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 어떻게 할 것인가?
1. 사학동의 ‘학원여성운동의 계급적 전진을 위하여’에 답한다.
최근 사학동은 ‘학원여성운동의 계급적 전진을 위하여’란 글을 통해, 사회주의자로서 자신의 여성운동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학원여성운동 실천의 분리주의적인 경향이 점차 강화되는 요즘 참으로 유익한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이에 대해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학사정연의 나태함을 지적해주신 점에 대해서도 자성의 의미를 담은 감사를 보낸다.
이번 기회에 학사정연도 간단하게나마 여성운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하지만 그 동안 여성운동에 대한 자신의 포괄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을 제외하면, 학사정연에 대한 사학동의 비판은 근거가 없는 것이기에 이에 대한 답부터 먼저 하고자 한다.
사학동 동지들이 인용한 신질서의 기사는 2005년 7월말에 작성된 것이다. 이 시기는 서울대에서 농활을 비롯한 모든 연대사업에 대한 폐기가 거론되던 시기이다. 당시에는 성폭력 발생의 위험이 있는 모든 연대활동을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입장은 ‘연대활동이 펼쳐지는 공간들은 현재 반여성적이며, 때문에 연대활동은 성폭력의 위험을 내재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이루어지는 연대활동은 반여성적인 활동이다’라는 논리를 지니고 있었다.
농활이든 노학연대이든, 연대활동에서 여성주의를 확장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이러한 활동의 과정에서 많은 이들은 회의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대활동을 포기한다면 현 사회의 변혁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우리는 연대활동을 폐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다. 오히려 우리는 연대활동에서 여성주의를 어떻게 확장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이들의 답답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연대사업의 폐기’는 잘못된 결론이라고 강변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에 대한 역편향으로서 연대활동 폐지를 반대하던 이들’에 대해서도 비판해야 했다. 이들은 농활의 위상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는데, 농활을 러시아의 노농동맹의 맥락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남한의 농민은 과거 러시아의 농민과는 다른 정치적 위상을 지니고 있으며, 때문에 현재의 농활이 정치적인 연대활동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는 자신의 생존권 쟁취를 위한 농민들의 투쟁이 정당하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돌려 말하지 않겠다. 우리는 연대활동의 공간이 성폭력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에 이를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에 반대한다. 오히려 우리는 연대활동에서 여성주의를 어떻게 실천하고 확장시켜나갈지에 대해 고민한다. 더불어 농활을 비롯한 농민과의 연대에 과도한 무게를 두는 입장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현재 남한 농민들의 생존권 투쟁이 정당하다는 것과 별개로 이미 농민운동의 위상은 다른 부문운동과 별다를 것이 없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연대활동의 폐기’라는 맥락에서 농활이 폐기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농활이 다양한 연대활동 중에서 특별한 위상을 부여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신질서 3호의 글은, 이러한 두 가지 편향에 빠지지 말고 자신의 정치를 확장시키는 구체적 사업으로서 농활이란 사업을 재고해보란 것이었다. 이는 단위상황과 정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구체적 판단이기에, 일반론으로 뭉뚱그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학사정연은 이러한 입장에 따라 자신의 활동을 풀어내었는데, 2005년 농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반성폭력에 대한 고민을 최선을 다해 진행하였다. 농활의 준비단계에서부터 농민회와 함께 이와 관련한 논의를 계속하였고, 농활을 간 마을에게도 더욱 신경을 쓴 편지와 직접적인 대화로 이를 풀어내었다. 뿐만 아니라, 대(對)주민 활동에서도 여성주의를 내용으로 한 프로그램을 통해 농촌사회에서 여성문제를 이야기하고자 부단히 노력하였다. 실제로 과 학생회에서도 여성주의는 2005년 농활에 있어서 가장 강조점이 찍힌 부분이었으며, 이는 학사정연뿐만 아니라 2005년 농활에 참여한 이들 대다수의 경향이었다. 하지만 농활을 다녀온 이후에도 연대활동을 폐기하자는 입장이 더욱 전면화 되었고, 이에 대해 개입하기 위해 쓴 글이 신질서 3호의 ‘우리에게 농활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이었던 것이다.
또한 학사정연은 2004년 사회대 농활 철수에 대해 반대하지도 않는다. 그 상황에서 문제를 묻어두고 농활을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올바르지도 않다. 때문에 사회대 농활 철수는 모두의 동의 속에서 이루어졌다. 일부는 자신의 마을에 남아 이에 대해 문제제기하며 성폭력 문제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키기 위한 사업을 풀어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여성주의를 확장시키기 위해 어떤 방법이 더 유효할지에 대한 고민 속에서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이루어진 것일 뿐이며, 사회대 농활 철수에 대한 반대의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학사정연은 2004년 사회대 농활 철수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한 적이 없는데 사학동은 어떠한 근거로 그러한 근거 없는 비판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동지들이 이야기한 학사정연의 ‘반성폭력운동에 대해 매우 후진적인 자세’는 노학연대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학사정연은 연대활동에서 성폭력 문제를 덮고 가거나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이는 당연히 문제제기하여 실천적으로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는 동지들과의 관계에서나, 자본과의 투쟁에서나 달리 적용되는 원칙이 아니다. 이는 언제나 가져온 학사정연의 원칙이며, 때문에 학사정연 역시도 사회주의자로서 여성해방을 위한 실천들을 부족하나마 열심히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제기는 구체적으로 해주었으면 좋겠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실천이 도대체 무엇인지 말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이는 우리의 실천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한낱 트집잡기에 불과할 것이다. 이쯤에서 동지들의 비판에 대한 답변은 그만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학사정연은 언제나 동지들의 비판을 경청하고 있다. 궁금한 것이나 문제제기할 것이 더 있으면 언제든지 기탄없이 제기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2. 남한 여성운동의 역사 평가
그럼 이제부터, 남한 여성운동의 역사에 대한 평가에서 시작하여 여성운동에 대한 학사정연의 입장을 밝히도록 하겠다. 이는 학원여성운동만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70년대는 여성노동자운동을 중심으로 집단적인 여성운동이 활성화된 시기이다. 이 운동을 이끌었던 생산직 여성노동자들은 생존권 쟁취와 민주노조 설립을 내걸고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은 투쟁의 주체로 자리매김하였고, 학원 내 여성운동 역시 시작되었다. 여성문제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여성활동가들은 여성노동자의 생존권 투쟁에만 함께 한 것이 아니라 운동 내의 성차별에 대해서도 저항하였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여성운동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로 남아있다.
이러한 흐름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변화를 겪는다. 여성학과 페미니즘을 이론적으로 연구한 해외 유학파와 학생운동을 경험한 젊은 지식인을 중심으로 여성운동이 이론적 논쟁의 대상, 과학적 학문의 대상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 시기의 페미니즘은 이론적 체계화의 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논쟁의 과정을 겪는데, 이는 80년대 남한의 격렬한 계급투쟁의 현실 속에서 전개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배경은 이 시기 논쟁의 성격을 결정하였다. 예를 들어 80년대의 주요 논쟁 중 하나인 성/계급 논쟁에서, 서구와는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서구의 성/계급 논쟁이 여성운동과 노동운동 사이의 갈등으로 나타난 것과는 달리, 80년대 남한의 성/계급 논쟁은 여성운동과 노동운동 사이의 대립보다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내의 일원론적 입장과 이원론적 입장 사이의 대립으로 나타났다.(사실 여기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민중지향적 성격을 지닌 페미니즘 일반을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라 통칭한 것이다. 여성평우회의 경우 일원론적 입장에서 민중지향적 성격을 분명히 하였으며, 다른 많은 단체들 역시 여성운동을 민중운동 진영의 한 부분으로 사고하였다. 이원론적 입장에 가까운 ‘또 하나의 문화’와 해외유학파가 여성운동은 부문운동이 아니라 독자적인 사회운동이라 주장하였다. 이들은 일상적인 삶의 양식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중산층 지식인 여성을 운동의 주체로 명시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 논쟁에서 일원론적 입장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는 군부독재와 치열한 계급투쟁의 현실 속에서, 어떤 운동세력도 계급투쟁의 정당성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자유주의・급진주의 사상에 기반하고 있던 페미니스트들조차 표면상으로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로 드러났던 시기인 것이다.
80년대 여성운동을 특징짓는 정체성은 민중지향성이다. 기존 여성단체들이 사회봉사나 정부정책홍보 및 선거운동 등의 활동을 하였다면, 80년대 생겨난 여성 단체들은 여성노동자의 생존권지원투쟁과 정치투쟁을 활발하게 전개한다. 그리고 이는 여성노동자운동을 중심으로 한 활발한 계급투쟁의 현실에 뿌리박고 있었다.
90년대에 와서 여성운동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 특히 87년 이후의 상황은 여성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군부독재정권의 몰락과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그리고 다양한 부문운동들의 부상으로 인해, 이제 과거와 같은 계급중심의 운동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또한 운동진영 내부의 가부장성과 성폭력 문제, 여성 의제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거의 없었던 점은 중요한 비판지점이 되었다. 이는 기존의 여성운동이 변화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계급운동으로부터 독립적인 여성운동의 필요성과 정당성은 강화되었고, 여성운동은 독자적인 사회운동으로서의 지위를 얻었다.
이제 여성운동은 80년대 계급쟁점에 기초한 여성운동에 주력했던 것으로부터 탈피, 성쟁점에 기초하여 성폭력 문제와 가정폭력 문제를 중심으로 여성의 차이에 주목하는 활동에 매진한다.(가장 두드러진 활동은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문화적 측면에서의 여성 운동도 활발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의회정치로의 진출도 이어졌다. 노동 분야의 경우 80년대 여성운동권이 남성노동자들과 공통된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던 것에 비해, 여성 고유의 문제를 보다 심도 있게 제기하려 하였다.) 이는 성차별적이었던 기존의 운동진영과 단절을 선언하고 여성문제에 대한 독자성을 가지려는 시도였으며, 운동의 내용 역시도 변혁의 대상을 외부에 설정하지 않고 여성의 일상적 생활공간 내부를 변화시키는 일로 중심이 이동하였다.
이는 몸과 일상, 문화라는 새로운 여성 운동의 공간을 창출하였지만, 이 과정에서 여성문제의 독자성에 대한 강조는 종종 여성 내부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변혁적 전망을 상실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자유주의 및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여성운동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특히 학원여성운동은 학내에서 하나의 독자적 운동을 형성하였다. 80년대 몰 계급적이라고 비판받았던 서구의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이제 본격적으로 학원여성운동에서 주류로 등장하였다. 반성폭력 운동은 학원여성운동의 가장 중심적인 과제였으며, 이러한 방향의 활동 속에서 나름의 독자적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들은 80년대의 실천방식에 문제제기하며 사적인 것의 정치화, 수평적 조직구조, 소집단 지향성, 문화전략의 강조를 주장하였으며, 이를 통해 비제도적, 소그룹적, 게릴라적 운동을 통해 새로운 여성운동의 방식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리고 요즘은 여기서 더 나아가 소수자 운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활동을 풀어내고 있다.
정리하자면, 날이 갈수록 여성운동의 관심은 그간의 운동이 포괄하지 못한 동성애, 생태주의 등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더불어 활동은 분리주의적인 성향의 것으로 강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간 포괄하지 못했던 부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부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을 계급투쟁과 분리시켜 사고하는 것은 도대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과거의 역사를 들추지 않고 현재 대두되는 주요한 여성문제들만 살펴보더라도 여성노동 문제, 가사노동과 성별 분업, 재생산 문제, 성상품화 문제 등이 있다. 이들은 계급모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형성된 것으로서 현재의 여성운동이 가고 있는 방향과는 이질적인 것이다. 또한 주체의 측면을 보더라도 여성노동자가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 많다. 이를 무시하고 몰 계급적 시민운동으로 나아가는 여성운동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과연 여성운동이 현실의 변화를 원하기는 하는지 의심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현실의 여성운동은 이러한 부분을 무시한 채 지나치고 있다. 더욱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소수의 사람들끼리 모여 현실의 부당함을 토로하고 서로의 상처를 공감하는 수준에 그치는 모습은 자신의 활동범위를 스스로 제한하는 현 여성운동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간 존재했던 운동진영 내부의 가부장성은 비판되고 시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적대감으로 계급모순에 대한 눈을 감아버리고 분리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결코 올바른 해답이 아니지 않은가?
많은 이들은 현재의 여성운동을 68년 이후 급부상한 신사회운동의 하나로 판단하고 있으며, 실제로도 이를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는 현재 여성운동이 사회변혁운동으로서 충분한 자기활동을 풀어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는 여성운동의 이슈가 여성노동자들을 주체에서 탈각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주요한 쟁점들에 대해 기권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양한 영역으로 자신의 시야를 넓히는 것은 좋지만, 그곳에 자신의 시야를 가둬서는 안 될 것이다. 성적 모순은 계급 모순과 외따로이 떨어져서 존재하지 않으며, 이와 상호관계를 가지고 현실을 구성한다. 이를 무시하는 행위는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 무능력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게 할 것이다.
3. 여성억압의 현실, 어떻게 볼 것인가?
학사정연이 실천하고자 하는 여성운동을 밝히기 위해서는, 여성억압의 현실을 분석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게 올바를 것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여성억압의 기반이 되는 구조가 ‘가부장제’라 인식하고 있다. 이는 남성 가부장의 지배를 의미한다. 하지만 남성 가부장의 지배를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기에 한정짓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때문에 이는 여성억압을 초역사적이고 보편적인 억압으로 만드는 오류를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애초에 가부장이라는 개념 내부에는 여성억압과 위계서열 상의 억압에 대한 내용이 혼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여성억압을 설명하는 데에도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를 비교해 보았을 때, 여성억압은 구체적인 방식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가부장제 이론이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여성억압의 양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했음을 드러내는데, 이러한 가부장제 이론의 단순성은 현실의 실천을 만들어가는 데 질곡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의 물적 토대를 규명하고 여성억압을 역사적으로 인식하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 역시 성과를 내지는 못하였다. 다양한 이론을 전개하며 논쟁을 하였지만 여전히 가부장제의 물적 토대는 제대로 규명된 것이 없으며 이제는 그냥 지나간 논쟁에 불과하다.
이 논쟁으로 다시 돌아갈 필요는 없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한정하여 여성억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요하게 임금노동으로 대표되는 생산영역과 가사노동으로 대표되는 재생산영역은 결코 서로 독립된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에 대해 선별적으로 규정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생산영역과 재생산영역을 독립된 것인 양 규정하고 있는 것일 뿐이며, 이는 현재 남성과 여성의 끝없는 대립구도를 재생산하고 있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영역과 재생산영역의 구분을 폐절하지 않고서는 남성과 여성의 끝없는 대립을 종식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며, 이는 여성해방과 노동해방이 서로 독립적인 길이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둘은 모두 자본주의 사회의 변혁이라는 같은 길을 가야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상 여성억압은 어떤 계급의 여성이냐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로 인해 여성운동 진영 내에는, 부르주아 및 쁘띠부르주아 여성의 이해관계에 기초하여 여성의 주류화 전략을 내세우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장려함으로써 여성 억압의 폐절이 가능하다며, 자신의 분리주의적인 실천을 합리화한다.
하지만 노동계급 여성의 경우, 대부분이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노동하고 있으며, 집에서는 가사노동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기 때문이라고만은 설명할 수 없다. 여성억압을 통해 저임금 노동자 군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어떻게든 전체 노동력에 지불하는 비용을 낮추고자 하는 자본의 속성이 이러한 여성억압을 끊임없이 반복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개별 가정에 전담시킴으로써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는 자본은, 계급 분절화라는 부대효과까지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자본주의 사회가 여성해방을 위한 주요한 쟁점들에 대해 반동적인 태도를 명확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주의 철폐를 무시하고 여성억압의 폐절만을 주장하는 것은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반동적인 결론만을 가져올 한낱 기만에 불과하다.
물론 여성노동자들이 같은 노동자들 사이에서조차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여성이 노조 내 성폭력 사건으로 인해, 또는 투쟁의 과정에서 배제되는 상황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경우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는 극복되어야 할 뿐이다. 서로 다른 다양한 노동자들을 자본주의 폐절이라는 하나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노동자라는 조건에 기초한 계급의식이다. 여기에 여성노동자에 대한 억압의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무시하고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 사이의 근본적인 분리를 주장하는 것은 현실의 불완전함을 이유로 개선의 가능성마저 일축해버리는, 여성해방에 있어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태도이다.
현재의 여성노동자는 단순히 계급 내의 성 평등만을 통해서는 진정한 여성해방을 이룰 수 없다. 계급착취를 근절하지 않고서 여성노동자의 해방이란 있을 수 없다.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의 계급적 이해관계는 결코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진정한 여성해방은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통한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사회주의 하에서 여성노동자들은 계급착취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가사노동은 개별가정에게 전가되지 않고, 사회적인 시스템에 의해 담당될 것이다. 여성을 억압하는 각종 법들은 즉각 폐지될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야말로 진정으로 여성해방의 물적 토대를 놓는다. 예를 들어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에는 임노동의 철폐만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철폐되었고,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통제권을 긍정하며 낙태의 합법화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물적 토대는 어떠한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놓아진 적이 없는 것이다.
물론 사회주의가 된다고 자동적으로 여성의 억압이 완전히 폐절되는 것은 아니다. 의식이나 세세한 관습은 이후의 지속적인 실천을 통해서만 변화를 담보해낼 수 있다. 또한 사회주의를 통해 여성의 해방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임노동의 철폐만을 이야기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여성억압을 철폐하기 위한 실천을 지속하기 위해서, 그리고 여성해방을 대안적 사회의 구성 원리로 만들어가기 위해서, 당연히 자본주의 하의 사회주의 운동에서도 여성해방을 위한 실천은 정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여성해방을 위해서 적어도 자본주의의 철폐는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선후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자본의 지배하에 있는 사회적 생산물과 생산수단이 원래 주인의 손으로 되돌아가는 것 없이는 여성해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생산물과 생산수단을 노동자계급에게 귀속시키지 않고서는 여성노동자를 재생산 영역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없기 때문이며, 여성노동자계급의 해방 없이는 여성의 보편적 해방이 없기 때문이다. 여성노동자의 생존권이 자본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더욱 열악한 조건에도 참고 일할 수밖에 없는, 성폭력과 이중노동의 고통에도 견디는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계급철폐가 여성해방을 위한 전제조건임을 너무도 쉽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정리해보자. 여성억압은 계급에 따라 상이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물적 토대에 기반하고 있다. 이를 폐절하지 않는 여성해방이라는 것은 거짓말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는 자본주의가 철폐될 때까지 여성운동을 멈추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노동자의 해방을 위한 현장의 여성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4. 여성운동, 무엇을 할 것인가?
학사정연은 자본주의 철폐를 위한 투쟁, 사회주의 운동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계급 내에 불합리한 벽을 설치,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를 분리하여 사고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노동자가 성적 차이를 이유로 차별받는 현실을 변화시켜 나갈 것이며, 동시에 투쟁을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 ‘불필요한’ 분업들을 없애나갈 것이다.
또한 성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두고 진행되는 성폭력 역시 없애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는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성폭력을 없애려는 노력뿐 아니라, 그 밑에 깔려있는 성 이데올로기 자체에 대한 투쟁까지 포함할 것이다. 이러한 투쟁은 단순히 학내에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활동 공간 전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여성운동의 주류적 경향인 분리주의는 부르주아 및 쁘띠부르주아 여성의 이해에 기반하고 있음이 명확하기 때문에, 계급적 여성운동을 세력화하는 실천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여성해방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여성노동자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계급 간 이해관계를 기만하는 여성의 주류화 전략을 뛰어넘어야 한다. 진정한 여성해방을 위해서는 노동계급 여성의 해방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여성해방을 지향하는 사회주의 운동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학원여성운동의 경우, 현재의 분리주의적인 실천을 넘어서기 위해 계급적 학생운동 진영은 학원 내 반성폭력 운동을 가장 선도적으로 이끌어 갈 뿐 아니라 노학연대의 활동 속에서 역시 여성운동을 열정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현재의 성 이데올로기에 물들어있는 노동자들과 여성문제에 대한 다양한 토론과 논의를 진행하여 노동자계급이 노동해방 뿐만 아니라 여성해방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게 만들어야 한다.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해방은 노동계급의 해방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때문에 현실적인 분할을 넘어서는 실천을 구성하는 것은 사회주의자로서의 당연한 의무이다. 이는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