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도시 |
<현장>무주군청 앞에서 골프장도시 반대하는 주민들 |
영하 15도에 농성하는 팔순 노인의 울분...잘 살게 해주겠다고 고향을 떠나라고? "덕곡에서 태어나 열 네 살 때 두문리로 시집와서 60년 넘게 살고 있어. 잘 살고 있는 나를 잘 살게 해주겠다고 고향을 떠나라고?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생각하면 분해서 벌떡 일어난당께. 말이 그렇지, 팔십이 넘은 할망구가 한대 잠을 자면서 왜 이렇게 싸우게 만드냔 말여! 땅이라고는 집터 100평 밖에 없는디, 공시지가로 보상금 받아서 어디 가서 살란 말여. 나 못나가 억울해서 못나가! 분해서도 못나가! 내가 송장 되기 전에는 못 나가!" 눈물을 훔치고 마는 할머니, 어찌 할머니만의 설움이랴. 시집 온지 28년이 됐지만 두 동네에서 가장 젊어서 새댁이라는 딱지를 아직도 달고 다니는 이순덕씨(54·두문리)가 울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동네 모든 사람들의 분노였다. "우리의 권리를 찾아야지요. 지금 그 자리에서 지금처럼 없으면 없는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이 우리의 권리지요. 우리 남편은 뱃속에서 나와서 배운 것이라고는 농사 밖에 없는디. 회갑이 다 되어서 어디 가서 무엇을 해서 먹고살아요. 돈 벌게 해달라고 말한 일도 없고 잘 살게 해 달라고 사정한 일도 없는디. 이것들이 잘 살게 해 주겠다면서 집과 땅을 강제수용해서 날로 먹을라고 헌당께. 이주대책으로 집 하나 저주지 못하는 회사가 무슨 기업도시를 만든다고 그려. 지금 이대로가 행복한디. 왜 길거리로 내몰려고 하는 거여. 우리 집 창고에서 쌀가마를 다 훔쳐 가는 도둑을 맞았다고 해도 이 만치 분허진 않을 거여."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있는 옆 천막. 두문리에서 나고 자랐다는 서영석 할아버지(72)가 구호를 외치느라 쇳소리처럼 쉬어버린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골프장 기업도시가 선정되었을 때 공시지가가 논은 4만8000원이고 밭은 3만7000원이었는디 그 가격으로 하면 논 2000평 밭 1000평인께 1억4천 정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디. 그 돈으로 전주에 가서 전세로 들어간다고 해도 무엇을 해서 먹고 사냔 말여." 두문리에서 태어나 그곳을 떠나 본적이 없는 박찬형 할아버지(64)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말을 쏟아냈다. "난 논 서 마지기 600평인디, 그 보상금으로 어디 가서 살란 말여. 지금 살고 있는 집터도 남의 것이라 일 년에 쌀 서말씩 주고 있는디. 이 나이에 어디 가서 기술을 배울 수도 없잖소. 등 따습게 배부르게 살고 있는디 어디로 나가란 말여." 군청 본관 앞에 '잘 사는 무주, 행복한 군민'이라는 네온간판이 천막을 비추고 있는 밤거리는 아직도 진눈깨비가 날리고 있었다. 동네 주민의 차를 타고 마을로 들어갔다. 수려한 산들과 계곡의 냇물을 따라 가는데 신비한 불빛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마치 붉은 노을이 산을 휘감은 것처럼 황홀한 풍경이었다. 그것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현대인, 계곡과 숲까지도 잠들지 못하게 하는 개발과 성장의 도깨비 불빛이었다. 야간 스키장의 찬란한 서치라이트 불빛의 덕유산이 결코 황홀하지 않는 것은 왜 일까. 내 땅은 10만원도 못 받고 팔고서 40만원에 택지 분양 받으라고? 다음날 오전 10시, 두문리 주민들에게 천막농성을 맡기고 교대를 기다리고 있는 덕곡리 마을회관을 찾았다. 할머니 아주머니 20여분과 할아버지 아저씨 10여분이 모여 있었다. 읍내 나가는 버스 시간을 기다리던 이길순 할머니(67·덕곡리)가 울분을 토해 냈다. "우리는 밭 600평 논 700평 있는데 7남매(2남 5녀)를 허리가 부러지도록 가르치느라 농협 빚이 몇 천 만원이여, 보상금 받아서 빚잔치도 못하는데 어떻게 나갈 수 있당가. 이 늙은이를 써줄 곳도 없고 어디 가서 할 것도 없는디. 나가면 죽기 밖에 더 허것어."
"대한전선에서 공짜로 집을 지어준다고 해도 고향을 안 떠날 판인디. 자기 땅 10만원에 팔고 새로 조성된 택지를 40만원에 분양 받을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설령 5년 거치 15년 상환 주택자금 융자받아서 집터 분양 받고 집을 짓는다고 해도 무엇을 해서 그 융자를 갚을 수 있단 말입니까? 옆의 진안군에 용담댐이 건설되면서 많게는 몇 십억 보상금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80% 이상이 도시에 나가 이것저것 하다가 다 망해서 다시 고향 사람들 곁으로 돌아 왔어요. 친구들과 친척들이 그런 꼴을 당했어요. 더구나 5천 평이 넘는 세대가 기타 마을까지 151세대 중 10세대도 안 됩니다. 대부분 농협 빚 갚고 나면 알거지가 되는데 누가 골프장 기업도시를 찬성하겠어요." 할머니들이 점심을 준비하고 있는 방문을 열었다.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결의를 보여주겠다며 '골프장 기업도시 절대 안 돼! 절대 안 돼!' 구호를 외친다. 점심때가 되었으니 밥 먹고 가라는 할머니들의 성화를 뿌리치고 군청으로 달렸다. 다행히도 점심시간 전에 도착했다. 국책사업단 사무실에서 무군군청 기업도시 담당 소장을 만났다. - 군과 대한전선에서 주민들 보상이나 이주대책을 어떻게 세우고 계십니까? "마을 대표단이 구성되지 않아 구체적인 보상이나 이주대책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계획으로는 243만평 부지 내에 2만3천 평의 택지를 조성해서 두 마을 주민들에게 분양할 계획입니다. 지금 예상되는 조성가는 39만9300원입니다. 5년 거치 15년 상환 주택자금도 마련했습니다."
- 자기 땅을 10만원도 못 받고 팔고서 40만원인 택지를 분양 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빚을 얻어서 택지를 분양 받아 집을 마련했다고 합시다. 땅 100평에 집 30평이면 평균 1억 정도가 빚인데 그 빚을 농토도 없는데 무엇을 해서 갚을 수 있겠습니까? "골프장 조경과 수목관리, 농특산물 가공단지, 조경사업 위탁시행, 민박집 등의 수익사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 골프장 잡초를 뽑거나 나무에 물을 주면서 어떻게 1억이 넘을 빚을 갚을 수가 있지요. 골프 치는 사람들이 호텔을 두고서 민박집에서 자겠습니까. 계곡도 골프장 안으로 들어가서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없는데 어떻게 민박을 해서 먹고살겠습니까? 일반인들이 민박을 하면서까지 줄을 서서 골프장 관광이라도 한단 말인가요. 151세대가 다 민박을 하고 골프장에 취업할 수 없는데. 담당 소장은 사업계획서를 넘기며 향토박물관, 전통한옥마을, 농산물 가공공장 등 장밋빛 계획을 설명했다. 이주대책은 현실성이 고려되지 않은 것 처럼 보였다. 소장의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5천 평이 넘어 보상액이 어느 정도 되는 세대가 기타마을까지 151세대 중 10세대도 못 된다'는 공동대표의 말이 맴돌았다. 전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누가 돈 벌게 해 달라고 말한 적도 없고, 잘 살게 해 달라고 사정한 적도 없었다. 고향에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행복인데 왜 고향에서 쫓아내려고 하는가'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울분이 귓가에 쟁쟁거렸다. 시골 노인들의 생존과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도시
가진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비율이 20대 80이었던 우리 사회는 IMF 이후 10대 90의 사회로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입만 열면 양극화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목청을 높인다. 10%의 잘 사는 사람들을 위해 90%의 못 사는 사람들의 권리는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자기 집에서 자기 땅에 농사지으며 사는 국민의 최소한의 기본권리마저도 강제 수용할 수 있단 말인가? 기업도시 선정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사람들이 투기한 기업도시와 주변의 땅, 그리고 기업도시에 선정되지 않아 땅값이 몇 배로 오른 주변 사람들, 골프장이 들어오면 세금이 늘어나는 군청과 혜택을 보는 군민들을 위해 골프장 기업도시 예정지 151세대 주민들 대부분이 길거리로 내쫓겨도 아무렇지 않단 말인가. 그런 억울한 일을 막아야 할 정부가 오히려 기업도시를 통해 토지를 강제 수용할 수 있는 권한까지 합법적으로 줄 수 있단 말인가.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서까지 기업이 돈만 벌면 되고, 개발되어 땅 값만 오르면 그만이고, 나와 우리 가족들이 휴가 가서 잘 지내면 그만이란 말인가. 자본주의의 종주대륙인 유럽에서도 지하수는 미래세대의 것이라 개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무분별한 개발로 지하수도 심각하게 오염되어가고 있고, 개발과 성장을 위해서라면 덕유산 국립공원도 마구잡이로 개발하고, 천연기념물 수달을 쫓아내기 위해 저수지의 물을 바닥까지 빼버리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21세기 말 한반도에서 겨울이 사라지면 스키장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 백두대간 덕유산 국립공원 자락까지도 서슴지 않고 파괴하는 것을 인간이 중단하거나 막을 수 있지만, 그 파괴로 인한 환경재앙은 인간이 막을 수 없다. 지금 개발과 환경파괴를 중단하지 않으면 우리 미래세대에게 희망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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