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희 씨.. 참 좋습니다..이런 치열함.. |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우리시대 난장이들을 위하여 |
힘겨운 말이었다. 말하는 이가 힘겹게 뱉어내는 말이었고, 듣는 이의 마음을 깎아 힘겹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의 언어는 ‘절규’였다. 그의 강의도 절규였고, 그와의 인터뷰도 절규였다. 쏟아낸 말을 세상에 뿌려대며 그는 절규했고, 말이 뽑아낸 더운 땀방울을 닦으며 또 절규했다. 30여년 전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으로 절규했던 그는 ‘여전히’ 세상을 향해 절규하고 있었다. 손으로 쓰진 않았지만 몸으로 쓰고 있었고, 침묵하고 있었지만 침묵 속에서 치열했다. 그, 조세희. 그는 극도로 말을 아끼는 사람이다. 인터뷰는 물론 기고도 하지 않는다. 모두가 키득거리는 시대, 침묵보다 못한 너스레는 말장난일 뿐이었다. ‘한 말발’ 하는 사람들이 시대를 논하고 정의를 외칠 때, 그는 쉽게 혀를 놀릴 수 없었다. 침묵은 희망이 사라진 시대를 책임지는 그 나름의 의식이었다. 그런 그를 만나고 싶었다.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나서고 있는 이때, 총파업 첫날부터 비바람과 눈바람이 살을 때리는 이때, 노동자들을 격려해 줄 그의 한 마디 말을 듣고 싶었다. 역시 그는 숨고 숨었다. 쓰지 않는 작가가 함부로 말하는 건 옳지 않다는 뜻에서였다. 월간 <삶이 보이는 창>이 마련한 르포문학 강좌에서 그가 강의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극구 사양하던 그를 노동문학운동 하는 후배들이 강권해 만든 자리라 했다. ‘험한 길’ 가는 후배들 돕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을 그렇게라도 부추겼다고, 그 후배들이 말했다. 생떼를 써 보기로 했다. 무작정 찾아가서 강연을 들었고, 며칠 후 또 찾아가서 만났다. 여러 번 전화를 주고받았고, 그는 또 여러 번 사양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입을 연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노동자와 약자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이었다. 맞다. ‘사랑’, 그 외엔 달리 찾을 단어가 없다. 이 글은 <삶이 보이는 창> 강의와 개인 인터뷰, 그리고 수 차례의 전화통화 내용을 종합해 재구성한, 그에 대한 궁핍하고 작은 ‘조각글’이다. 63세인 그는 담배를 참 많이 피웠다. “노동자들 신음소릴 듣는다” “숨이 막힌다”고 했다. 전방위적 공세에 고통스러워하는 노동자들의 신음소리를 매일 같이 듣는다고 했다.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위해 총파업에 나서야만 하는 오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오늘이 그를 제대로 숨 쉴 수 없게 만든다고 했다. “파견근로 전면 시행과 임시직의 자유로운 사용이 가능토록 하는 정부의 비정규 노동법 개악안을 막으려고 총파업에 나섰다는 ‘11·26 파업 결의문’을 나도 읽었어. 800만 비정규 노동자로도 모자라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어 버릴 노동법 개악안이 국회에 상정됐고, 바로 이것은 1천500만 노동자를 눈물나는 비정규직으로 만들어 자본에게 더 큰 이윤을 보장하겠다는 의도라는 지적도 거기 들어 있었어. 지난 몇 년 동안 난 정부와 관료, 국내외 자본이 힘 합쳐서 우리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단 한 점의 인정도 안 두고 퍼부어 대는 끔찍한 폭격을 봐왔지. 내가 작가라 그런지 밤낮을 안 가리고 퍼붓는 그 끔찍한 폭격소리와 상처 입은 국민이 극도의 아픔을 못 이기고 내는 신음소리를 나는 들었어.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가정이 파괴되었는지 생각해 봐.” 그는 아팠다. 하루에 네 가지 약을 먹고 있었다. 조금 과하게 집중하고 신경을 쓰면 이가 흔들린다고도 했다. “몸만 늙는 게 아냐. 다 늙어. 사랑도 늙고, 분노도 늙어. 내 희망도 늙는 거 같고. 그때마다 내가 소멸해 간다는 느낌을 받아. 태어나서 자라고 반목과 갈등을 계속하다, 이대로 끝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요즘 해. 내 성격이야. 60년대 이후로 한국사회의 흐름과 반목을 해 왔어. 너무 긴 세월이야. 40년이 넘었으니까.” 동시대인들이 시대에 몸을 맡겨 떠밀리고 쓸려가며 명예를 얻었을 때, 그는 시대와 반목했다. 흐르는 시간이 몸의 저항력을 빼앗아 가는 동안에도, 현실에 대한 그의 꼿꼿한 비판의식만큼은 건드리지 못했다. “이건 내가 후배 문학도들을 만날 때 하는 말인데, 내가 ‘난쏘공’을 쓸 때는 노동자들이나 핍박받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적들만 무너뜨리면 된다고 생각했어. 그때는 독재권력과 악덕 대기업, 그게 투쟁의 전부였으니까. 지금 상황은 그때보다 몇 배나 더 복잡해졌지. 착취의 방법은 더 교묘해졌고, 더 악랄해졌어. 국민이 3대에 걸쳐 세계 최장시간 착취 중노동을 해 주었는데도, 머지않아 선진 제1세계에 도착해 온 국민이 행복하게 잘 살 거라던 우리 조국은 지난 시절 범죄 독재자들이 수도 없이 약속한 그 꿈같은 낙원에는 근처에도 못 가보고, 당장 내일이 안 보이는 절망의 늪으로 끌려와 깊이 빠져 버렸어.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나는 숨이 막혀. 그래서인지 지금 우린 나침반 하나 없이 밀림 속을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역사의 진보를 믿고, 시간이 지나면 밀림에서 나와 앞이 확 트인 개활지를 언젠간 보게 될 거라 믿어. 유럽 68혁명 때 그쪽 현장의 한 젊은이가 말했던 대로, 우리가 어떤 구조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 구조에서 빠져 나오지 않으면 안 돼. 그러나 빠져 나온 뒤에 갈 곳이 없다면, 우리는 그것에서 빠져 나올 수도 없을 거야.” 시간이 흐르고 상황은 복잡해졌다. 적도 색깔을 바꿨다. 볼 때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다. 타깃을 정해 화살을 쏘려 하면 금새 색깔을 바꿔 적이 아닌 것처럼 꾸민다. 자신들이 동지라 불렀던 사람에게 비수도 꽂는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노동운동 진영을 겨냥해, ‘그들만의 노동운동’이라 비판한 일, ‘귀족노조’란 논리가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는 현실을 그는 “정치꾼들이 만들어낸 분열”이라 표현했다. “매일 여기저기서 수도 없이 뿌려대는 정치·경제적 언사들에 대해 나는 말할 게 없어. 저희 편리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지는 말들은 늘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야. 일반 국민이 그렇듯이 정치인들도 자기가 아는 것만큼만 말해. 물론 이 ‘앎’에는 그들이 왜곡시키는 것만큼이나 잘못도 많지. 이런 왜곡에 많은 국민들도 동의하는 건 정말 두고두고 분노할 일이지만, 문제 많은 나라의 국민들이 그런 것처럼 우리 국민도 죄 많이 지어 온 캄캄한 부패 정치꾼들이 바란 대로 ‘분열’된 상태인 거야.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에 사는 우리에게 이 분열은 또 다른 비극이지.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선거철이 되면 정치꾼들이 되뇌는 말, 즉 ‘조국과 민족을 위해’ ‘굳은 신념 갖고’ ‘일관된 생애를 사는’ 사람을 아무리 눈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었어. 우리가 정말 신뢰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정치인은 실수라도 이 땅에 단 한 사람도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조세희 선생은 여러 번 ‘중복성원’을 비판했다. 여기에도 속하고 저기에도 속하는 사람들, 그들의 언어와 행위는 우리에게 상처만 줄뿐이라고 했다.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말로 독재에의 항거를 외쳤던 사람들이 그 독재자의 후예들에게 부역하며 떵떵거리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그의 목소리는 높아졌고 말은 빨라졌다. 쉽게 내뱉고, 쉽게 주워담는 그들을 그는 ‘괴물’이라 했다. “‘누구누구를 위하여’는 사실상 있을 수가 없어. ‘민중을 위하여’가 어딨어. 한국사회에서 이 시간에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부자든가, 도둑이든가, 바보 중에 하나야.” 언어는 배반당했다. 그래서 그는 더 말수를 줄이며 살았다. “공무원노조, 아무도 죽일 수 없다” 전국공무원노조에 대한 정부와 여론의 맹폭에도, 그는 몸서리쳤다. “나는 정말 무서운 것은 ‘무지’라는 생각을 종종 해. 나 자신은 어느 노조의 조합원도 아니고, 정말 아무 것도 아니지만 우리 공동체 안의 일들을 생각하다 보면 공포심에 사로잡힐 때가 많아. 이런 공포심을 제대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아.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전원 중징계·파면·해임 또는 ‘전교조식으로 복직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들을 쉽게 하는데, 아직 정리하지 못한 가까운 과거의 일들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런지 우리 시대의 이런 무지와 잔인함에 난 몸서리가 쳐져. 이때 들리는 파면·해임·복직불가라는 말이 내게는 ‘너희는 직장에서 쫓겨나고, 너희 가정은 이 어려운 시절에 경제적 압박을 못 이겨 파괴되고, 너와 가족은 피눈물을 흘릴 것'이란 말로 들려. 막말로 ‘우리말 안 들으면 너희는 죽는다!'는 뜻이야. 그러나 이걸 알아야 해. 긴 독재시절 함께 죄 짓고 그 죄의 단물 빨며 잘 살아 온 썩어문드러진 인간들이 자기들한테 좋도록 우리나라가 더 오래 재난에 빠져 허덕이게 하고 싶겠지만, 우리 역사는 오늘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 무엇보다 공직사회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을 앞세운 공무원노조를 이젠 아무도 죽일 수 없어.” 공무원노조 파업은 3일 만에 끝났고, 정부는 파업참가자 처벌에 분주하다. 처벌에 소극적인 자치단체엔 각종 불이익을 주겠다고 위협하고 있고, 거부하는 자치단체장은 검찰에 고발했다. “전교조 때처럼 복직되는 일도 없을 것”이란 말도 수 차례 강조하고 있다. 과거 전교조에 엄청난 시혜를 베푼 것처럼. “전교조 때를 운운하지만, 그때 권력이 얼마나 무지했어? 공포심도 엄청나게 조장했고. 그런다고 전교조가 죽었나?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를 보면 부정부패로 잘 산 조선의 공무원 이야기가 수도 없이 나와. 백성을 못 살게 괴롭힌, 말로 다 못할 악한 도둑 공무원 이야기도 있어. 거기엔 가난한 백성을 울리며 세금 열을 거두어 다섯을 국가에 바치고 다섯을 저희 집에 몰래 숨기는 이야기, 더 심할 땐 두셋을 국가에 바치고 일고여덟을 도둑질해 축재하는 이야기까지 나와. 조선은 깊은 속병이 들어 모로 쓰러져 누웠고, 내부의 적들인 이 부정부패한 자들은 쓰러진 조선을 뜯어먹으며 통통하게 살이 쪘어. 비쩍 마른 불행한 백성과 달리 저희만 행복하게 잘 산 거야. 공무원노조 이야기를 하다가 조선의 부패 공무원, 무지와 탐욕·잔인·부도덕성 때문에 역사에 ‘나라 망하게 한 내부의 적’으로 기록된 옛날 도둑들 이야기까지 했는데, 생각해 보면 이야기는 아주 간단해. 이번에 파업에 참가해 이미 끔찍한 고통을 받기 시작한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조선이 아닌 현대 한국의 더러운 부정부패에 연루되고 말 그대로 부도덕한 집단이라면, 공무원노조는 스스로 와해돼서 한국에 존재할 수 없게 될 거야. 그러나 내가 보기엔 정반대야. 모든 운동에 앞장선 사람들은 우리 공동체의 전체 구성원들과 비교할 때 무엇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지. 그들은 먼저 갖가지 악조건과 싸워 이긴 다른 노동조합이 그랬던 것처럼 조국의 캄캄한 현실 때문에 눈물을 흘려본 사람들이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무거운 고통의 짐을 지고도 좀더 나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들이니까.” 세상과 불화하는 사람 근래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자주 접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가 글을 발표하지 않는 까닭이다. 하지만 실은 그의 이름을 우린 도처에서 듣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는 공안연구소가 아직 그의 ‘난쏘공’을 ‘용공문건’에 올려두고 있단 사실이 드러났고, 도처에서 발표하는 한국대표작가에 그의 이름이 오르고 있으며, ‘난쏘공’이 중고등학생 논술자료로 빠지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우리 곁에 있었다. 이름만이 아니다. 그는 실제 몸으로 우리와 함께 있었다. 반전평화운동 조직에 참여했고, 때마다 진보정당 지지선언을 했으며, 무엇보다 각종 집회에 모습을 나타냈다. 특히 노동자 집회엔 거의 빠지지 않는다. 몸이 아파도 사진기를 둘러매고 집을 나선다. 그 사진기로 노동자들의 숨결을 느끼고, 호흡한다. “가끔 집회장엘 가서 사진을 찍어. 사진을 찍으려면 현장에 있어야 돼. 현장에 못 가고선 찍을 수 없지. 내가 카메라를 들고 어딜 간다는 것은 현장 깊숙이 들어가는 거야. 글을 쓰는 사람은 집에서 써도 돼. 하지만 사진은 아니지. 현장에서 현장을 호흡해야 돼. 사진기를 대고 있으면 노동자들 숨소리가 다 들려. 내가 글도 못 내놓고 있는데, 노동자 친구들 외로움 탈 수 있으니까 내가 가서 외로움의 분량이 줄어들 수 있다면 하고 바라면서 가는 거야. 근데 얼마 전 시청 앞 집회에서 민주노총 금속연맹 조합원들을 만났어.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을 ‘귀족노조’라고 욕할 때야. 내가 알기로 금속연맹의 조합원들을 이끄는 선두차의 멘트는 언제나 빛나. 그건 투쟁을 이끄는 모든 말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인간적이야. 그래서 금속연맹의 선두차는 내가 뛰어 올라서 탄다고. 헌데 그날 굉장히 불행한 일이 있었어. 노동자들이 경찰에 맞는 거야. 젊은 노동자들이 나 보고 피하래. 그 빛나던 투쟁 대열이 몇 십분 후에 시청 뒤쪽 골목에서 이른바 막강한 공권력에 짓밟힌 거야. 그 동안 나도 몇 차례 다친 적 있어. 내가 늙어서 잘 피하질 못해 그런 거야.” 조세희 선생에게 노동자들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작품활동’이다. “우리가 꼭 구호나 투쟁 몸짓으로 만나는 건 아니어도 어떤 연대의 시간을 가질 때, 그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생활 자체가 나에게로 와서 나를 흔들지. 그래서 나는 작품은 많이 못 써도, 내 안에는 여러 편의 작품이 들어 있다고 말하지.” 때문에 활자화된 작품에서 그는 ‘과작작가’지만, 삶이 만들어낸 작품에서 그는 분명 ‘다작작가’다. 그는 그러나 안타까워했다. 돈도 먹을 것도 없어 아이들 옷에 주머니를 달아주지 않았던 엄마, 고기 사 먹을 돈이 없어 엄마 몰래 옆집 고기 굽는 냄새 맡으러 가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아빠, 117센티미터의 키에 32킬로그램의 몸무게를 지닌 난쟁이 아빠 때문이다. 자기 말에 책임지지 않는 시대에, 언어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잡고 쉽게 쓰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그지만, 오늘의 난쟁이들의 고통을 마음껏 써 주지 못하는 처지를 그는 마음 아파했다. ‘산업화시대’ 한국사회가 너무 아파 절규했던 그는 ‘정보화시대’를 구가하는 지금까지 절규하고 있다. ‘난쏘공’의 언어가 지금도 아픈 까닭은 그 때문이다. 시간이 흘렀지만, ‘난쏘공’의 선명한 피 같은 아픔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 노동현실이 변했다지만, ‘난쏘공’의 단어 하나하나는 아직 가시 같고 면도날 같다. 짧게 끊어 치는 ‘난쏘공’의 단문들이 절규하는 듯한 그의 말투를 닮았다는 사실도 그를 만나고서야 알았다. 목이 쉬고 핏줄이 터지게 외치고 싶은 말들을 그 짧은 문장들 사이에 꾹꾹 눌러 앉혔다는 사실도 이제서야 알았다. “사람은 생이 주어지는 순간부터 죽기까지 누구나 한 번은 절규한다고 해. 난 그 말을 믿어. 어느 역사에든 빛나는 순간이 있어. 그 순간을 찾아 봐. 거기엔 절규하는 사람이 있어. 그 순간의 역사가 빛나는 건, 그 사람의 절규가 너무 진실하고 정의롭고 아름다워서 후대 사람들이 버리지 않고 잘 모아 놓았기 때문이야.” 63세, 그는 요즘도 혁명을 꿈꾼다. 피 흘리는 혁명이 아니다. 꿈꾸는 것 그 자체가 그에겐 혁명이다. 아름다운 사람이 죽으면 하늘의 별이 된다고 믿는 것, 고통받는 사람이 있는 한 신화는 계속된다고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믿는 것, 그게 그가 꿈꾸는 혁명이다. 더운 날, 강가에 앉아 기다리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다. 조세희, 그는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너무 쉽게 화해하고, 너무 쉽게 과거의 적에 동화되는 시대, 그 시대와 반목하며 가난하게 살아 온 사람. 그는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고, 세상에 의해 따돌림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입으론 ‘시대와의 불화’를 외치고, 몸으론 독재자와 그 후예들을 비호하며 떵떵거리는 사람들이 ‘불화’란 아픈 단어까지 오염시키고 있을 때, 조세희의 불화는 우릴 행복하게 한다. 그의 한 마디 말처럼. “외길 가는 사람은 외로워도 그 길 가야 돼. 그래야 행복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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