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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당의 좌파통합 관련 예전 글

멍청이 2008.08.26 15:47 조회 수 : 1161

글에 임하면서 먼저, 사회당의 많은 평당원들, 그 중에서도 사회당이 ‘운동권이 주도하는 정당’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자신은 운동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당원 동지들께, 죄송스러운 인사를 드린다. 변변한 당원용 사회당 총론이나 개설서도 낸 적이 없으면서, 아직도 사회당원이 아닌 운동권을 주된 독자 대상으로 하여, 이와 같이 생경한 운동권 용어와 어투로 점철된 글을 내게 된 것에 대하여.
그러나, 처음에 사회당을 만들고 지금 운영하는 사회당 ‘운동권 간부들’의 자세한 생각을 궁금해 하셨다면, 그 중 많은 것들이 해소될 수 있는 기쁨도 동시에 가지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당의 진짜 주인인 ‘일반 당원 동지들’께서도 사회당을 좀 더 잘 알기 위해서 일독하실 것을 권한다. 그 속에서 당연히 사회당을 주도하는 간부들에 대한 믿음도 배가되실 것이라고 믿는다. 사회당을 주도하는 간부들이 그렇게 “대책 없는 자부심으로만 똘똘 뭉친” 사람들은 아니라는 사실, 사회당이야말로 좌파통일운동의 현실태라는 사실을 더 잘 알게 되실 것이라고 믿는다. 통일좌파를 실현하는 데에서 사회당이 감수하고 떠맡아야 할 몫이 많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이 글의 메시지는 하나다.

사회당은 좌파의 통일을 강력히 원한다!





어떤 제안이 나오면 제안의 주체와 의도에 먼저 주목하는 것이 상식이다. 당연히 우리의 제안에 대해서도 세상은 그렇게 반응할 것이다. 그렇다면, 제안을 하기 전에 우리가 스스로 사회당에 대하여 일정한 소개와 정리를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평면적이고 나열적인 소개보다는 사회당이라는 주제를 둘러싼 몇 가지 논쟁거리를 중심으로 그것들에 대하여, 오늘, 우리의 대답을 제출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다. 넷으로 추려 정리하겠다.
우선, 왜 모든 좌파를 포괄하는 통합 좌파정당의 모습으로 사회당이 출발하지 못했는지, 사회당은 좌파 통일 문제에 대하여 어떤 자세로 생각해 왔는지를 밝히겠다. 다음에 사회당의 두 기치에 대한 설명을 보강하고, “합법정당 중시”의 태도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지난 97년 여름, 좌파는 오세철 교수의 소집령에 따라 정치연대(노동자민중의정치세력화진전을위한연대)로 모였다. 당시 정치연대는 오세철 교수를 필두로 한 일군의 좌파 교수들과 한청련(한국노동청년연대), 전국노련(전국노동단체연합), 노정연(노동정치연대), 노진추(노동자중심의진보정당추진위원회)의 4대 단체와 일부 좌파 학생 그룹들이 참가하여 만들어졌다. 우리는 97년에 발표한 ‘청년정당으로(「민중후보운동을 넘어 청년정당으로-국민후보운동 전면 비판」,『비판』제2호)’에서 당시 정치연대에 우리가 독보적인 사명감으로 임한 예를 밝힌 바 있다. 아무튼 정치연대는 좌파의 대선 방침을 결정하자는 기구였다. 우리는 거기에서 정치연대로 모인 좌파의 합법정당 창설과 좌파의 독립적 대선 참여를 주장했다. 전국노련과 노진추의 좌장격인 동지들은 국승(국민승리21)에 참가하자고 주장했다. 중간에서 많은 동지들이 “한청련의 ‘이상’적 주장이 옳다”는 사실과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저 쪽에 있다”는 ‘현실’ 사이에서 고뇌했다. 결론을 낸 사람은 대표였던 오세철 교수였다. 오 교수는 ‘국민후보’ 권영길 씨와 ‘합의’했다. 즉 그는 그 때 “민주노총이 저 쪽에 있다”는 ‘현실’에 굴복했다.
당시 우리도 같은 ‘현실’을 의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민주노총이 있는 저 쪽’으로 가지 않고 남은 이유는 예의 ‘청년정당으로’에서 밝혔다. 결국 한청련은 정치연대를 탈퇴했다. 생각해 보라. 당시 한‘나라’당과 ‘국민’회의와 ‘국민’신당이 후보를 내서 겨루었다. 그 판에서 어찌 좌파가 ‘국민’승리21의 조직원으로 ‘국민’후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죽으면 죽었지 그런 건 못한다.
보라. 결국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전형적인 국민주의 구호까지 나왔다. 2002년 “필승 코리아”의 붉은 바다를 위한 전조이기나 했던 것처럼 그 운동은 이미 그 때 자기의 정체를 남김없이 폭로했다.
당시에 한청련 계열을 제외한 나머지 정치연대는 모두 국승에 들어갔다. 한청련은 결국 ‘후보 없는 민중후보운동’을 했다. 즉 한청련만이 자기의 견해를 세상에 천명하고 97년 국민후보 대선에 불참했다. 한편, 그동안 ‘저쪽’에서의 일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정치연대는 국승 안에서 구심력을 가진 의미 있는 블록이 되는 데 실패했다. 오세철 대표와 권영길 대표간의 합의에 대한 해석부터 달랐다. 결국 그 해석의 차이에 따라 각각의 거취도 결정되었다. 오세철 교수 본인이 제일 먼저 합의의 파기에 분노하여 국승을 탈퇴했다. “일어나라 코리아”가 문제가 될 때쯤 전국노련이 뒤를 따랐으며 노정연의 일부 동지들도 국승을 그만 두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노진추와 인천 노정연은 국승에 남았다. 96년 4월 사추위(사회당추진위원회) 주류의 민정련(민중정치연합)이 IL(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주류의 진정추(진보정당추진위원회)와의 통합 문제를 표결할 때, 안기부에 탄원서를 쓴 IL과는 같은 지붕 밑에서 못 산다고 2안, 3안을 주장하여 1표 차이로 부결시켰던 바로 그 노진추와 노정연이, 바로 그 IL이 주동하는 국민후보운동에서 “일어나라 코리아”라고 외칠 수 있다니…. 우리는 그 때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왔다.
결론은 이처럼 자명하다. 97년의 정치연대는 이렇게 국민후보운동 불참파, 참가후 탈퇴파, 잔류파, 이렇게 셋으로 두부모 잘리듯이 갈렸다. 그 때의 3자는 결국 오늘날의 사회당, 노동자의 힘, 민주노동당내 좌파, 3자의 중심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비(非)한청련 정치연대가 국승에 참가했던 것이 왜 좌파로서는 수치스런 오류였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오세철 교수와 전국노련, 노정연의 일부가 얼마 후 국승에서 나와 오늘날까지 좌파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활동해 온 것은 사실이다.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에, 또 학생운동에 좌파로서의 자극을 주는 데 그들의 혁혁한 공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함께 들어갔던 노진추와 인천 노정연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국승에 남아 민주노동당의 일원이 되었다. 물론 그들도 그 안에서 좌파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했으며, 그에 따른 노력을 했다. 노진추는 평등연대(평등세상을위한노동자실천연대)의 골간을 구성했으며, 축소된 노정연의 인천 팀은 인천 민주노동당을 좌익적으로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평등연대조차 인천과 울산이 다른 그룹으로 분화했으며, 인천에서는 옛 노진추와 옛 노정연이 대립하고 있다. 옛 노진추의 대표였던 성두현 씨를 한 지구당 위원장으로 당선시킨 선거에서, 인천 평등연대는 전국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측과 연대했고 옛 노정연 측은 IL과 동맹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맞든 그르든 아무튼, 좌파에게는 전국연합과 IL은 반(反)주사 반(反)개량 전선의 저편이라는 상식이 있어 왔다. 97년 정치연대 당시 그들 노진추와 노정연도 그 상식 속에서 좌파로서 하나였다. 그런데, 불과 몇 년 후 서로 싸우느라 어제의 정적과 각각 손잡는 그 꼴이 뭔가? 과연 97년 당시 좌파의 좌장이셨던 오세철 교수와 좌파 연대의 리딩 그룹이었던 전국노련이 이 참혹한 좌파 분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노동자의 힘이라는 ‘모든 합법정당 노선 자체를 반대하는’ 가장 좌익적인 조직을 결성하여, 국승에 따라 들어가지 않았던 좌파와 또 따라 나오지 않았던 좌파의 “분열적 작태”를 각각 견제하는 “양날의 검으로서의 조직 노선”을 만들면 다 된 건가?
그 때 오세철 교수와 전국노련이 국승에 굴복하지 않고 좌파의 자존심을 지켰다면, 오세철 교수, 전국노련, 한청련, 노정연, 노진추가 모였던 정치연대가 통일좌파의 정치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랬으면 그 때까지 정치연대에 참가하지 않았던 좌파도 더 모였다. 다른 세력들 말마따나 그 때의 한청련 혼자서 이만한 합법정당을 만들었는데, 그 정치연대가 다 함께 좌파의 자존심을 지키며 모여 있었다면 이미 좌파는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 변경을 힘으로 강제할 수 있는 좌파정당을 구성하고 있었을 것이다. 좌파 노동자운동의 통일전선 실현에도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오세철 교수와 전국노련의 리더들이었던 동지들은 좌파 분열에 특별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 물론 우리도 그 동지들이 국승에 들어갔던 잘못에 대하여 자기비판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이 비공개로 한 자기비판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가 지금 공개하는 것이 실례일지 모르나, 우리는 그런 것은 당연히 세상에 내놓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오히려 오세철 교수와 옛 전국노련 동지들에 대한 우리의 변함 없는 신뢰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우리는 한국 좌파의 지도적 대열에 있어야 할 오세철 교수와 그 동지들이 그 때의 분열에 대하여 반성적으로 책임지는 자세를 이번에 꼭 보여줌으로써 모든 좌파 후배 활동가들로부터 마땅한 존경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앞서 말한 97년에 300명의 한청련은 다음 해에 청년정당이 되겠다고 선언했으며, 말한 대로 98년이 가기 전에 청년진보당을 창당했다. 그 청년진보당이 자라 2001년에 사회당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사회당은 우선 존재 자체가 ‘물리적 결합에서 화학적 결합으로’ 전진한 좌파통일운동의 현실태이다. 합법정당을 경시하는 좌파 동지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합법정당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좌파도 제법 많다. 그러니까 사회당이 끊임없이 성장해 온 것이다. 사회당운동은 꾸준히 성장해 오면서 늘 새로운 동지들의 참가로 갱신되었다. 소위 ‘물리적 결합’이다. 그러는 동안 사회당은 밖에서 언제나 하나라고 보아 줄 만큼 통일 단결된 대오를 유지해 왔다. 즉 전에 다른 그룹이었다가도 사회당운동에 들어오면 모두 하나가 되었다. ‘화학적 결합’이다. 사회당이야말로 여러 좌파가 모여 하나가 되어 온 좌파통일운동, 그것 자체이며 이 좌파통일 지향은 언제나 활성 상태이다. 그렇게 원래는 남이었던 사람들이 모여, 같은 당 안에서 적처럼 대립하는 당내 분파 투쟁 따위 없이, 하루가 지나면 당원이 늘어나는 정당으로, 어제보다 오늘이 큰 것처럼 오늘보다는 내일이 클 것이라는 믿음으로 뭉쳐 있는 것이 사회당이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좌파 세상은 이미 사회당으로의 통일에 참가하여 그 안에서 녹아 버린 세력들과 이 통일에 참가하려고 지금 논의하고 있는 세력들과 아직도 그것을 유보하고 있는 세력들로 나뉜다.
98년에 우리가 사회당이 아니라 청년진보당이라는 간판을 걸었던 것은 사회당을 통일좌파의 당명으로 생각하여 아껴 두었기 때문이다. 즉 청년진보당의 진짜 뜻은 오직 미(未)사회당일 뿐이었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하여 97년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밝혀 왔다. 이제는 소문이 날 만큼 났으니 말할 때도 되었다. 2001년 초, 좌파가 적극적으로 연대했던 대우자동차 파업 과정에서 모든 좌파의 합법정당으로서 사회당을 만들자는 우리의 제안이 있었다.
우리는 오세철 교수께 ‘좌파 통합, 당명 사회당’이라는 제안을, 또 노동자의 힘 내 몇몇 동지들과 노동자의 힘 중집 등에게 ‘청년진보당과 노동자의 힘의 통합’이라는 제안을 전달하였다. 그것이 적절한 방법이었다고 계속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그 때 청년진보당과 노동자의 힘이 오세철 교수를 정점으로 통합할 수 있다면, 전체 좌파 통합의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 때 우리는 청년진보당 중앙당의 간부들이 젊으니, 모두 평간사로 내려 앉을 테니, 오세철 교수가 대표를, 노동자의 힘 중앙 간부들이 사무총장, 정책위원회 의장 등 통합 정당의 모든 주요 간부직을 맡아 달라고 제안하였다. 즉, 우리는 우리가 크고 노동자의 힘이 작으니 흡수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대등한 통합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젊으니 이끌어 달라”, “중앙당을 비울 테니 맡아 달라”고 가장 화끈한 형태의 통합 제안을 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받은 대답은 “비(非)제도적 투쟁정당”이었다. 그것은 거절이었다. 결국 우리 나름의 통합 준비, 즉 “통합 사회당”으로의 환골탈태를 위한 내부 사전 선동은 2001년 8월 사회당으로의 당명 개정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났다. 즉 사회당은 원래 우리 혼자 하려던 정당이 아니다. 우리는 그 때도 지금도 사회당을 우리만의 정당이라고 이해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힘을 제외한 다른 좌파들을 소외시켰던 것, 다른 좌파들에게 통일좌파의 사회당을 만들자는 제안을 극히 부실하게 했던 것, 그것에 성심과 성의를 다하지 않았던 점에 대하여, 이 자리를 빌어 깊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노동자의 힘의 사회당에 대한 ‘의도적 무시’와 달리 사회당은 언제나 노동자의 힘과 다른 좌파를 의식하며 활동했다.
앞서 말한 대우자동차 파업을 지원하는 공투본(노동자생존권쟁취 구조조정분쇄 해외매각저지를위한 대우자동차공동투쟁본부)에서 현(現) 노동자의 힘 대표인 이종회 동지를 집행위원장으로 하는 체제가 구성되었다. 이종회 동지가 집행위원장이 된 첫 번째 이유는 물론 충분한 자격을 스스로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청년진보당이 이종회 집행위원장 체제를 밀어붙여 경쟁자였던 어떤 비(非)좌파 인사를 밀어낸 것도 사실이다. 당시 공투본에 노동자의 힘같은 좌파 리딩 그룹이 네 명을 파견할 때 청년진보당과 한국노련은 열 명 이상의 인원을 파견했고 그들이 일제히 이종회 집행위원장에 손을 들었다. 이종회 집행위원장에 청년진보당, 한국노련(한국노동자운동연대), 노동자의 힘의 활동가들로 구성된 공투본은 원래 한 조직이었던 사람들처럼 잘 맞아 돌아갔다. 우리는 그 때 “이런 좌파정당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종회 동지의 변호사, 기자 동원 능력 등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분이 합법정당 사무총장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2002년 지방 선거에서 인천, 울산 후보 선정 또한 그렇게 하면 해당 지역의 좌파가 우리와 함께 하리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울산의 경우는 안승천 동지가 후보로 나와 하청을 중시하는 선거 투쟁을 하면 울산 좌파가 크게 단결하는 멋진 판이 될 것이라는 다른 좌파 어떤 동지의 제안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 좌파는 결국 어쨌냐고? 우리는 특별히 실망하지 않는다. 그런 일 한 두 번 겪은 것이 아니다. 그도 그들도 마음으로는 우리를 도왔다는 것을 안다.
사회당은 2002년 지방 선거에서 다른 좌파의 지원을 많이 받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다른 좌파의 호감을 얻기 위하여 노력했다. 우리는 결국 서울시장 선거에서 “내용도 없는 사회주의자”로서 커밍아웃한 것이 전부인 채로 참패했다. 준비 부족을 스스로 잘 아는 우리가 그렇게 과격하게 나아갔던 것은 오직 좌파 일반에게, 부족하고 미숙하고 졸렬하지만,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붉은 마음만은 믿어 달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회당도 합법정당이며 선거주의자들일 뿐”이라고 냉소하는 사람들 앞에서 사회당은 진정 “표를 구걸하기 위하여 훼절하지는 않겠다”고 맹세했던 것이다. 우리가 이처럼 다른 좌파를 무시하지 않고 의식한다는 것은, 사회당을 우리만의 합법정당이 아니라, ‘좌파 전체의 합법정당’이라고 생각한다는 가장 유력한 증거이다. 나아가 우리가 “사회당의 지방 선거 부진에는 다른 좌파들의 책임도 많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우리가 사회당을 우리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김영규 교수께서 대표권한대행을 수락하시면서, “좌파 통합의 견인차가 되어 달라는 요구”라고 이해하신 것 또한 사회당 안에서 좌파 통합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조각되어 있는가를 말해 주는 증거이다.
마지막으로 싱겁고 유쾌한 자랑 하나 하겠다. 사회당의 주요 간부 상당수가 중앙당을 떠나 지구당을 개척하러 지역으로 갔다. 즉 사회당의 중앙당 간부 대오는 대폭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8월 중순에 사회당 중앙당은 한국정치의 중심 무대인 여의도로 공간을 넓혀 이사했다. 보증금이 1억 원에 육박하고 월세, 관리비만 1,000만 원이 넘는 번듯한 공간이다. 누구나 그 의도를 이해할 것이다. 이것은 통일좌파로 향하는 대선을 다른 좌파 동지들과 함께 치르기 위하여 준비한 중앙본부 사무실이다.
한 마디로 말하여 사회당 중앙당은 이미 관록 있는 좌파 운동가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부디, 그동안 사회당의 “합법정당적 작풍”이 성에 안 찼던 훌륭한 좌파 동지들이 사회당 중앙당에 참가하여, 사회당을 더욱 전투적인 사회주의 정당, 내용이 풍부한 정책정당으로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
물론 아직도 비어 있는 지역구들도 많이 있으며,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지구당을 주동적으로 창당하며 참가해 주기를 기대한다.
한국의 모든 좌파 동지들! 이 당은 동지들의 당이다. 사회당은 통일좌파 모두의 합법정당이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다른 좌파 동지들이 그래도 안 된다면, 통일좌파의 합법정당을 위하여 우리가 더 버릴 것이 있다면, 버리겠다.





2002년 8월에, 자본주의 반대와 조선노동당 반대라는 사회당의 두 기치를 소재로 삼아, 김일성주의를 신념 체계로 삼는다는 ‘최성원동지대오’라는 곳에서 장문의 비판 논문을 발표했다. 김일성주의에 따른 인터넷 정치 기구로 보이는 ‘통일여명 편집국’이 그 논문을 높이 칭찬하며 연구를 권하고 있다. 이 글의 작성을 준비하는 중에 그 글이 나와서 웬만하면 그 글에 대한 반(反)비판을 담을까도 했는데, 뭐, 별로 할 말이 없다. 도대체가 사고의 체계가 너무 달라, 한 쪽은 다른 쪽을 수령교의 광신도들로 또 한 쪽은 다른 쪽을 미제의 간첩으로 보니 뭘 말하겠는가?
우리는 여기서 같은 사고 체계를 가진 동지들, 즉 좌파에게 말하고자 한다. 사회당의 이론가들이 그 기치를 설명한 적은 있으나, 사회당 안의 조직가들이 그 기치를 이해하는 구조에 대해서는 별로 설명된 적이 없으니, 이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반대와 조선노동당 반대라는, 추상 수준이 다른, 소위 “수위가 다른” 기치가 왜 나란히 걸렸는가? 그것은 일종의 중의법이다.
우선, 첫 번째 이유, 표면적 이유는 그렇게 수위가 다른 양 상대방이 한국의 정통 이념 운동에 대한 태도에서는 똑같다는 것, 그 점에 대한 인식이다. 하나만 물어보자. 미국이 주도하는 UN과 소련, 중국이 밀었던 인민공화국이 전쟁을 끝낼 때, 휴전선은 정하고 포로는 교환하기로 정했는데, 지리산 일대에 남아 있던 수천 명 빨치산에 대해서는 왜 일언반구도 없었나? 미제는 그렇다 치고, 조선노동당의 주인인 김일성 계는 왜 그랬나? 그들의 영웅적 평양 개선과 그렇게 강화될 남로당 세력이 그다지도 거북했나? 아니 정말 그렇게 미웠나? 그런 것도 동지인가? 빨치산은 결국 눈 속의 토끼처럼 몰려 다 토벌되었다. 그리고 남로당 계는 “미제의 간첩”으로 타도되었다. 미제가 그들이 말살되기를 원했듯이, 그들의 북쪽 동지들도 그랬다. 85∼86년에 발행되어 한국 주사파의 시원이 된 논문의 제목은 하필 왜 「박헌영은 왜 미제의 간첩이 되었는가」인가? 한국의 좌파가 미미할 때는 자본주의 측도 조선노동당 측도 좌파를 무시한다. 그러나 좌파가 힘을 갖게 되면, 즉 고개를 쳐들면, 둘 다 그것의 절멸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거꾸로 그 절멸의 대상이 몸을 일으킬 때 그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양자를 동시 겨냥하는 것은 한 인식 주체로서 극히 기본적인 소양에 속하는 문제이다. 자기를 절멸하려는 주체에게 적대의식을 가지는 것은 한 현존재가 갖는 가장 기본적인 자존심에 속하는 사항이다. 그 기치가 뜻하는 것은, 그 양자가 절멸하고자 했던 정통이, 그 양자가 숨통을 확실히 끊어 심장에 철심을 박아 ‘무저갱’에 던져 버렸다고 믿었던 ‘유령’이,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모습의 옷을 입고 부활했다는 ‘신앙고백’이다.
두 번째 이유는 2000년대 한국의 운동권을 바라보는 우리의 현실 정치적 태도에 있다. 그 양대 기치는 통합좌파를 향한 일종의 ‘서원(誓願)’이다. 우리는 당시 한국의 좌파가 주사파에 대해서는 명확히 분리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한국 운동권의 3대 세력 범위 중 또 하나, ‘개량주의 세력’에 대해서는 그러한 인식과 의지를 분명하고 철저하게 갖고 있지 않다고 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런 불분명함과 불철저함이 좌파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이미 앞의 <1.1. 1997년의 좌파 분열>에서 그런 인식의 불철저함이 초래한 사태, 정치연대의 분열과 좌파의 세 갈래 분리 상태를 말했다. 그것은 정치운동의 영역에서만 존재하는 사태가 아니다. 노동자운동의 영역에서도 현장파라는 이름 아래 분열되어 존재하는 좌파는 국민파에 대항하여 중앙 권력을 지키려는 중앙파가 번차례(番次例)로 동원하는 하수인에 불과하다. 즉 그 양대 기치의 이면적 함의는, 주사-국민파에게뿐 아니라, 민주노동당 당권파와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의 중앙파에게도 의탁하지 말고, 분열 상태를 통일하여 자존심을 가진, 의연하고 떳떳한 좌파로 서자는 ‘피맺힌 호소’이다.
이것으로 할 말은 다 했는데, 사족을 하나 달겠다. 하나의 반성이다. 다른 좌파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사회당 대오는 특히 종종 미제보다 주사파를 더 싫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일단 ‘미제’라는 역사적인 용어, 강고한 민족해방투쟁의 과정에서 확립된 구체적이고 정치적인 용어를 기피하는 잘못된 습성을 가지고 있다. 최성원동지대오의 말이 맞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정점은 미제이며, 자본주의를 반대하면서 미제에 대한 적대적 태도가 불철저하다면 틀린 것이다. 청년진보당 시절 ‘주한미군철수’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고 싸웠던 사회당이, 작년 9.11 사건을 빌미로 전 지구적 수준에서 세계인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설정할 미국의 의도를 제일 먼저 경계하여 미대사관을 항의 방문했던 사회당이, 미군의 장갑차에 여중생 둘이 깔려 죽은 참혹한 사건에 대하여 오불관언(吾不關焉)했던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사회당의 탄생과 구성에 대한 의문과 구원(舊怨)의 꺼풀이 벗겨진 상태에서 남는 비판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나온다. 그것은 첫째, 노동자운동을 상대적으로 경시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합법정당을 전략적 단위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둘 다 뭔가 “좌파답지 않게 합법정당을 중시한다”는 말이다.
후자의 문제는 좌파 통합 문제와 직접 닿아 있는 것이므로 따로 떼어 <2.2. 반(半)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에 대한 반대>에서 다루겠다. 여기서는 전자, 사회당이 노동자운동을 경시하는 것 아니냐는 ‘동지적 불만’에 대하여 말하겠다.
사회당을 구성한 사람들도 좌파이다. 그것도 스스로 더 이상 붉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붉은 좌파이다. 당연히 제1 대중운동은 노동자운동이라는 좌파의 상식을 공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회당은 그런 혐의를 받기도 하는가?
그것은 우선, 말할 필요도 없이, 민주노동당 내 좌파 동지들을 제외한다면 좌파 중에서 우리가, 현대 한국사회에서 합법정당의 필요성을 가장 많이 느낀다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다른 좌파 동지들이 합법정당을 함께 하지 않는 조건에서 합법정당이 합법정당으로 기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절대적 역량이라는 것이 있고, 부족한 세력으로서는 불가피하게 상대적으로 다수의 역량이 합법정당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합법정당이라는 형식의 유효성 덕분에 사회당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우리에게 나중에 가담하는 동지들도 합법정당 영역에서 많을 수밖에 없었고 합법정당 영역에서의 일들도 많아졌다.
다음으로, 우리는 좌파 노동자운동이 학생운동 출신 활동가의 부족으로 고통받는 것보다 그 학출 활동가들의 학연에 따라 나뉘어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우리는 좌파 노동자들이 그들의 배후에 있는 학출 활동가들의 인연이라는 사슬, 노동자들 본인들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인연의 사슬을 무시하고, 기업별, 산업별, 지역별 한계를 넘어 직접 만나, 스스로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데에 문제의 해결 방법이 있다고 본다. 즉 “학출 활동가를 노동자운동에 대거 투입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운동에 쓸 만한 학출이 얼마나 있는가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고려한다면, 우리도 노동자운동에 다른 좌파 못지 않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정열을 가지고 있다. 지금 지구당을 운영하거나 개척하고 있는 동지들 중에도 많은 동지들이 노동자운동에 전념하기를, 또는 노동자운동으로 돌아가기를, 또는 노동자운동에 투신하기를 원한다. 우리 자신이 이미 상대적으로 과도한 역량이 합법정당에 몰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편, 우리가 볼 때 다른 좌파 동지들의 그룹은 합법정당 활동을 하는 것이 훨씬 좋은 동지들조차 불필요하게 ‘노동, 노동자’가 이름에 들어가 있는 조직형식에 묶여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 그룹 회원 중 학생운동 출신 상당수가 실제로는 노동자운동을 수행하지 않는 생활인들 아닌가? 그들이 자기의 일터와 삶터에서 매일 보는 사람을 붙잡고 상대가 들어 본 적도 없는 무슨 ‘○○노동○○연대’에 들자고 권하는 것보다는 ‘사회당’에 들자고 권하는 것이 쉽고도 정당하다는 것은 인정해야 하는 일 아닌가?
오히려 우리는 다른 좌파 동지들도 통일좌파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기를 원한다. 다른 좌파 동지들이 합법정당을 필요 이상으로 경시하고 노동자운동을 물신화하는 관점을 시정하는 것과 사회당 동지들이 합법정당에 과하게 몰려 있는 상태를 시정하는 것은 깊은 상관관계에 있다. 좌파 동지들! 우리, 통일좌파를 형성함으로써 각각의 그룹별로 지나치게 한 영역에 편중되어 있는 상태를 시정하자. 현대 한국에서 농민은 기본 대중임에도 불구하고 좌파가 특히 조직적으로는 농민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소그룹으로서는 우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노동자운동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일좌파가 형성된다면, 그리하여 특정 영역, 특정 지역에 ‘중복 배치’된 상태가 시정되고 전반적으로 고르게 재편된다면, 좌파의 대중운동은 더욱 능률적으로 될 것이다. 농민운동은 물론 교사운동 등에도 의욕적으로 진출하는 동지들이 생길 것이다. 통일좌파는 그런 것이다.
아무튼, 다른 좌파 그룹들이 자기 조직대중 전체에게 오직 노동자운동만을 제시하고 합법정당 쪽으로는 전혀 길을 제시하지 않을 때에도 청년진보당에게는 한국노련이라는 형제조직이 있었고, 또 지금은 사회당의 자매조직이라고 말하는 전노회(전국노동자회(준))가 만들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판이 제기되는 현실에 대하여 우리도 반성하겠다. 우리도 노동자운동에 대하여 배전(倍前)의 성의를 기울임으로써 다른 좌파 동지들의 애정 어린 비판을 수용하겠다.





중국공산당의 당원이었다가 소련군으로 입국하였으면서도 국내의 정통 조직을 미제의 간첩으로 몰았던 자기 종교의 창도자처럼, 1987년 “김대중 비판적 지지”로 운동권 분열의 역사를 열어 놓고 그 후 15년 동안 좌파를 분열주의자라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91년에는 사회주의자는 경멸해도 좋은 ‘등신’들이니까 안심하고 살려 달라고 노태우의 안기부에게 탄원했으며, 96년에는 개혁신당이라는 보수정당 노선에까지 쫓아갔다가 급기야 꼬마 민주당에서 공천 신청까지 하고, ‘민중’운동권에 ‘국민’후보 노선까지 도입했던 사람들이 있다. 마치 전노협의 부활이나 되는 것처럼 선동하여 몰아붙인 단일금속노조를 저런 칠삭둥이로 낳아 놓고도, 2002년 4월 2일, 총파업이 시작되자마자 지도부가 항복하는 처참하고 치욕스런 꼴에 이르도록 민주노총을 타락시켜 놓고도, 악착같이 금속연맹과 민주노총의 ‘중앙’ 권력만은 움켜쥐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힘을 합쳐 시동을 걸어 만든 정당이 진보정당이라고 주장하면서, 유신 시대에 <서울신문>의 기자가 되고 관공서가 일괄 구매하여 유지시켜 주던 그 신문에서 전두환 정권 임기 내내 하필 모든 외신 기자들이 선망하는 빠리 특파원을 했던 사람을 벌써 두 번씩이나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고 있다.
저들은 그렇게 다르면서도 또 그렇게 같다. 저들은 그렇게 서로 으르렁거리면서도 민주노동당에서 민주노총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서로 봐 주며 서로 협력하여 주류 연합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좌파는 어떤가? 좌파는 입만 열면 “사회주의”요, “비타협적 투쟁”이고, 아무리 곤궁해도 ‘원칙’에서 한 발짝만 비켜나면 벼락 맞아 죽을 것처럼 생각한다는 점에서 똑같다. 그러나 좌파는 분열되어 있고 심지어 일부는 그 주류 연합의 품 안에 있다.

“아! 좌파! 너는 자존심도 없는가?”

좌파는 정말 그렇게 같으면서도 그렇게 달라야만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유가 없는데, 정말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우리끼리 갈려 지리멸렬해야만 하는가? 좌파여, 자존심을 회복하자. 그러려면 다른 것 없다. 좌파는 우선 모여서 하나가 되어야만, 저 주사-국민파, 개량-중앙파를 밀어내고 공식적 대중권력이 됨으로써 대중을 분기시켜 이 더러운 체제와 맞서는 싸움을 시작할 수 있다.





2002년 현재 백기완 선생 연세가 일흔이다. 언제 가실지 모르는 연세이다. 한국의 모든 좌파에게, 92년 민중후보 투쟁 때부터 원했던 그림을 10년만에 이 글로 제안한다.

“백 선생님 돌아가시기 전에 백 선생님을 영수로 하는 통일좌파를 실현하자”

이것을 위하여, 노동자운동, 학생운동, 합법정당운동의 3개 메이저 운동과 여성운동, 보건의료운동, 환경운동, 이론운동 등등의 영역별로 좌파는 모두 ‘헤쳐 모여’ 하나의 조직을 구성하자. 이름하여,

1영역 1조직.

그렇게 각 영역의 통일좌파 대오를 표현하는 조직들을 이번 대선 투쟁 과정에서, 또 대선과 직접 상관없이도 올해 하반기 동안 형성해 가자. 그리고 내년에는 선두에서 위용있게 전진하는 좌파 노동자 통일전선을 둘러싼 투쟁 대오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통일좌파 연대체’를 만들자. 각 영역 조직을 대표하는 ‘대표자회의’로 시작될 모임을 상설공동투쟁체로, 또 그것을 넘어 조직대중의 규모와 가중치를 감안하여 각 영역 조직이 파견한 대의원들로 구성되는 ‘통일좌파회의’로, 빠르게 발전시키자. 백기완 선생님같은 통일좌파의 상징 인격을 ‘통일좌파회의’의 주석에 앉혀 통일좌파의 확고한 권력 의지를 ‘민중’에게 표명하자.
사실은 짧은 이 절로 이 글의 결론은 제시되었다. 다만, 주장의 구체성을 더하기 위하여, 노동자운동, 학생운동, 합법정당운동에 관해서만 약간 상론하도록 하겠는데, 좌파 통합의 범주에서 다룰 수 있는 하나의 문제 제기를 먼저 짚고 시작하겠다.





2002년 8월에 7개 좌파 단체 열성 회원들의 수련회가 있었다. 노동자의 힘이 주동하여, 전노회, 민주노동자연대, 사회진보연대(사회진보를위한민주연대), 전북의 현장연대(노동의미래를여는현장연대), 부산의 투쟁연대(부산노동자민중투쟁연대), 광주의 실천연대(민중실천연대)가 모였다. 노동자의 힘에 대한 우리의 길고 긴 짝사랑과 구애가 안타까워 보였는지, “사회당과 노동자의 힘의 통합은 조직형식상 부적절해 보이니 사회당과 친한 전노회가 노동자의 힘과 합치는 것이 어떠냐”는 힌트가 있었다. 그 와중에 노동자의 힘이 자기 해소까지 시사하며 좌파 모이자고 하니 전노회는 거기에 참가했다.
어떤 식으로든 좌파가 모이고 통합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기는 한데, 한편 우리는 걱정이다. 그것의 결론이, ‘비제도적 투쟁정당’으로서 사회당과의 통합을 거절하며 대립했던 노동자의 힘의 연장이 될까 봐. 아니, 오히려 어떤 결론도 빨리 내지 않은 채 합법정당과 노동자운동으로의 좌파의 분화 발전을 가로막을까 봐. 그 흐름에 대한 노동자의 힘 측의 기대는 “노동자의 힘의 확대 재편”이라는 관측이 이미 세간에 파다하다.
우리는 노동자의 힘이 그 미발아(未發芽) 상태를 빨리 청산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노동자의 힘이 자신들의 진로를 정치조직인지 노동자운동조직인지 분명히 정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정말 사회당과 통합할 조직인지 전노회와 통합할 조직인지 분명히 하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우리는, 노동자의 힘이 좌파의 노동자 통일전선에 힘을 싣고, 일부 유력한 40대 동지들은 통일좌파 합법정당의 지도부에 참가하는 모습으로 분화하기를 바란다.
이 참에 우리는 일부 좌파의 막연한 합법정당 비토(veto) 노선, 즉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에 대한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힌다. 마치 반(半)합법 미(未)분화 상태가 자동적으로 전략적 지위에 자리 잡고 있는 듯이 암시하는 태도는 이제 청산되어야 한다. 비능률적인 반합법 단체로서 합법정당이 해야 할 역할과 노동자대중운동이 해야 할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미분화 노선은 이제 청산되어야 한다.
8,90년대 정파운동이 비공개 비합법이라는 조직 형식 자체로서 소위 ‘전략단위’를 자임했던 풍습의 잔재는, 합법정당과 합법 총연맹의 시대에는 반합법 정도의 자세로서도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사고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특정 대중운동 영역에 편중된 수백 명의 반합법 회원단체와 전략적 지위 사이에는 아무런 논리 연관이 없다.
어떤 조직이 소위 전략적 지위에 있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 둘 중 하나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질을 중심으로 따진다면, 그것은 가장 질이 높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강철의 규율이 유지되는 조직이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불가피하게 높은 문턱을 가진다. 즉 그것은 노동자의 힘처럼, 지지하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회원단체일 수 없다. 그것이 아니라면, 모두를 포괄하는 양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즉 앞서 말한 것처럼 각각의 운동 영역별로 ‘우선 분화하고’ 각 영역의 좌파를 모두 포괄한 조직들이 ‘다시 모여’, 상향적 통합으로서 그 위에 만든 조직이라면 그것은 좌파의 전략조직일 수 있다.
여기서 소위 전략당, 전술당 문제에 대한 사회당의 태도를 밝히겠다. 그런 용어가 별로 과학적인 용어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따로 시비하지 않겠다.
사회당은 얼마든지 통일좌파의 ‘전술당’이 될 용의가 있다. 다만, 사회당을 전술당으로 편성할 수 있는 전략 주체가 있어야 사회당도 전술당이 될 수 있다.
만약, 한 반합법 정치단체 또는 그런 것들 세 개가 모여, 회원수가 사회당의 1/10에 불과한 조직력으로 자기를 전략 단위라면서 사회당은 그 밑에서 전술당 하라면 곤란하다. 반합법이니까 합법보다 무조건 위라면, 그 반합법, 합법 모두 “혁명적 사회주의자 일동” 따위의 문서를 내는 비합법 소그룹의 전술 단위가 되어야 한다는 말로도 될 것이다.
1영역 1조직 노선에 기초하여 각 영역에 통일좌파 조직들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모여 그 위에 편성한 전략조직, 즉 위에 말한 ‘통일좌파회의’가 만들어진다면 사회당은 얼마든지 ‘전술당’ 하겠다. 그런데, 그 때는 통일좌파 노동자운동조직도, 또 통일좌파 학생운동조직도 그것의 전술 단위이다.
합법정당에 비하여 반합법 단체가 얼마나 비능률적인 조직노선인지는 이미 존재 그것 자체로 밝혀졌다. 한청련은 청년진보당을 거쳐 사회당이 됨으로써 스무 배로 커졌다. 그런데, 청년회 따위가 감히 어깨를 맞댈 수 없었던 전국 노동자운동 단체들의 연합, 전국노련이 일부 교수들과 일부 노정연과 함께 만든 노동자의 힘이 같은 기간 성장했다고 볼 수 있을까? 지명도는 또 어떻고? 사회당을 들어 본 국민이 노동자의 힘을 들어 본 국민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면 증명 안 된다고 반박할까? 비난자들이 말하길 사회당은 “어린애들의 조직”이란다. 그 말을 듣고 돌아보면 노동자의 힘은 정말 “기라성같은 맹장들의 조직”이다. 그런데? 그래서? 사회당이 그렇게 성장하고 이런저런 일을 한 3년 동안 노동자의 힘은 무얼 했나? 거기에 있는 동지들 각각이 현장에서 한 일 말고, 그렇게 모여 “노동자의 힘으로서 무얼 했냐”는 말이다. 사회당 당원들이 노동자의 힘 회원들보다 우수한 사람들이라고는 우리도 생각 안 한다. 그러나 사회당이 노동자의 힘보다 능률적인 조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반합법 정치단체는 합법정당에 비하여 극도로 비능률적인 조직노선이다.
노동자의 힘이 전국노련에 비하여 노동자운동의 장악력에서도 별로 개선되지 못한 것은 진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그 안의 노동자운동가들이 그렇게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학출 노동자운동가들이 또는 그들의 공개조직이 공장 밖에서 공장 안의 현장조직을 벨트로 조합운동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노선은, 스스로의 세력을 구성하지 않음으로써 ‘중앙’ 권력을 유지하는 노선보다도 노동자운동 장악력이 열등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현장파임을 자각했던 활동가가 중앙파임을 자각했던 활동가에 비하여 훨씬 많았고 훨씬 헌신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파는 언제나 대(對)국민파 전선에서 중앙파의 하위 파트너에 머물러 있었던 것에 노동자의 힘의 조직노선상의 문제는 없었을까?
총괄적으로 볼 때,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은 통일좌파를 향한 염원이 담고 있는 조직노선으로서의 결론, 통일좌파의 전략조직을 대신하겠다는, 터무니없이 오만한 노선이다. 하나가 아니라 세 개가 모인다고 해도 질의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거니와 양의 문제도 전략조직과는 거리가 멀다.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은 또한, 합법정당과 노동자대중운동으로 원활하게 구별 정립하면 좋을 사람들을 심지어 학생운동과 이론운동을 향해야 할 사람들까지 미분화 상태의 무거운 불활성 조직에 묶어 두는, 즉 매우 비능률적인 노선이다. 대중은 노동자로서 학생으로서 여성으로서 유권자로서 존재한다. 노동자운동과 학생운동과 여성운동과 합법정당운동에는 고유의 대중이 있다. 그런데, 반합법 정치단체의 대중이 어디에 무엇으로 있는가?
좌파가 금과옥조로 받드는 노동자계급의 계급 정치는 선진노동자들과 학출 노동자운동가들이 그것을 표방하는 정치단체로 모여 있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여 있을 뿐 그것으로서는 활동할 수 없다면, 계급 정치도 실종된다. 노동자계급의 계급 정치는 사회주의 합법정당을 통하여 ‘제도권 정치투쟁’의 영역에서, 또 노동자대중운동이 숨쉬는 노동 ‘현장의 투쟁’으로, 또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전략조직, ‘통일좌파회의’같은 것의 지휘에 의하여, 구현된다.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은 이미 실패가 증명되었다.





이 부분에 대한 서술에서는 다른 운동 영역에 대한 서술과 달리 분명한 주체, 대상의 명칭을 적시하지 않겠다. 이 점 널리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노동자운동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감을 가지고 있는 동지라면 누구나, 아무리 노골적으로 서술한 이와 같은 글에서라도 여기서는 이렇게 가려야 한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전혀 감이 없는 동지들을 위하여 주체, 대상의 정치적 스펙트럼의 범위는 이 글 <1.1. 1997년의 좌파 분열>에서 거론한 세 갈래 좌파의 영역에 다 걸치며, 어느 정도 중간(‘중앙’이 아닌)에까지 걸친다는 점만 말해 둔다.
2002년 4월 2일. 민주노총은 완전히 쓰러졌다. 그러나, 쓰러진 것은 민주노총만이 아니다. 그 때, 현장파, 혹은 좌파도 쓰러졌다. 왜냐고? 민주노총 권력을 쥐었던 것은 국민파고 중앙파인데 그 때 왜 현장파가 쓰러졌냐고? 어떤 좌파가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들은 아마 그 때 “중앙파 물러나라고 주장하며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도전하자”고 토론했을 것이다. 즉 4월 2일 직후가 좌파의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만약 그래서 덜컥 중앙파가 물러났다 하자. 그렇다면 현장파는 민주노총이나 금속연맹을 운영할 능력이 있나? 천만의 말씀이다. 주요 대공장의 조합 집행부에 현장파가 많으면 그게 그렇게 저절로 되나? 그 현장들이 완전히 무너져 있는데도? 민주노총의 다수파로서 확고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끊임없이 민주노총을 우경화하려 한 국민파보다, 선진노동자들의 굴복과 타락의 후과를 끌어 안으며 끊임없이 중앙권력을 향해 힘을 모아 온 중앙파보다, 4월 2일의 사태로 현장파가 훨씬 큰 타격을 받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한 때는 어느 정도의 긍정성을 인정받아 붙여졌던 이름 ‘현장’파이다. 그러나 현장들이 이미 참혹하게 무너져 있었다. 구조조정의 태풍이 처참하게 할퀴고 지나간 대공장에는 언제 잘릴지 모르니 회사 잘 나갈 때 벌어 두자는 노동자들의 ‘개별적 생존권 투쟁’이 처절하게 진행 중이다. 모든 잔업과 철야에 나서고 1년 중 363일을 일하다 과로사하는 무절제한 정열로 4~5,000만 원의 연봉을 수령하는 살벌한 생존권 투쟁 말이다. 노동자는 단결하여 하나일 때 위대한 것이지, 그렇게 원자화되어 개별적으로 자기 생존에 몰두할 때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간신히 전열을 정비하여 총파업 대오를 편성했는데, 4월 2일의 비극이 있었다. 민주노총에 대하여 대중이 절망(!)했다. 그것은 민주노총의 권력을 쥐고 있는 어떤 파에 대한 불만에 그칠 수가 없는, 전혀 다른 수준의 것이다. 그것은 민주노총이라는 질서 자체에 대한 절망이다. 결국 그것은 민주노총의 근원이었던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절망이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조운동의 총결로서 조직된 것이었다. 그 민주노조운동에 대하여 대중이 절망했다. 민주노조운동이라는 근본적 수준에 대하여 대중이 절망한다면, 투쟁하는 계급대중이 있어야만 자기로서 존재할 수 있는 좌파는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싸우는 계급대중이 없다면 좌파도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국민’파가 또 ‘중앙’파가 왜 그렇게 탁월한 정치노선이며 조직노선인지를 알 수 있다.
주요 대공장에 일정한 기반을 갖고 있으면서도, 비정규직 투쟁에 특별한 책임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총연맹과 각급 연맹에서 허구한 날 총파업을 주장하고 영원한 불평불만자로서만 기능하거나, 분열된 상태로 때마다 개별적으로 중앙파에 포섭됨으로써 중앙파가 국민파를 견제하기 위하여 필요할 때만 이용하려 덤비는, 구차한 신세를 청산하자. 이제 현장파 그만 하자. ‘중앙’에 대하여 ‘현장’이라는 하위 파트너로서의 이름을 벗어 던지자. 우리, 좌파가 되자. 노동자운동의 통일좌파가 편성된다면 그것은 실제로 총파업의 주력 부대를 책임지는 힘이 될 수 있다.
여기서 한번 더 저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을 경계한다. 우리는 ‘1영역 1조직’ 노선이 가장 정확하게 이해되어야 할 영역이 바로 노동자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이 합법정당의 통일좌파 형성을 방해하는 것도 어느 정도 문제지만,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드러나므로’ 오히려 좀 쉬운 문제이다. 더욱 중요하고 골치 아픈 문제는 그것이 2002년 한국에서 노동자운동이라는 하나의 영역에 하나의 통일좌파 조직이 형성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일부 좌파 단체를 흡수 통합하여 노동자의 힘을 확대 재편하고 거기에 노동위원회를 두면 노동자운동의 통일좌파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노동자의 힘이 원래 그런 취지로 제출된 조직노선이었다. 그렇게 3년을 실험해서 안 된 것을 똑같은 주체가 똑같은 노선을 통하여 실현할 수 있다고 누가 믿을 수 있는가? 노동자의 힘보다 힘이 모자라는 좌파 노동자운동 단체들의 상황도 크게 다를 수 없다.

주체는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현장파는 각각 해체되어야 한다. 한동안 마치 민주노조의 기관차처럼 인식되어 왔던 현장조직 자체가 이미 자본의 노무관리에 확실하게 포섭된 민주노조(?)의 한계에 철저하게 갇힌 채로 노조집행부 쟁탈 선본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사업장 밖에 존재하면서 해당 현장조직의 배후로서 그것을 자기 재산이라고 인식하던 학출 활동가들과, 어쩔 수 없이 현장의 사령관일 수밖에 없는 최(最) 선진 노동자들의 지위는 90년대를 거치면서 역전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낡은 운동 관계가 새로운 운동력의 형성을 가로 막고 있다. 각각의 학출 대오의 인연에 따라 나뉘어 있는 범 현장파를 각각의 수준에서 해체해야 한다. 현장의 사령관들이 직접 만나야 한다. 그렇게 현장의 좌파 노동자들끼리 직접 모이고, 또 그렇게 전체 좌파의 노동자운동 통일전선이 구축되어야 한다. 특별한 소명의식으로 장기간 활동한 안목과 노하우를 가진 학출 활동가들은 그 대오를 지지, 엄호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옳다.
이미 상황은 낙관적이다. 저 끔찍했던 4월 2일을 경험한 좌파는 민주노총과 각급 연맹에서 철수했거나 태업하고 있다. 이번 민주노총 부위원장 선거에서도 저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을 제외한 전체 좌파가 그 선거에 대하여 대화도 주고받지 않을 정도로 사실상 선거에 불참하고 있다. 좌파가 움직일 수 있는 전체 노동자 대오의 제2노총 철수가 임박한 듯한 형국이라고 농을 해도 될 정도의 분위기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좌파 노동자운동가들은 이면에서 일제히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모두 조직적 과제이다. 그것이 비록 아직은 산업별로 지역별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으며, 또 일부 핵심들에게 국한되어 있지만, 그 논의는 결국 여러 산업 부문을 포괄하여 전국적으로 통합되고 대중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사실 이 움직임이야말로 ‘통일좌파’를 향하는 데에서 가장 중요한 발걸음이다.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2002년의 이 기운이 희망적인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이다.
우선, 활동가들이 흔히 쓰는 속된 말로 논의에 임하는 활동가들이 “자기 재산 지키기”에 연연하는 태도가 거의 없다는 점을 평가해야 하겠다. 실로 예전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마다 노동자운동에 투신한 지 수 년, 십수 년을 헤아리는 베테랑들이 그 세월의 자기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관계들에 대하여 자기 것이라는 오래된 무의식들을 포기할 태세이다. “자기를 버리고, 전투적 노동자운동을 통일하여 하나의 사회주의 노동자운동 대오를 편성하자”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다음으로, 한국의 전투적 노동자운동에서 전통적으로 중심이었던 부분에서부터 변방이었다가 최근에 중요성이 급격히 부각된 부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광범위한 층위에서 토론이 전개되고 조직화 작업이 전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직형식적 통일 대오의 편성은 이미 합의된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그 따위는 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논의의 수준은 진지하고 심층적이다. 현장을 추스르는 데에서부터 사회적 합의를 강제하는 묘책에 이르기까지, 조합과 현장조직에서 합법정당, 전략조직에 이르기까지 그 논의가 제한 없이 펼쳐지고 있으면서도 “중심에 대한 집중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런 흔쾌한 자세, 광범위한 참여, 펼쳐져 있는 논의 구조가 뭐가 잘 되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어떻게 해도 아무리 해도 기존의 방법으로는 안 된다는 점에 대하여 모두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반성이다. 진짜 뼈가 깎이고 살이 저며지는 느낌 속에서 이러한 반성의 전반적 기운이 저절로 합의된 것과 다름없다.
비정규직과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지금도 굴욕스런 저임금과 고통스런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공장의 조합원들은 ‘개별적 생존권 투쟁’에 몰두하고 있다. 대의원, 소위원들의 조직 사업이라는 것은 조합원들의 일탈적 요구에 대한 민원 챙기기 수준이다. 그러는 동안 자본은 작은 권력과 돈 맛을 알게 된 상층 간부들을 각종의 희한한 수단으로 얽어매 놓고 있다. 속칭 ‘쥐약’이 현장의 곳곳에 살포되어 있다. 모두 상식으로 아는 것처럼 임금인상 투쟁 아무리 해 봐야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고취할 수 없다. 또한 총자본이 일체가 되어 개별 공장들을 하나씩 박살내는 구조조정 정리해고에, 기업별로 고립된 노동자들의 저지 투쟁은 승리할 수 없다.
그러한 ‘심층적’ 반성의 결론은 결국,

현장의 주체 재형성이다.

노동자들은 처음부터 ‘변혁적 계급의식’으로 재조직되어야 한다. 예컨대 임단투라면 내 공장의 임금을 올리라는 저열한 요구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의 노동력재생산비용을 낮추라는 계급적 요구를 가지고 단결하여 싸울 수 있는 현장 주체로서 재조직되어야 한다. 반드시 과격하고 전투적인 인상을 풍기는 투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투쟁 대오에 동참한 사람들 하나하나가 전체 노동자계급의 일원으로서 자기 투쟁의 요구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개별 사업장, 개별 산업 부문의 요구가 다시 전체 노동자계급의 요구로 되는, 그런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재형성되는 현장 주체의 이념은 결국 이것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는 하나다.

동지들! 힘을 내자. 우리도 천만 노동자계급에게 떳떳한 통일좌파가 되자.





학생운동의 전학협(전국학생회협의회), 연대회의(전국학생연대회의), 전학대협(전국학생대표자협의회), 행동연대(학생행동연대) 등 모든 그룹을 해산하고 하나의 조직으로 만들자. 뜻 맞지 않는 민주노동당 안에서 불편해 하는 ‘다함께’까지 포함하여 모든 좌파를 하나로 만들자.
90년대 초반에 좌파 학생운동을 전대협에서 분리시키자는 주장은 일부의 호응에 그쳐 전국학생연대(학생연대)라는 “또 하나의 학생 그룹”이 탄생하는 데에 머물렀다. 그리하여 학생연대-전학협과 대장정(대장정 학생연합)-연대회의 등은 좌파 학생운동의 패권을 놓고 경합해 왔다. 그러나, 자기들끼리는 그렇게 심각하게 치고받는 학생운동이지만, 그 학생운동이야말로 자기 영역의 한계를 넘어 전체 운동의 운명을 염려하는 성숙한 사고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사실 솔직히 말하여 이 점에서 좌파 학생운동은 그들이 하늘처럼 받드는 좌파 노동자운동보다 열 배는 낫다. 이미 한총련과의 분리는 각각의 좌파 학생 그룹 수준에서 실현되어 있으므로 조건은 10년 전과 다르다. 사회운동에서도 좌파가 분리되어 있으므로 학생운동에서의 좌파 분열 상태가 특별한 이슈로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좌파 학생운동의 분열 상태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것은 다른 영역처럼 분열이 자체로서 대중 활동에 결정적인 장애 요소라는 문제만 품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영역과 구별되는 학생운동의 특별한 이유가 또 있다. 학생운동의 분열 상태가 사회운동의 분열 구조를 계속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우리 솔직하게 말하자. 학생연대와 대장정으로 나뉘어 싸우던 감정의 앙금이 사회당과 사회진보연대의 실무자들 사이를 여전히 서먹서먹하게 유지시키는 첫 번째 이유 아닌가? 또 그렇게 선배들이 나뉘어 있으니, 후배들은 여전히 전학협과 연대회의로 나뉘어 있는 것 아닌가? 이제, 제발 그만! 하자.
동지들! 힘을 내자. 다 훌훌 털고 우리도 백만 학생대중에게 떳떳한 통일좌파가 되자.





대선 국면을 맞이하여 노동자의 힘 내 일부 동지들은 무소속 좌파 후보 노선을 제기하기도 한다. 설마 합법정당인 사회당이 그것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일부러 사회당이 못 받을 안을 내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거의 불발탄이 될 모양이지만, 저 범추(2002년 대선승리와 범진보진영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범국민추진기구)도 범추의 대선 후보를 진보정당 후보로 출마시키자고 합의했었다. 전국연합도 민주노총도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도 한총련도 아는 것을 왜 ‘정치’조직인 노동자의 힘에 속한 동지가 모르는지 딱하다. 비제도적 투쟁‘정당’ 노선에 서 있는 동지가 말이다.
어쨌든 현재의 사회당이 독자적으로 내세우는 대선 후보를 무조건 지지할 수 없다는 정치 현실이 문제라면, 에둘러 표현할 필요는 없다. 모든 좌파가 흔쾌히 지지할 수 있는 대선 후보를 만들어 내자.
물론, 첫 번째 원칙은 투쟁 속에서 치러지는 대선, 대선을 통한 좌파 대단결의 대중 투쟁이다. 이 원칙에 반대할 좌파는 없으므로 이것은 논란거리가 못된다.
문제는 합법정당이라는 형식과 사회당이라는 현존재에 대한 감성이다. 한국의 좌파에게는 일부, 합법정당이 선거에 부합하는 조직형식이라는 상식조차 부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기의 현존재가 합법정당이 아니라고 해서, 현재의 사회당 주류를 안 좋아 한다고 해서, 상식적으로 인정되어야 할 당위조차 부정한다는 것은 비겁하다. 왜 선학(先學)이 “과학의 입구에서 필요한 것은 용기”라고 했겠는가?
모든 좌파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사회당이 문제라는 것 아닌가? 그것이 핵심 아닌가? 그렇다면, 모든 좌파를 포괄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합법정당을 만들자.
그것을 위해서라면, 사회당은 무엇이든지 양보하겠다. 아니, 사회당 자체를 통째로 좌파의 공기(公器)로 내놓겠다. 다만, 사회당이 사회당인 이유, 그것이 부정되는 것만은 안 된다. 좌파의 합법정당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는 92년부터 노력해 왔다. 이 미숙한 사회주의 합법정당도 우리가 10년 세월, 한 발짝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피땀을 흘려 이룩한 것이다.

무소속 대선 후보는 안 된다.

노동자운동이나 학생운동과는 달리, 합법정당운동 영역에서는 다른 합법정당을 편성하고 있는 좌파 대오가 없다. 이러한 조건은 통일좌파가 이루어진다면 자동적으로 현재의 사회당이 그대로 통일좌파의 합법정당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형식 논리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각자가 사회당의 주인이듯이 아직 사회당의 바깥에 있는 좌파 동지들도 사회당의 주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당은 아직도 미(未)사회당이다. 8월 25일로 예정되었던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를 무려 두 달씩 늦춘 이유도 통일좌파에 대한 염원 때문이다.
다른 좌파의 지도적 동지들이 사회당과 어떻게 잘 해보고자 해도 자기 조직대중 일반의 사회당 비토(veto) 정서 때문에 행보가 쉽지 않은 것과 똑같은 상황이 사회당 안에도 있다. 사회당 안에 이미, “다른 좌파에게 기대할 것이 적으니 사회당이 독자적으로 대선을 돌파하겠다는 결의를 조기에 밝히자”는 주장이 있었다. 그 주장의 요체는 대선을 대선답게 충분히 준비하여 치르자는 것이었다. 8월로 예정했던 전당대회를 10월로 연기한 것은 그런 주장을 하는 동지들도 통일좌파를 원하는 마음에서 똑같고 또 현재의 당 지도부가 통일좌파를 추진하는 것에 대하여 믿고 기다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원래 8월 전당대회를 준비하기 위하여 모였다가 그것을 연기한 7월의 중앙위원회였다.
결국 사회당의 대표, 대선 후보 선출 전당대회는 2002년 10월 20일(일)에 열린다. 전당대회는 아주 많은 준비가 필요한 행사이다. 그만한 행사를 위한 장소 섭외부터가 만만치 않다. 사회당은 9월 15일 중앙위원회에서 그 전당대회의 골격을 정한다. 말하자면, 사회당이 이번 대선을 다른 좌파와 함께 할 것인가, 즉 그것을 통하여 통일좌파 합법정당이 탄생할 것인가, 또는 사회당 혼자 이번 대선을 치를 것인가, 그 결과 이 지루한 좌파 분열 상태가 더 연장될 것인가가 9월 15일에 정해진다.
사회당이 10월 20일 전당대회를 통합 좌파정당의 창당대회로 정할지, 지금까지의 사회당 대오로 대선을 돌파하는 결의대회로 정할지는 다른 좌파 동지들의 태도에 달려 있다. 후자가 된다면 현재의 당헌상 사회당은 그 중앙위원회에서 즉각 당내 대선후보 등록을 공고하고 한 달 여의 대선후보 선출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좌파 동지들! 이 9월 15일 전에 무언가 보여 달라. 9월 15일 전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면, 우리도 할 수 없다. 현 사회당의 대표권한대행 체제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아직도 모르는 좌파는 없을 것이다.
노동자의 힘 동지들!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을 포기하라. 좌파의 리딩 그룹답게 통일좌파 합법정당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해 달라. 이번 8월의 수련회에 참가한 모든 좌파 동지들!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과 절연하라. 동지들의 전반적 대오는 좌파 노동자 통일전선을 향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동지들 중에도 통일좌파 합법정당이 만들어지면 거기서 일해야 할 동지들이 있다.
경향 각지의 좌파 동지들! 통합 좌파정당을 이번 대선 국면에서 만들자.

사회당도 ‘그 중 하나’가 되겠다.

민주노동당 내 인천 좌파 동지들과 평등연대 등 민주노동당에 있는 좌파 동지들에게 말한다. 동지들, 좌파답게 자기 인식에 충실하자. 민주노동당을 개혁할 수 있다는, 안 되는 희망은, 이제 버리자. 동지들! 결단하라.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라. 지금이 때이다. 언제까지나 황당무계한 일들 속에서 울분을 삭이며 남의 집에서 곁방살이 할 것인가? 거기가 왜 남의 집인지 동지들이 잘 알지 않는가? 그것을 우리가 설명해야만 아는가? 통합 좌파정당이 동지들의 집이다. 자기 식구가 사는 곳이 자기 집 아닌가?
노동자대중이 거기 있다고? 민주노총이 그 당을 지지한다고? 우리, 그런 정치 현실 자체를 바꾸자. 좌파가 완벽하게 구별 독립한 통합 좌파정당을 구성하고 좌파 노동자 통일전선을 구축하자. 그 힘으로,

2003년에 민주노총을 재편하고,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라는 정치 방침 자체를 바꾸자.

좌파여, 희망을 갖자. 이 정도로 희망적인 상황에서도 결단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언제 좌파가 지긋지긋한 주변, 비주류의 신세를 청산하고, 운동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
이 제안에 관심이 있는 동지라면 궁금해 할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사회당의 ‘기득권 포기 의사’를 요약하여 밝히며 글을 맺겠다.

좌파의 대선 투쟁도 통합 좌파정당에서 논의하자. 후보도 거기서 선출하자.

동지들! 힘을 내자. 우리도 민중에게 떳떳한 통일좌파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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