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가족형태 비판과 성적차이 페미니즘
- 이현주 ∥ 대학교육분과
1.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정치에 참여할 여성의 권리에 대한 요구는, 19세기말 20세기초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대중적인 투쟁으로 폭발했다. 이 투쟁을 통해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주축으로 하는 1세대(first wave) 페미니즘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참정권을 획득한 뒤에도 여성의 차별은 지속되었고, 이에 따라 여성의 종속을 재생산하는 억압형태와 대결할 필요가 제기되었다. 1세대 페미니즘은 1차 세계대전 이후로 쇠퇴했다. 1960년대 이후 2세대(second wave) 페미니즘 역시 자유주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2세대 페미니즘에는 평등개념이 핵심이었다. '사적' 영역의 변화 없이 '공적' 영역으로의 진출을 통해 이른바 여성의 문제에 대한 제도적 해결을 모색하려는 것이었다. 이후 사적영역의 변화를 주창한 것은 급진 페미니즘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분리주의'적 경향을 도입했다.
같은 시기의 사회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영국 또는 유럽의 전통과 관련된 것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급진 페미니즘에 결여된 자본주의 비판을 가부장제 비판과 결합하려고 시도했다. 특히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지난 세기 생시몽·푸리에와 오웬의 유토피아 사회주의로 소급된다면,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가족과 성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맹목성이 지적되는 가운데 가사노동·가족임금을 비판했다.
이 글은 여성운동의 이론적 궤적과 역사를 살펴보는 것과 동시에 그 과제로 제출되는 가사·양육의 사회화와 여성의 상징, 그리고 '성적차이의 윤리'의 구상에 대한 이해를 위한 것이다. 더군다나 교육운동에서도 '양육의 사회화'라는 부분은 많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더 고민해보도록 하며,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이론적 성과로서, 근대적 가족형태의 형성과정에 관한 비판적 분석을 살펴보도록 하자.
2. 여성억압의 장소
2-1. 엥겔스의 기여
마르크스주의에서 여성억압에 관한 이론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엥겔스의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이하 『기원』)이다. 엥겔스는 이 저작에서 역사적으로 특수한 가족형태들을 개념화하고, 나아가 여성 억압을 역사적으로 변화해온 가족형태 속에 위치지었다.
남성들은 사적 소유의 출현과 더불어 상속할 아이들을 원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여성에게 일부일처제를 강제하고자 했다. 이 때문에 엥겔스는 일부일처제를 자연적 조건이 아니라 경제적 조건에 근거하는 최초의 가족형태라고 불렀다.
나아가 엥겔스는 여성억압을 가족내에서 여성의 지위의 변화와 관련지었다. 생산의 중심적 장소가 가족밖으로 변화되면서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도 변화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통제가 남성이 소유를 통제한다는 사실에 근거하기 때문에, 엥겔스는 여성억압을 사적 소유의 소멸에서만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현재의 일부일처제 가족이 남녀간의 사랑과는 무관한 경제적 필요의 결과이기 때문에 경제적 필요의 소멸, 즉 계급사회의 소멸만이 남성과 여성간에 강제적 일부일처제가 아닌 진정한 '성애'(sex-love)에 기초한 결합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본다. 이러한 남녀관계의 단초를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 가족에서 발견했다. 프롤레타리아는 소유계급이 아니기 때문에 강제적인 일부일처제를 필요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족 밖에서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일반적 고용은 남편과 아내간의 평등을 초래할 것으로 예견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고 노동시장에 진출한 여성들은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주변화되었으며, 유급노동과 가사노동이라는 이중부담으로 인해 노동자운동에서도 주변화되었다.
엥겔스의 『기원』은 여성 사회주의자들에게 적극 수용되었는데 이들은 여성억압과 자본주의적 착취 사이의 관계를 입증해 보였다는 점에서, 즉 여성해방이 프롤레타리아 해방과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었다. 하지만 엥겔스의 정식화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마르크스주의는 '여성문제'에 대해 정세적 대응 외에는 어떤 대응도 하지 못했다.
2-2. 가사노동논쟁에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한계
1960년대 여성해방운동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을 새롭게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사노동논쟁'은 당시 여성해방운동이 새롭게 제기한 쟁점들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을 제공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현재의 결혼제도 아래 남녀간의 불평등한 분업이라는 문제에 대해 마크르스주의적 해답을 제공하고자 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가사노동과 임금노동의 관련성, 더 일반적으로는 가사노동과 자본축적의 관련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자본주의에서 가사노동의 기능에 대한 것과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한 가족내에서 성적불평등이라는 문제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있지만 분석적으로 대치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형태에 대한 인식의 결여는 가사노동논쟁의 근본적 곤란을 낳았다. 결국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한 문제는 마르크스주의 가치이론의 틀 내에서 해결될 수 없었다.
이러한 결론에 입각해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문제에 관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접근 자체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비치(Beechey)는 산업예비군 가설에 입각하여 값싸고 신축적인 노동력의 원천으로서 여성의 임금노동이 자본에 제공하는 이점을 강조하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문제삼으면서, 여성의 임금노동에 관한 분석은 고유한 가족형태를 전제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즉 여성의 임금노동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성을 가족에 할당하는 성적 분업과 그 안에 구현된 가부장제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에 여성노동을 제대로 이론화하기 위해 임금노동자로서 여성과 가족의 역사 및 이데올로기 사이의 관련을 분석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엥겔스의 『기원』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된 논점은 성과 계급의 인과적 연관성에 관한 엥겔스의 설명이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엥겔스가 성적 불평등과 성적분업을 단지 생산에서의 계급분화와 사적 소유의 결과로 환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페미니스트들은 엥겔스의 주장과 달리, 성적 억압이 계급사회 이전에도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성적관계의 많은 측면들이 단순히 계급문제로 환원될 수는 없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급진페미니스트들은 계급과는 전적으로 독립적인 여성억압체제로서 가부장제에 관한 이론을 구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또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볼 때 이들의 가부장제 분석 역시 고유한 곤란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곤란은 여성억압을 특수한 생산양식 내에서 탐구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이후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넘어 여성억압에 관한 통합된 이론을 구성하려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시도들은 마르크스주의 진영내에서의 이론적 혁신과 맞물려 가부장제 개념 대신 재생산과 젠더 이데올로기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2-3. 가족임금에 따른 자본주의적 가족의 재구조화
페미니스트들은 가사노동논쟁에서 간과되었던 측면, 즉 인간의 재생산에서 여성이 담당하는 역할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재생산이라는 계기를 간과했다는 점에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남성적'마르크스주의로 비판되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이처럼 재생산의 계기를 누락시킨 '남성적'마르크스주의를 정정하기 위해 다양한 접근을 시도했다. 생산과 재생산을 독립적인 두 과정이 아니라 동일한 과정, 즉 생산의 두 계기들로 이론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시큼(Seccombe)은 생산양식개념에 노동력의 재생산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포함시켜야만 비로소 특수한 가족형태를 통한 노동력의 재생산에 관한 역사적 분석이 가능해진다고 보았다. 한 사회의 지배적 생산양식들은 여타의 대안적 가족형태들의 발전을 배제하거나 방해하면서, 특수한 가족형태들의 재생산을 용이하게 한다. 예를 들어 봉건제 아래 영주적 소유형태는 농민들 사이에서 토지에 대한 장자 상속제를 토대로 하는 직계가족을 육성했다. 반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노동자들을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함으로써 상속을 근절하고 임금형태의 개인화를 통해 친족관계를 고용영역에서 배제함으로써 임금노동자들이 독립적인 2세대 핵가족을 형성하도록 했다.
이러한 관점은 여성억압을 일차적으로 자본주의적 가족형태 안에 위치짓게 한다. 급진페미니스들이 초역사적인 남성지배를 가리키는 포괄적인 범주로 사용하던 가부장제 개념이 가부장적 가족형태 내에서 남편과 아버지가 아내나 자식들에게 행사하는 특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정된다.
농민가족에서 노동자 가족으로 이행할 때, 가부장제의 범위와 형태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엥겔스의 예견대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은 가부장의 권력을 현저하게 약화시켰다.
임금형태가 개인화와 더불어 노동자계급의 아버지들은 자녀들의 성년기로의 이행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다. 뿐 아니라 여성에게 점차 가족밖에서 일할 기회들이 주어졌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남성노동자들의 임금을 상승시켜 단독으로 '가족임금'을 벌어오는 것을 목표로 투쟁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작업장에서 배제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기혼여성의 고용은 부정되었고 미혼여성의 경우는 점차 여성적 직종으로 한정되었다.
페미니스트들은 노동자계급의 가족임금 전략이 가족에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경제적 의존을 강화하고,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여성의 소득을 단지 가족임금을 보충하는 이차적 소득으로 보는 통념을 강화하여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저임금과 직종분리를 정당화해왔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 노동자운동을 분열시킨다는 이유로 이러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가족임금이 모두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보장하는 것으로 간주했는데, 바렛과 맥킨토시(Barrett & Mclntosh)는 이러한 견해를 정면으로 문제삼았다. 가족임금이 역사적으로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켰을 뿐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전체 전투성을 감소시키고, 비노동자를 국가가 아닌 노동자계급의 임금으로 지원해야한다는 견해를 영속시킴으로써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고 약화시켰다. 실제로 가족임금을 둘러싼 투쟁과정은 여성노동자의 이익이 조직된 남성노동자의 이익으로 포섭되고 또 그것에 의해 침해되는 과정이었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새로운 물질적 토대 위에서 남녀관계와 부모-자식관계를 재구성했지만 이것이 가부장제의 최종적 소멸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19세기말 노동자계급 내에서 남성생계부양자규범의 구축과 더불어 가부장의 권력은 가족임금체계라는 새로운 토양에 다시 이식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노동자계급 가족안에서 가부장의 권력이 다시 강화된 것은 자본주의 발전의 불가피한 결과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이는 가족형태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안에 위치짓는 설명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바렛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가족임금의 도입과정에서 젠더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강조했다. 남성노동자들의 가족임금 요구를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부르주아지가 확립한 가족생활에 관한 헤게모니적 정의들-남성 생계부양자와 그에 의존하는 아내와 아이들로 구성되는, 공적영역너머에 있는 사생활의 천국으로서 가족-을 수용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로서 가족과 현실의 가족은 필연적으로 불일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가족의 경제적 조직화와 이데올로기간의 이러한 괴리가 현대가족을 분석하는 데 본질적이라고 주장했다.
2-4. 가족형태와 젠더 이데올로기
바렛은 젠더이데올로기가 구성되는 장소로서 가족에 주목했지만, 어떻게 젠더화된 주체가 출현하게 되는가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가족의 이데올로기적 기능, 남성적·여성적 주체성의 발전에 관한 탐구는 정신분석학을 영유하여 역사적으로 특수한 이데올로기적 과정에 성욕과 젠더 동일성을 위치지으려는 시도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역사적으로 특수한 상황을 초역사적으로 영구화한다는 점에서 회의적이었는데 이를 재평가하게 된 것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이론이었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개인을 특수한 종류의 주체로 재생산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안에서 작동하는데 자본주의에서는 가족·학교가 지배적으로 그러한 역할을 한다.
알튀세르의 분석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전제하고 있는 가족을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 사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프로이트적 가족'을 역사적인 가족형태로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가족안에서 그 위치에 따라 남성적, 여성적 주체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젠더화된 주체의 생산은 맥락에 따라 다른 형태를 취할 것이다. 예를 들어 그것은 특수한 가족형태가 생산양식에 통합되는 방식이나 다른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과의 상호관계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개별 여성이 속한 계급과 인종은 그 여성의 여성성 형성에 상이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족이데올로기 기능을 분석하기 위해 미첼(Mitchell)은 정신분석학에 대한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의 평가를 뛰어넘어 그것을 적극적으로 영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녀는 프로이트가 여성억압의 지속성을 설명할 수 있는 성욕과 젠더에 관한 과학적 설명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프로이트가 생물학이나 마르크스주의와 구별되는 고유한 과학적 대상을 발견했다는 것과 그러한 대상에 관한 프로이트의 설명이 과학적인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특히 이리가레(Irigaray)가 비판했던 것처럼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중심으로 한 성적 동일성에 관한 프로이트의 설명은 여성의 성욕, 여성성의 형성을 이론화하는데 많은 난점을 제기한다. 프로이트 설명에서 가장 논쟁적인 것은 여성성 획득에서 페니스 선망에 부여한 중요성이다. 프로이트가 남성적 욕망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여성의 욕망의 다형성을 포착하지 못한다고 이리가레는 비판한다. 미첼은 프로이트에 대한 라캉의 재해석에 근거하여 단순히 여자아이에게서 페미니스의 부재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부재로 상징화되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즉, 부재하는 것은 실질적인 페니스가 아니라 상징적 페니스로서 '팔루스'(phallus)이다. 미첼은 나아가 레비-스트로스의 친족분석에 근거하여,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아이에게 친족구조와 근친상간을 심리적으로 이식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모든 인간은 근친상간을 욕망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모든 문화에서 금지된다. 요컨대 미첼에게 외디푸스 콤플렉스는 문명을 구성하는 보편적 계기를 의미한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외디푸스 콤플렉스는 강력한 아버지, 아들보다 더 강력한 아버지이자 딸들이 자신과 어머니가 아버지에 비해 무언가를 결여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아버지를 전제했다. 즉 성욕과 젠더 동일성의 획득에 관한 프로이트의 설명은 이미 가부장제의 존재를 전제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프로이트가 명시적으로 자신의 작업을 가족형태와 관련해서 이론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작업은 근대적인 가족형태의 출현이라는 맥락속에서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3. 근대적 가족형태의 역사 : 빅토리아 가족과 아메리카적 핵가족
여성종속의 중심적 장소로서 가족을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과정 속에 위치지으려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이상의 시도들은 현재의 가족형태에 내재된 모순들을 인식하게 해줌으로써 가족을 영원하고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변화와 전화의 과정속에 있는 것으로 사고할 수 있게 해준다. 보편적인 이상적 가족으로 간주되는 가족형태는 그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 아니다.
근대초기 유럽의 부르주아지는 당시의 귀족이나 농민과는 뚜렷하게 대비되는 독특한 가족형태를 발전시켰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가족에 관한 새로운 부르주아적 관념들이 출현했고 하나의 표준으로 확립되었는데 이것이 '빅토리아 가족'(18세기말 19세기초)이다. 이 새로운 부르주아 가족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남녀간의 엄격한 역할 배분이었다. 더 이상 가족이 생산의 장소가 아니게 된 부르주아 가족에서 남편은 소득을 제공하고 아내는 가정생활의 차원으로 재정의 되었다. 이시기에 부르주아 가족의 부모-자식관계는 과거와는 다른 감정적 친밀성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로써 여성의 재생산책임에서 강조점이 출산에서 양육으로 이동했고 모성이 여성에게 최고의 소명이라는 새로운 관념들이 유포되기 시작했다.
성욕이 조직되는 방식 역시 크게 변화했다. 새로운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지는 규제되지 않는 성욕에 직면하여 관능적인 귀족 및 난잡한 노동자와 대립되는 자제력을 갖춘 도덕적 계급으로서 스스로를 정의하고자 했다. 부르주아지는 성욕과 사랑을 분리하는 독특한 결혼제도를 발명한다. 부르주아 여성은 정숙한 무성적 존재로, 부르주아 남성에게 섹스는 부드러움의 감정과는 분리되어 하층계급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매춘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는 두 배우자 모두에게 성적 만족이 불가능하게 했는데, 대신 부르주아지는 결혼을 위한 매력으로 '낭만적 사랑'이라는 새로운 관념을 유포하여 철저히 경제적인 타산이 지배하는 부르주아 가족을 만들었다.
또 여성성과 남성성이 새롭게 정의되었는데, 남성에게는 경쟁과 관련된 특성들, 여성에게는 협력과 관련된 특성들이 할당되었다. 이러한 성적차이는 공적영역을 남성전용구역으로 그리고 사적영역을 여성전용구역으로 간주하는 별개영역이라는 빅토리아적 통념을 초래했다. 이는 공적영역으로부터 여성의 배제를 정당화하면서 여성의 정치세계로의 접근을 금지하고 노동시장에 성적 이중기준을 도입함으로써 여성의 경제적 의존을 정당화하는데 기여했다.
한 세기를 경과하면서 노동자계급 가족도 점차 부르주아 가족을 닮아가기 시작했는데, 부르주아 가족이념이 노동자계급에게 이식되기 위해서는 남성 생계부양자 이념과 같은 추가적인 매개들이 필요했다. 노동자들간의 경쟁(생산수단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면서 여성들도 노동시장에서 남성들과 경쟁)으로 생존자체를 위협받게 되면서 '생활임금'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요구는 시장법칙에 따라 결정되는 '시장임금'을 주장하는 자본가와 자유방임 경제학자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지만, 남녀노동자계급 모두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노동자운동내 변혁적 조류들이 소멸하고 실용주의적 조합주의가 득세하면서 이러한 요구는 점차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는 '가족임금'으로 다시 정의되었고 진보주의적 개혁가들, 고용주들이 노동자들을 분할·통제하는 수단으로서 그것의 가능성을 인식했다. 이것이 바로 아메리카적 핵가족이 출현하게 되는 배경이었다.
나아가 아메리카적 핵가족은 가족임금 체계를 토대로 하여 빅토리아적 가족을 대중화하고, 빅토리아적 가족이 이상화한 낭만적 사랑을 '동반자적 사랑'으로 대체했다. 남녀간의 성적 일치감으로 대체함으로써 낭만적 사랑을 세속화시켰다. 이에 따라 아메리카 핵가족은 성애적 부부관계('부부생활')를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이처럼 여성이 자녀에 전적으로 헌신하며 동시에 남편과의 열정적인 성적 흥분을 유지할 수 있다는 관념은 1920년대 '1차성혁명'에서 유래된다. 우선 이 시기에 새로운 구애제도가 등장했는데, 미혼 남녀에게 더 많은 성적 자유를 허용하면서 성욕은 자기동일성과 자기 발견의 주된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구애제도는 미혼여성의 아버지에게서 남성친구에게로 권력을 이전하는 의미였다. 이 때문에 빅토리아 시대와는 달리 여성의 성욕이 인정되었지만, 성적 자유화는 성적인 이중기준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남성이 성적으로 공격적인 것은 정상적인 또는 '자연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또 남성은 더 이상 결혼을 위해 순결을 지킬 책임을지지 않게 된 반면, 이는 전적으로 여성의 일이 되었다.
그러나 '동반자적 결혼'은 고유한 불안정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이는 남녀간의 성적 일치감을 강조하는 동반자적 결혼은 그러한 일치감에 도달하기 위한 전제로서 성적 불평등을 근거지었다. 이러한 모순은 '2차 성혁명'을 촉발시켰고 이로 인해 동반자적 결혼이 내포한 성적자유의 불평등하고 배타적인 정의들은 해체된다.
1960년대 말 아메리카 법인자본주의의 위기와 더불어 가족임금 체계가 위협받으며 남성생계부양자 가족은 더 이상 지배적인 가족형태일 수 없게 된다.
4. 가족을 넘어서
이러한 가족의 위기는 가족관계를 넘어서는 사회경제적 구조의 총체적 위기의 일부이다. 따라서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경제 전체를 재조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가족은 이처럼 사회경제적 삶의 다른 측면이 재조직될 때만이 변화할 수 있다.
많은 여성들이 가족에 대한 신화가 깨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족에 머문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이는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결혼 외의 다른 대안들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의 물질적 토대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현재 사람들이 가족에게 거는 모든 기대들을 충족시켜줄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추구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찾아냄으로써 가족을 덜 필요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질적 토대의 소멸과 동시에 그 안에서 추구되었던 남녀간의 낭만적 사랑 또는 동반자적 사랑 역시 역사적 시효를 다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제 가족의 틀을 넘어서는 남성과 여성사이의 새로운 사랑과 유대를 사고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