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논문] 마르크스의 변증법은 동일성의 변증법인가?
- 헤겔철학의 마르크스에 의한 전도
진보평론 제4호
김경수(고려대 강사/철학)
1.
마르크스나 그와 일정 연관하에 있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에서, 또 나아가 이들에 대한 철학적 비판에 있어서 헤겔과의 관련, 특히 변증법에 대한 논의가 가장 중요한 것들 중의 하나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에 대한 차별적 논의는 논자들의 의도와 주장과는 달리 언제나 안개 속에 싸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양자의 차이를 그토록 분명히 하고자 했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공식적 입장에서나, 어떤 목적에서이던 마르크스나 마르크스주의들을 비판하는 쪽에서나 따지고 보면 이 문제와 관련해서 텍스트 내재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논의 이전에 이미 전제되어 있는 특정 입장에 근거하고 있는 외재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고 보인다. 이런 사정은 국내의 이론적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1980년대의 이념의 ‘질풍노도시대’ 이후 이에 대한 철학적 ‘반성을 대행’하여 준, 1990년대에 국내에 소개된 프랑스 현대사상들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고 보인다. 대개의 경우 이 사상들에서는 헤겔과 마르크스, 마르크스와 그의 영향사를 구분하지 않고 ‘폐기되어야 할 변증법의 유산’이란 동일한 척도에 따라 이들 모두를 한 몫에 비판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이론 내적으로 볼 때, 그들의 원래 출발점과는 달리 사실상 지금 그들이 만나고 있는 ‘역사적 현실’이란 매개되지 않은 직접성에, ‘차이’로 형성되어 있다는 역사적 현실의 ‘객관성’이 완전 굴복 당해 버린 형국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헤겔이 이성의 역사라는 사변적 기획을 통해 얻어낸 일정한 긍정적 유산도, 또 마르크스가 이를 유물론적으로 전도하면서 얻어낸 ‘차이의 변증법’도 모두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단순히 스탈린주의적인 변증법으로 획일화되어 비판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철학적으로 볼 때, 헤겔의 기획도, 마르크스의 기획도 그 자신의 시대를 벗어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욕망과 권력, 신체 등 근대적 주체형성에 대한 다른 접근과 더불어 현대 프랑스 사상이 이루어낸 중요한 공적 중의 하나로 보아야 할 ‘차이에 대한 반성’이 스스로의 출발점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논의 맥락에서 보면 비판적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저 대상들간의 ‘차이’를 단순한 한낱 ‘동일성’ 가운데로 평탄화 시키지 않는 가운데 이들 대상들이 구사하는 개념도구들을 내재적으로 반성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차이’를 ‘차이’로 보존하는 과학적 노력 가운데에서야 비로소 한국의 1980년대와 1990년대, 그리고 독일의 비판철학 전통과 프랑스 현대철학이 이 개념도구를 중심으로 비매개적으로 단절되어 있는 2000년대의 이론적 현실이 발전적으로 지양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럼에도 이 양자간의 분열을 지양될 수 없는 현실적 ‘차이’로만 본다면 이것 또한 현실에 대한 실증적 이해가, 이들이 비판하는 현실에 대한 실천적 이해만큼이나 과학론적 아포리에 빠져 있음을 고백하는 일이 될 것이다.
2.
이런 문제의식에서 볼 때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검토해야 할 것은 포이에르바하이다. 포이에르바하가 마르크스의 철학적 형성과정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기는 하나, 그것의 실질적 범위에 대해서는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마르크스가 헤겔을 비판하고 전도시켜, 그 합리적 핵심을 확보하려 하였을 때 마르크스에 앞서 이 길의 대강을 닦아 놓았던 것은 바로 포이에르바하였다. 그것은 1844년 『경제철학 초고』에서 마르크스가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칭찬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의 철학발전사에서 마르크스가 새로 열어 놓았다는 길들의 많은 것은 이에 선행하는 포이에르바하의 헤겔비판을 기반으로 해서만 가능했다. 그것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포이에르바하가 이론적으로 헤겔의 절대적 반성과는 다른 매개구조를 요청한 것에 있다.
포이에르바하는 1826년에 쓰여진 자신의 ‘학위논문’에서, 유개념에 함축되어 있는 초시간적인 구조를 원용하여 칸트적인 이성을 개인적인 이성이라고 비판하였다. 이때 포이에르바하는 이 유개념을 헤겔의 정신(Geist) 개념과 동치 시켰다. 그는 이렇게 헤겔의 사변적 이성과 유개념에 근거한 소위 인간적 이성을 병치시킴으로써, 헤겔의 철학을 인간학화 할 수 있는 기반을 자기의도와는 달리 이미 그 출발부터 닦아 놓고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그의 1828년에 표명한 헤겔체계에 대한 회의는 이것의 피할 수 없는 귀결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에어랑엔에서의 『논리학과 형이상학에 대한 강의』(1830/31)에서 포이에르바하가 헤겔의 논리학에 대한 본격적 강의에 앞서 매개되지 않은 직접성으로서의 ‘자연과 인간’을 다루는 것도 바로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변적 이성의 인간학화로 인해 헤겔 체계 내에 잠복하여 있던 의사소통적 특성이 포이에르바하에서 유적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대체되었을 때, 이 인간학화를 통하여 마찬가지로 헤겔의 시간개념도 인간의 구체적인 시간개념으로 대체된 것이다. 헤겔이 ‘해체된 신’의 개념을 아직도 영원성내에 위치지우고 있었다면 포이에르바하는 이를 인간의식의 투사로서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내로 세속화 시킨다.
그의 헤겔과 차별화되는 시간의 개념은 『미래철학을 위한 예비적 명제』(1842)와 『미래철학의 근본명제』(1843)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포이에르바하는 1843년까지 범주적으로 보아 차이를 동일성에서 포착하여 다시 동일성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헤겔의 사변적 변증법을 차이로부터 출발하는 너와 나의 대화의 변증법으로 형태변화시켰다. 이러한 과정은 구조적으로 볼 때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의 변증법의 선행하는 형태로 이해될 수 있다. 다른 면으로 보면 포이에르바하는 이렇게 사변적으로 파악된 헤겔의 역사적 시간을 단어 그대로의 의미에서 차안화시켰다. 이러한 포이에르바하에 의한 헤겔변증법의 형태변화에서 유의 초시간적인 구조는 개인들의 시간을 자체 내에 포괄하고 있다. 포이에르바하는 유개념을 가지고 개인들의 유한성을 보충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의 대화의 변증법 가운데에서는 대화의 최종적인 목표로서의 대화당사자인 ‘너와 나의 통일’, ‘철학의 최종목표로서의 인간과 인간의 통일, 하나됨(Einheit)’은 대화의 끝에 동일성의 형태로 재생되어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그에 의한 헤겔의 전도는 말 그대로 ‘헤겔을 뒤집어 놓은 것’으로, 출발점만 동일성에서 차이로 이전시켰을 뿐 헤겔의 사변적 변증법의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그의 비판은 일관성이 없다. 그의 헤겔 전도는 이런 의미에서 단어 그대로의 의미에서 ‘해체된 신’으로서의 헤겔의 정신(Geist)을 세속화(Säkularisieren)시킨 것으로 사변적 통일 가운데 이루어지는 모순의 해소과정이 현실에서의 무한한 시간적 진행가운데의 ‘과정적 통일’로 그 지평이 이전된 것일 뿐이다.
3.
마르크스의 출발점은 일단 포이에르바하가 대화의 변증법에 의지해 인간관계의 완성을 철학의 최상의 과제로 설정한 것에 있다. 그는 포이에르바하를 통한 헤겔의 전도, 즉 ‘시간 가운데의 감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포이에르바하의 ‘대화의 변증법’과도 차별화 되면서 또 헤겔의 관념적인 사변변증법 자체의 논리구조와도 차별화 되는 독자적인 변증법적 구조를 발전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발전을 추적함에 있어 ‘철학의 실현’이란 그의 1840년 초반의 청년헤겔파적인 대단위 기획을 같이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철학의 실현이란 기획은 철학의 정점으로서의 헤겔 철학을 구체적 현실에서 실현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철학과 정치적 실천의 결합이요, 철학과 개별과학으로서의 실증과학과의 일정한 연관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함에 있어 이론 내적으로 중요한 것은 시간의 계기로, 이 시기까지의 포이에르바하에서 사용되고 있던 유의 초시간적인 개념이 청년 마르크스에게서 어떻게 차별화되어 수용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마르크스를 헤겔과 구별시켜 주는 대목은 그가 바로 포이에르바하의 헤겔비판을 이어받아 비철학으로부터 출발함으로서 헤겔에서는 절대적 주체의 자기관계로 수용되어 있는 저 의식 밖의 대상을 복권시킨 것에 있다. 포이에르바하에게서 비철학이란 다름아닌 인간의 반성능력 밖에 존재하는 자연과 인간이었다. 이는 원래 포이에르바하에 있어서는 헤겔을 보완하는 사변과 경험의 통일 이란 철학적 프로그램으로 철학(헤겔철학)과 비철학간의 새로운 결합을 의미하였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출발점을 그의 1844년 『경제-철학 초고』에서 기술하고 있는데, 그 결과물은 그럼에도 포이에르바하와는 다른 것이었다. 즉 그는 포이에르바하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그때마다의 주체의 반성능력을 넘어서는 것으로서의 ‘자연’을 헤겔의 거대주체내의 지양대상으로 존재하는 저 ‘대상성’에 대비시킨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외와 이를 회복하는 과정이 작동되는 장을 정신이 아니라 대상적인 세계로 파악함으로써 이 관계도 절대적 주체의 자기관계(헤겔)도 아닌, 또한 한낱 ‘매개되지 않은 직접자’로서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강조(포이에르바하)도 아닌, 구체적 현실에서 벌어지는 현실적 대상들의 대상적 반성관계로 대체되고 만 것이다. 또 헤겔의 정신노동도 유적 인간이 행사하는 감각적-대상적 활동으로 대체된 것이다. 이럴 때 역사 자체도 헤겔에게서 처럼 정신의 자기관계사의 전개로서가 아니라 유적 인간들의 사회적 노동에 의해 매개된 ‘대상적인 관계들의 발전사’로 포착되게 된다. 이럼으로써 그는 당대의 철학적 발전의 일반적 조류, 즉 경험론과 비사변적인 철학적 구성의 길을 걸어가며 자연과학 자체의 발전을 자기 이론내에 수용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자체 내에 확보하게 된 것이다. 철학사적으로 요약하여 그는 전통적인 경험론과 비교할 때 강조점을 대상적 관계에 부여하며, 관념론에 대해서는 대상적 관계에 위치시킨다. 이리하여 『독일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는 헤겔주의적인 ‘철학자’들을 다음과 같이 비판적으로 정식화하고 있다.
“철학자들에게서 관계=이념. 그들은 오로지 ‘인간’의 자기 자신과의 관계만을 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모든 현실적 관계들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이념으로 변화한다”(MEW, 3, 63).
한편, 우리가 여기서 일단 주목해야 할 것은 정신의 자기관계가 대상적 관계로 ‘개념전이(轉移)’ 되면서 새로운 변증법적 구조의 단초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즉 그가 정신에 의해 지양될 수 없는 대상으로서 압도적인 자연을 의식밖에 설정할 때, 이 관계에서 ‘대상의 차이는 주체에 의해 결코 지양될 수 없으며, 상위의 궁극적인 동일성안으로 흡수될 수 없다’는 구조가 드러난 것이다. 철학사적으로 이런 구조는 먼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지하여 헤겔을 비판한 트렌델렌부르크(A. Trendelenburg)에서 연원하는 바, 이 전통을 이어받아 포이에르바하는 변증법의 출발점을 ‘동일성’이 아닌 ‘차이’에서 보면서 “(헤겔적인-필자) 이성은 물질에서 그 한계를 갖는다” 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 『정치경제학 비판 강요』에서 마르크스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관계, 그 관계를 규정하면서 현실적인 차이를 지양하지 않는 변증법”(MEW 42, 43)을 주장하면서 그의 청년기에 포이에르바하를 통해 확보된 헤겔비판의 핵심을 자신의 정치경제학 연구에 적용한다. 현대에 와서는 아도르노가 그의 주저 『부정변증법』에서 헤겔의 철학적 기획을 동일성의 철학으로 읽고 이에 대해 동일성에 포섭될 수 없는 비동일성의 계기를 부각시킨다.
마르크스에게서 이 “유한한 현실 내에서 작동하는 변증법”, 다시 말해 유한한 현실내부에서 구조화된 총체성의 논리는 그럼에도 특히 1844년 『경제철학초고』에서는 일단 발전논리와 중첩된 관계로 등장한다. 마르크스는 1843년 『헤겔법철학비판』에서 논리적 쌍으로서의 “참된 극단들은 상호 매개되지 않는다”고 논리적 개념으로서의 ‘극단’을 모순개념과 동일시하면서 헤겔이 시민사회의 모순을 자연인으로서의 절대군주가 매개하게끔 한 구조를 비판한다. 그에게서 이것은 부당한 것으로 “사회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 만큼 참되게 성숙하지 않은 규정”이 매개를 담당하는 사태를 의미한 것이다. 이런 그의 비판의 이면을 분석하여 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도출된다. 즉 이 규정이 사회적으로 성숙하였다면 매개를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1843년의 『헤겔법철학비판』에서의 헤겔비판의 참 모습이 드러난다. 즉 그는 헤겔이 이념의 구현체로서의 절대군주에게 부여한 매개역할의 타당성을 문제시하면서 다른 매개체를 희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후일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이행적 정치체제로 발전하는 바, 여기서 그의 발전논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적어도 1844년의 『경제철학 초고』에까지의 그는 이 발전논리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무차별적 통일”을 상정하고 있는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기대에 찬 서술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이중적 구조가 가능했던 것은 시간론적으로, 또 순수이론적으로 볼 때 아직도 헤겔의 사변적 시간을 세속화시킨 것에 머물러 있는 포이에르바하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한 것에 있으며, 따지고 보면 그가 단지 “뒤집어 놓은 헤겔”의 지평을 벗어나지 못한 것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는 포이에르바하가 유를 그의 이론의 주체로 상정하면서 유의 초시간성, 초공간성에 의지하여 한낱 개인들의 불완전함을 극복하고자 하였을 때 이 개념이 가지는 형이상학적 귀결을 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유로서의 인간을 “대상적 관계의 발전사” 이면에서 작동하는 이론적 주체로 상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식적으로 보아 절대정신 내에서의 소외의 극복과정이란 헤겔의 “낭만주의적인 소외 극복개념”을 현실 내부에로 이동시켜 놓았고 이런 한에서만 대상적 관계의 자기 발전사의 동력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현실 내부에 존재하는 소외의 완전한 지양이란 1844년 『경제철학 초고』의 프로그램은, 따지고 보면 포이에르바하가 제시한 ‘차이로부터 출발하는 너와 나의 대화의 변증법’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사변적인 풍모’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그는 ‘시간과 부정성이 지양’된 무차별적 동일성의 지점으로서 공산주의의 단계를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기획으로부터 결정적으로 거리를 취하게 되는 것은 텍스트 내재적으로 볼 때, “현실적 개인들”이란 이론적 주체의 등장이다. 이 “현실적 개인”들이란 개념은 『신성가족』에서는 간헐적으로, 따라서 이론 내적으로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나타나며, 『독일이데올로기』부터는 그의 이론구조를 뒷받침해주는 중요한 축으로 등장한다. 이를 통해 “유한성 내부에서 구조화된 총체성”이 지니고 있는 구조논리와 발전논리의 이중의 축의 전개방향이 그 이전 시기와 상당한 정도로 차별화 된다. 즉 『신성가족』에서 마르크스는 유산계급과 프롤레타리아의 대립이 무산계급인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를 통해 종식되는데, 이것은 결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절대적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자기의식 장에서의 ‘나와 우리간의 통일에 비견될 수 있는 논리적 구조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승리한다고 할 때, 이것은 결코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 사회의 절대적인 쪽으로 등장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프롤레타리아는 오로지 자신과 자신의 대립자를 지양해서만 승리할 수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프롤레타리아트와 그를 조건 지우고 있는 대립인 사유재산은 모두 사라진다”(MEW 2, 37).
마르크스는 모순적인 운동에서 지배적 관계들의 한낱 교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양 측면 모두의 지양을 주장하고 있다. 확실히 이런 구조는 『정신현상학』이나 『논리학』에서 볼 수 있는 헤겔의 관점과 비교할 때 훨씬 단순하다. 헤겔의 『논리학』에서 절대적 이념의 운동의 종점은 자기관계 속에서 ‘차이가 투명해 지는 것’에 마련되어 있으며, 『정신현상학』의 자기의식 장에서도 “그 대립들의 완전한 자유와 자립성이 존재하는” “나와 우리, 그리고 우리와 나”간의 통일에 그 종점이 마련되어 있다. 『신성가족』의 이 부분에서 마르크스는 현대적인 논의맥락에서 볼 때, 주어진 상황에서 상호주관적인 구조를 보여 주기 보다는 인간들간의 ‘건강한 상호주관적 관계’를 체계적으로 방해한다는 ‘왜곡된 자본주의적 관계’를 설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지양되어야 할 것은 그래서 마르크스의 맥락에서는 지상의 ‘모든’ 대립들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특정한’ 사회 속에 있는 ‘특정한’ 관계 속에 있는 ‘특정한’ 대립이었다. 지양되어야 한다는 ‘프롤레타리아트’나 ‘사유재산’은 모두 개념적으로 자본주의체제라는 오로지 특정한 시대와 특정한 공간에서만 유효성을 지닐 수 있는 특정한 규정성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신성가족』의 이렇게 재구성된 맥락에서는 대립쌍들의 ‘무차별적인 통일’이란 소외 회복의 초기낭만주의적 모델이 형태전환 되어 수용된 것이다. 즉 마르크스의 입장에서는 이 사유재산과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존재는 완전 지양대상이지 그 잔재가 남아서는 안 되는 것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런 한에서 소유계급과 프롤레타리아계급의 간의 대립적 운동은 마르크스를 우호적으로 해석할 때 -그가 뚜렷이 정식화하고 있지는 않지만-특정 관계 속에서의 특정한 대립의 지양을 향하여 작동하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독일이데올로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정한(bestimmte)이라는 형용사가 행사하는 초월적 시간과 공간개념에 대한 분명한 제약을 예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독일이데올로기』에서의 이론적 주체는 이미 언급하였던 것처럼 “일상에서의 현실적 개인들”이다. 마르크스는 슈티르너와 바우어 형제의 그에 대한 비판, 즉 그가 포이에르바하주의자로서 구제할 수 없는 형이상학을 전개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여 자신의 출발점을 과감히 수정한다. 그는 유가 지닌 초시간적 구조를 포기하고 슈티르너를 부분적으로 수용하여 “현실적 개인들”들을 이론적 주체로 채택하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역사적-발생적으로 ‘복수의 현실적인 인간’의 가장 단순한 자기보존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이것이 그것의 가장 복잡한 사회적 재생산과정까지 전개되는 과정을 이론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독일이데올로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확인되는 최초의 사실은 이리하여 이러한 개인들의 신체적 조직이며 이를 통하여 주어진 그 자신 밖에 존재하는 자연과 관계이다.”(MEW 3, 21) “인간들이 그들의 생활수단을 생산함으로써 그는 간접적으로 자신의 물질적 생활 자체를 생산한다”(같은 곳).
이러한 재생산행위의 요구로부터 마르크스는 상호적으로 작동하는 생산의 교류관계(Produktionsverkehr)를 도출해 내고, 이로부터 사회와 국가의 개념을 도출해낸다. 이런 도출순서는 그럼에도 당시의 독일 철학, 즉 그가 이해하는 헤겔과 헤겔주의에서는 다르게 나타나는 바, 마르크스는 이러한 맥락에서 헤겔철학을 전도시키려 하고 있다.
『독일이데올로기』에서의 이런 전도를 요약하자면, 마르크스의 이론적 기획은 헤겔의 『철학강요』의 세 번째 부분인 「정신철학」에 180도 대립한다는 점이다. 헤겔은 ‘전제없는사유’를 기반으로 하여 가장 추상적인 존재(Sein)으로부터 출발한다. 즉 헤겔은 『논리학』에서 시작하여 『자연철학』을 거쳐 『정신철학』에 도달해서 「객관정신」의 「인륜」 장에 가서야 가족,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를 논리적 순서로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를 헤겔은 절대자의 자기서술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는 달리 마르크스는 헤겔의 추상적 존재와는 대립되는 ‘규정된 존재’, 즉 ‘차이’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역사적-발생적으로 개념 파악하는 사유(das historisch-genetisch begreifende Denken)’에 의지하여 이 ‘규정적 존재’가 ‘현실적 개인들의 생명의 재생산이란 더 이상 환원불가능한 요소임을 경험적으로 확인한다. 그 다음 의식과 언어의 성립연관을 거쳐 현실적인 생명활동의 일반적인 운동형식의 서술에까지 이르고 있다. 마르크스에게서 이 의식과 언어는 객관세계의 연구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었으며, 현실적 생명활동은 그가 보기에 사회적 노동을 통해 역사적-사회적으로 매개된 자연과 인간이란 매개된 직접성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반면에 헤겔에게서 이것은 ‘반성된 직접성’이란 절대적 주체의 자기 관계 속에서 서술되고 있다.
가족과 시민사회는 헤겔에게서처럼 결코 개념으로부터-이런 방식을 마르크스는 이미 『헤겔법철학비판』에서 비판한 바 있다-도출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생산이란 필연적 욕구로부터 도출되어야 했다. ‘시민사회’를 도출함에 있어서도 마르크스는 마찬가지의 과정을 밟는다. 그는 현실적 개인들로부터 출발하여 이를 생산력과 생산관계간의 변증법으로부터 도출한다. 그 매개중심은 구체적인 매개자로서 산업이 담당하며 사회는 변증법적 운동이 작동하는 지점의 규정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그는 그때마다의 차이가 인정되어야 하는 사회들로 이해한다.
이론적 기획의 최종점에는 마르크스에게 있어서는 국가의 전복과 노동자들의 인간적인 존엄의 부활이 설정되어 있다. 반면 헤겔에게 있어서는 그 곳에 이념이 체현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군주와, 또 절대정신, 즉 예술, 종교, 그리고 철학이 설정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보아 마르크스의 기획과 헤겔의 기획의 차이는 구체적인 것의 지양 및 부활과, 이념의 지양 및 정립간의 차이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역사운동의 변증법적인 이론기획을 통해 절대자와 결부되어 있을 어떤 절대적 도식을 제공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각 사회의 서술은 마르크스에 따르면,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생활과정과 개인들의 행위들에 대한 매시기마다의 연구”로부터 얻어지는 제반 전제들에 근거하고 있다(MEW 3, 27). 이렇게 본다면 분명 마르크스에게서 보여지고 있는 노동자의 존엄의 회복이란 형태로 다시 획득되는 동일성이란 바로 “특정한 동일성”의 회복임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 노동양식’이 지양된 후의 모습에 대해서 그는 그저 ‘자유로운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연합’으로 적지않이 애매하게 서술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이것의 논리적 모델을 위에서 언급한 바, 『신성가족』에서의 마르크스로부터 힌트를 얻고 또 헤겔의 『논리학』과 『정신현상학』을 빌어 이를 세련화 시키는 것이 허용된다면 바로 ‘너와 나의 차이가 뚜렷해져 있는 가운데 형성되어 있는 나와 우리의 하나됨’이라고 그 자리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마르크스의 헤겔철학의 전도를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하나는 유한성 내부에서 구조화된 총체성이라는 ‘구조논리’이며, 다른 하나는 기존체제에서 다른 체제로의 이행을 예고하여 주는 역사의 발전논리이다. 전자는 ‘차이의 변증법’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으며, 후자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상실된 노동자의 인격의 존엄의 회복으로 나타나는 ‘특정한 동일성의 회복’임을 보았다. 이 양자는 결국 현실에 대한 실천적 이해란 형태로 동일평면에서 중첩되어 구조화된다.
한편, 이 발전논리는 1848년 2월 혁명의 실패이후 후기로 갈수록 후퇴하며 『자본』에 이르러서 그것은 과거에서 현재에까지 이르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서술(kritische Darstellung)의 형태로 뚜렷하게 축소된다. 그리하여 『자본』의 2판 후기에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신비화된 형태로서의 변증법은 독일에서 유행되었는데, 이는 그것이 현존하는 것을 신성하게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합리적 형태로서의 변증법은 부르주아계급 및 그 교의의 대변자들에게는 분개할 만한 것이며 공포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의 긍정적 이해 속에 그것의 부정, 곧 필연적 몰락에 대한 이해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며, 모든 생성된 형태를 운동의 흐름 속, 곧 그것의 경과적인 측면에서 파악하고. 또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위압받지 않으며, 그 본질상 비판적이고 혁명적이기 때문이다.”
이 유명한 구절의 강세는, 자본주의가 지양된 미래의 세계로서의 사회주의/공산주의의 도래를 변증법의 발전논리에 힘입어 장미 빛으로 그리는 것에 주어져 있지 않다. 그보다 논의의 중점은 바로 현존하는 체제의 부정에, 다시 말해 그것의 몰락의 계기를 보여주는 것에 있다. 이 주어져 있는 체제의 필연적 몰락, 근거로 돌아감(Zu Grunde gehen)은 말하자면 변증법적 운동의 새로운 출발점만을 지시할 뿐, 그것의 종착점을 지시하지는 않고 있다. 물론
‘목전에 박두한 2월 혁명’과 청년기적인 변혁에 대한 열광에서 기인하는, 상대적으로 강력한 1848년까지의 다가올 미래사회에 대한 예측과 예감은, 후기에 진행된 그의 정치경제학비판 작업들 속에서도 간과할 수 없이 많이 등장한다.
혁명가로서의 마르크스의 면모를 확인하게 하는 이런 “역사철학적’인 언명들은 그럼에도 많은 비판가들이 이야기하듯, 그의 ‘과학적 분석작업’에 있어 본질 구성적인 의미를 지니지는 않으며 정치경제학비판에 있어 어떤 전제를 형성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부분들은 아주 개별적인 부분들이거나 대중을 상대로 한 연설투의 문장에 많이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현실의 현상들은 마르크스의 맥락에서는 결코 거대주체의 자기관계의 서술로 해석될 수 없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헤겔의 사변적 시간을 『독일이데올로기』 이후 현실적 개인들의 다른 시간관으로 대체함으로서 얻어낸 이론적 성과이다. ‘변증법이 지켜야 할 한계’인 “현실적 차이의 고수”야말로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의 출발점이다. 변증법 측면에서 국한시켜 놓고 볼 때, 마르크스의 과학적 방법 속에서 그 대상은 언제나 ‘특정한, 역사적으로 규정된 총체성’으로, 대상적 관계들의 앙상블이다. 다시 말해 절대자가 제거된 상태에서, 대립쌍의 현실적 차이란 토대 위에 형성된 타자와의 반성적 관계이다 라는 매개구조야말로 바로 마르크스에게서의 변증법적 관계, 즉 ‘헤겔을 전도시킨, 신비적 외피를 벗겨내고 그 합리적 핵심을 찾아낸 변증법’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