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으로 만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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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0번
선거 반대, 직접민주주의 실현
올해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대학 선거철이 돌아왔다. 각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은 추운 날씨에도 아침부터 율동을 하며 지지를 호소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젊음이 살아 있는 대학이 자랑할 수 있는 모습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오래 전부터 곪아온 상처들이 금새 눈에 띈다.
교과서, 언론 등이 가르쳐온 ‘선거’는 정책과 공약을 토대로 ‘대표’를 선출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대학사회의 선거는 기호와 모토를 선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의 시험장이 되었다. 자신의 기호를 최대한 각인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복장을 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그 안에서 최소한의 정책 토론도 이루어지지 않고, 전대 학생회 사업에 대한 반성과 비판도 없다. 한 때 사회 진보의 최 일선을 담당했던, 그래서 사회에서 가장 순수하고 민주적이라고 일컬어졌던 대학생들이 주체가 된 선거가 기성 정치인들의 이미지 선거와 다를 게 없어졌다는 건 너무 슬픈 현실이다. 구호만 남은 선거운동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껍데기만 남은 학생회 그 자체에 있다. 언젠가부터 학생회의 위기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학생회에는 학생이 없다’라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민주주의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70-80년대 활동가들이 부르짖었던 민주주의는 어떤 것인가? 그 요구가 독재정권 타도, 직선제 쟁취이긴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시기에 요구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요구였던 것이다. 선거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다른 이에게 위임하는 것이 완성된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일정한 형태로 고정되어 있는 제도가 아닌 원칙과 정신이다. 자신의 일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권리, 다른 이가 자신의 판단을 대신하지 않을 권리 - 누구나 소유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실현하려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이런 정의에 비춰보았을 때 학내 민주주의는 어떠한가.
학생회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학생이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학생회의 행사’에 ‘참여’하는 것 또한 어디까지나 수동적인 의미의 ‘참여’인 것으로 진정으로 학생회에 ‘참여’하여 주체가 되는 걸로 보기는 어렵다. ('참여'의 중의적 의미에 주목하자.) 학생회에 참여하려 하지 않는다기보다, 참여할 수 없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듯싶다. 실제 학생회의 정책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참여하)는 것은 소수의 학생에 불과할 뿐이다.
누구나 선거 때 한 표를 행사하는 걸로 학생회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뒤집어 보면 학생회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것 이상의 권리를 부여받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정책을 능동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각 후보들이 제시한 것들 중에서 수동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선거의 본질적인 의미이다.
학생들은 투표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다한 것으로 여기게 되고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지 학생회는 알맹이가 빈 기구로 남게 된다. 또한 선거는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지를 버리는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대변하는 제도이다. 누구나 참여하는 '학생회'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선거는 근본적으로 누군가를 배제하는 절차이다.
정말 열려있는 민주적인 학생회라면, 당선된 후보측은 선거에서 배제된(낙선한) 후보측에 같이 학생회를 운영하자는 제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소수의 구상자와 그것을 따르는 나머지 다수로 분리되는 구조의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물론 선거 이외의 통로를 통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현실을 바라볼 때 그런 요구들은 보통 소수의 ‘딴지걸기’ 정도로 취급되기 일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학교의 결정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결정들은 바로 당신의 생활에 직결되는 것이지만 그것에 참여할 권리는 학생들에게 주어져 있지 않다. 교육은 수동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이고, 복지도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물론 이런 복지마저 언제나 부족하고 '학생이 없는 학생회'의 요구로는 얻어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학교 바깥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사회는 민주주의를 가장하고 있지만 갈수록 더 많은 영역에서 자신의 삶에 관련된 선택을 다른 이가 대리하도록 만들고 있다.(현재 추진되는 한미FTA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치를 ‘선거’등의 이미 구성되어 있는 한정적인 수단으로 제한함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표출하는 거리의 정치를 터부시하게 만드는 사회적 여론은 학생사회의 탈정치화 흐름과 맞물려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줄어들수록 필경 당신의 삶은 더욱 각박해 질 것이다. 학생회 선거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이런 학생사회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학생평의회'라는 기구가 여러 대학에서 논의되고 있다. 학생회 선거에서 공약으로 학생평의회를 내세우는 곳도 있고, 성공회대의 한 단대에서는 대다수 학생들의 참여로 학생회를 해체하고 학생평의회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평의회'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발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곳에는 피라미드형 권력이 존재하지 않고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수평적인 만남만 있을 뿐이다. 당연히 '선거'라는 절차를 거치지도 않는다. 평의회는 각 개인이 표를 행사하는 수동적인 주체로 머무르지 않고, 자신을 대표로 내세울 수 있는 능동적인 정치를 지향한다.
학생평의회는 이제 막 시도된 만큼 여러 시행착오를 거칠 수 밖에 없겠지만 최소한 관성화된 학생회 선거와 그 운영구조를 그대로 이어 가는 것보다는 더 민주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원광대학교에서도 이런 시도들에 관심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선거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다른 이에게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표출하는 행동에 나설 것을 요구한다.
기호 0번. 선거 반대, 대리정치 반대, 직접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당신의 선택이다. ‘찍기’를 넘어서는 거리의 정치, 광장의 정치를 같이 구성하자.
학생사회 재구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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