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2007년 전국노동자대회의 역사와 의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기억하는가?
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22살의 전태일은 스스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당시 평화시장에서 일을 하던 어린 소녀들은 일당 70원에 점심도 굶은 채 고된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열악한 노동환경 탓에 폐렴이 걸려도 치료는커녕 강제해고가 되었다. 생활고로 초동학교마저 중퇴하고 재봉보조로 일을 하던 전태일은 사업주의 노동착취와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해 분노하였고, 노동법을 공부하며 같이 일하던 사람들을 모아 사업주들에게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항의하여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었지만 그 약속은 번번이 지켜지지 않았다. 청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스스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이러한 전태일의 정신을 되새기며 전국 노동자들은 매해 전태일 열사의 기일에 맞춰 전국 노동자대회를 열고 노동해방을 거리에서 외치고 있다.
전국노동자대회의 역사
해방 이후 40여년간 군부독재와 어용 노조에 짓눌려있던 노동자들은 1987년 7·8·9월 전국을 뒤흔든 노동자 대투쟁을 전개하였다. 당시 기록을 보면 3개월간 3,300여개의 사업장에서 파업투쟁이 전개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무려 1,300개의 신규노조가 건설되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가장 격렬했던 8월에는 평균 400여개의 쟁의가 진행되었고, 20일에는 하루 500건, 29일에는 743건이 터지면서 노동자들의 투쟁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8월 한달간 하루 평균 22개의 노동조합이 새로 건설되었다. '87년의 노동자 대투쟁은 민주노조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1987년]
해방 이후 40여년간 군부독재와 어용 노조에 짓눌려있던 노동자들은 1987년 7·8·9월 전국을 뒤흔든 노동자 대투쟁을 전개하였다. 당시 기록을 보면 3개월간 3,300여개의 사업장에서 파업투쟁이 전개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무려 1,300개의 신규노조가 건설되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가장 격렬했던 8월에는 평균 400여개의 쟁의가 진행되었고, 20일에는 하루 500건, 29일에는 743건이 터지면서 노동자들의 투쟁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8월 한달간 하루 평균 22개의 노동조합이 새로 건설되었다.
[1988년]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쳐 전국의 수많은 공장에서 건설된 민주노조들은 그 뒤 상반기 임 금·단체협약 투쟁 과정에서 지역별 연대투쟁을 전개하여 '마산·창원 노동조합 총연합'을 필두로 각 지역에서 노동자 연대조직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87년 노동자 투쟁에 놀란 노태우 정권이 노동자의 힘을 누르기 위해 노동법개정을 단행하고, 연행·구속 등 노동자탄압을 자행했다. 이러한 탄압에 맞서 노동자들은 전국 모든 지역과 업종조직을 망라한 <전국 노동법 개정 투쟁 본부>를 구성하게 된다. '전국 노동법 개정 투쟁 본부'는 전태일 열사의 기일인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노동악법개정 전국 노동자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이 대회에 앞서 10월 9일 <노동법 개정 투쟁 전국 노동자 등반대회>를 개최하였으며, 화왕산(영남지역), 대둔산(호남지역), 북한산(수도권지역)에서 진행되어 1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하였다.
[1988년 11월 13일 전국노동자대회]
1988년 11월 13일 연세대 노천강당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및 노동악법 개정 전국노동자대회>에는 전국의 5만여 명의 대중이 결집하여 당시로서는 한국전쟁이후 최대의 노동자대회를 열었다. 노동자들은 국회의사당 앞에서 '망국 민정당 규탄 및 노동악법개폐 촉구대회'를, 전경련 앞에서'노동악법 옹호하는 독점재벌 규탄대회'를 열었다.
[1989년 이후]
'88년 전국노동자대회를 거치면서 각 지역에서 흩어져서 투쟁하고 있던 노동자들이 하나로 모여 서로의 의지를 확인하고 나자 전국조직 건설에 박차가 가해졌다. 이는 곧 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과 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업종회의) 건설로 이어졌다. 이는 다시 91년 ILO 기본조약 비준과 노동법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 공동대책위원회(ILO공대위), 93년 6월 전국노조대표자회의(전노대)라는 조직의 건설로 한 단계 나아가고, 노경총 합의 반대투쟁, 한국노총 탈퇴투쟁, 노동법개정투쟁, UR반대투쟁 등을 거치면서 95년 11월11일 전노협, 업종회의, 현대그룹노조총연합(현총련), 대우그룹노동조합협의회(대노협)이 주축이 되어 1,048개 노동조합 420,409명 노동자를 포괄하는 민주노총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올해로 전태일 열사가 산화해가신지 37년이 흘렀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37년 전과 같은 요구로 여전히 노동자들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야 하는 이 잔혹한 신자유주의 시대가 우리들의 현실이 되었다. 비정규악법이 통과되어 수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수많은 해고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 불안정한 삶의 현실은 우리에게 깊숙이 다가와 있는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통 받고 있다. 현재 양산되고 있는 불안정노동은 대학인들로 하여금 더욱더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사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있다. 하여, 대학사회는 더 이상 저항의 공간이 아닌 취업을 이한 관문쯤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내가 살기 위해선 남을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 우리는 처해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이제, 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무한경쟁 이데올로기를 뚫고 파편화 되어 있는 사람들 사이의 연대를 구축해 투쟁의 들불을 다시 되살리자.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함께 투쟁하자. 아직 축제는 시작되지 않았다. 기념이 아닌 투쟁으로! 아직까지도 자본의 횡포에 맞서 당당히 투쟁하고 있는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과 함께 하자. 그리고 노동해방을 외치며 산화해간 이 땅 모든 노동해방 열사들의 뜻을 기억하자.
아직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2007 노동자대회 투쟁일정
11월 10일
오후 5시: 마포구청역에 집결해 가두 행진하며 홈에버 상암점으로 이동
5시부터 10시: 상암점 매장 투쟁 진행
매장 투쟁 이후 숙박 장소인 연세대로 이동
연세대에서의 프로그램
▶토론회 1- 2007년 남한 사회 지금 어디에 있는가?
▶비정규직 철폐 한미FTA 폐기 투쟁! 학생 결의대회
:비국가 학생운동 단위들의 결의대회로 기간의 각 단위 활동들을 총화 해내고 다시금 투쟁을 결의하는 자리로 만들어 나간다.
사회자- 미정
발언
-각단위 별로 진행(선거 준비 중인 단위들은 단위 후보자를 발언으로 섭외 부탁드립니다.)
-그간 미흡했던 선동을 좀 더 치밀하게 준비하고 앞으로 정세 및 투쟁 발언력을 높이는 기제로 가져간다.
▶뒷풀이 및 취침
11월11일
8시 기상 및 세면&식사
9시 30분 토론회2 여성 노동권
11시 선전물 만들기
12시 노동자대회 장소로 이동
1시 노동자대회 장소_ 남대문(확정 안됨)
행진 범국민대회 장소인 시청으로 이동
3시 범국민 대회(대회는 짧게 진행될 예정)
이후 광화문 행진까지 행진
※10,11일 1박2일 일정과 우천이 예상 되오니 여분의 옷 등을 준비해 주십시요
※양일간 투쟁 모두 행진이 예정 되어 있으니 선전 선동을 준비해 주십시요
10일 날 상경하는 차편이 따로 없는 관계로 각자 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남부터미널에서에 4시까지 집결할 수 있도록 합시다. 저희 지역에서는 일단 5시에 맞춰서 상암점으로 집결하는 것으로 합시다.(마포구청역이 상암점과 아주 가깝습니다.)
회비는 왕복 차비(20000)+지하철비(5000)+회비(3000)+식사비용(8000)=총 36000원
여기에 각자 예비비용을 챙겨 오시기 바랍니다.(넉넉하게 계산한 것이기 때문에 남을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