있는 대형 금융투자회사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2008년 시행될 예정인 자본시장통합법은 증권거래법, 선물거래법,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등을 종합, 자본시장 관련 업종(금융투자업)을 총체적으로 규율하기 위한 법률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은 기관별 규제를 기능(매매, 중개, 운용, 자문, 일임, 보관)별 규제로 바꾸고, 금융투자상품의 허용 범위도 종래의 열거주의(법에 정한 것만 허용)에서 포괄주의(법에 정한 것을 제외한 모든 상품을 허용)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금융투자회사들은 종래의 주식파생상품 이외에 이자율, 외환, 신용, 실물, 경제변수, 자연현상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다양한 파생상품을 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예금과 보험을 제외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금융상품을 자유롭게 취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에 따른 가장 큰 변화는 자본시장 관련 금융업종 간의 겸영을 허용한 조치일 것이다. 자본시장 관련 금융업종엔 증권사, 자산운용사, 신탁회사, 종금사, 선물회사 등이 있는데, 2007년 현재까지도 겸업이 금지되어 있다. 예컨대 증권회사가 자산운용업을 취급하려면 별도의 회사를 설립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장벽이 사라지면 하나의 금융투자회사가 주식, 펀드, 선물, 투자자문 등 모든 업무를 다룰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자본시장 관련 회사들 간의 집적과 집중으로 초대형 투자회사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자본시장통합법 이후엔 대규모 자본과 창의적이고 다양한 금융상품을 겸비한 한국판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가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를 표명하고 있다. 자본시장 활성화가 혁신산업에 물줄기를 댈 수 있을까 한편 자본시장통합법이 자본시장을 활성화해서 은행의 실물경제 지원 기능을 대체하도록 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도 있다. 즉, 한국경제의 주축 산업이 혁신산업으로 이행하고 있는데, 혁신산업은 고수익-고리스크 부문이므로 이에 대한 자금공급 기능을 은행에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자본시장이 혁신산업과 중소기업 등에 자금을 공급하는 기능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본시장통합법을 통해 한국의 자본시장을 급속히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IMF 사태 이후 한국의 은행들이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한 ‘산업의 혈맥’ 기능을 자본시장이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자본시장이 극도로 발달한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에도 금융시장이 실제로 이런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자본시장이 기업 부문에 공급하는 자금보다 기업이 배당금, 자사주 매입 등의 형식으로 자본시장에 뿌리는 자금 규모가 훨씬 큰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봐왔듯이, 2007년 현재 우리 경제의 명암은 모두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저투자, 저성장, 고실업, 양극화 등의 경향은 2008년의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등 ‘혁명적 금융개혁’이 진척되면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변혁은 당연히 금융산업 부문을 지렛대로 진행될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가’들에게 국가기구의 장악이 변혁의 핵심 수단이었다면, ‘세계변혁’을 신봉하는 신자유주의 혁명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변혁 수단은 자본시장의 자유화 및 국제화인 셈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적 프로그램 역시 ‘금융을 매개로 한 신자유주의 개혁 프로그램’에 대당되는 그 무엇이야 한다. 물론 이와 관련된 주제로는 거시정책(재정 및 통화), 복지, 기업지배구조, 외환시장 등이 추가될 수 있으며, 이들 분야에서 대안적 정책이 마무리될 때 진보는 비로소 ‘반(反)신자유주의 연합’을 주장할 자격이 생긴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첫발은 결국 갈수록 고 부가가치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는 한국 금융산업에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가 될 것인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들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만큼, 다른 지면에서 다뤄야 할 것이다. 다만 끝으로 지적해 두고 싶은 것은 진보진영, 특히 사회운동 진영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혼란은 적절한 논쟁을 통해 다듬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필자는 대안연대 등이 제출했던 ‘재벌-사회 타협론’, 즉 재벌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대신 재벌의 국민경제적 기여를 약속받는 타협안이 유독 사회운동 진영에서 냉소적인 대접을 받았던 사태는 한국적 신자유주의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밀접히 연관된 것이라고 믿는다. |
기사에 덧붙임 ※ 이 글은 대안연대회의, 농어촌사회연구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 금융경제연구소, 투기자본감시센터, 비정규노동센터, 빈곤문제연구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등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IMF 10주년」 간담회에서 이종태 연구위원이 발제한 ‘IMF 10년의 금융개혁’을 월간『말』 편집부가 정리해 옮긴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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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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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영
2007.04.1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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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이
2007.04.16 12:24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구호가 공허하다는 데 동의하는데요.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케인즈주의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과 그다지 구분점이 보이지 않기도 하잖아요.
이글도 신자유주의 반대 구호의 공허함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 대안 역시 공허하기 그지 없는 것 같아요.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구호가 공허한 것은 좌파적 대안을 이야기 하지 못해서이지, 그것에 대해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자본주의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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