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마도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광고일 것이다. 여성들이 주축이 된 패션 관련 카페인 '소울드레서'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일간지 1면에 광고를 냈다. 바로 이어서 미국 야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인 'MLBPARK' 회원들도 신문에 광고를 냈다.
정치적이지 않은 인터넷 모임 회원들이 1천만 원이 넘는 큰 돈을 모으고, 직접 광고를 만들어서 신문 1면에 실었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다. 물론 이런 식의 모금 활동이 완전히 없던 것은 아니다. 연예인 팬카페에서는 흔히 이런 식으로 돈을 모아, 연예인에게 선물을 하고 잔치를 벌이곤 한다. 이런 일이 정치적인 신문 광고를 내는 데까지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이 두가지는 표면상의 유사성보다 훨씬 큰 차이를 담고 있다. 정치적 의사 표현을 위해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돈을 모으고 광고를 제작한다는 건, 말 그대로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것)이다.
게다가 'MLBPARK'의 광고는 겉모습에서도 차원이 다른 세련됨을 자랑한다. 푼돈들이 차곡차곡 들어온 예금 통장 사진, 그리고 파란색과 빨간색의 강렬한 대조, “버스 세 정거장을 걸어갔습니다”,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사람에게 돈을 보냈습니다”, “아이가 울지만 로보트를 외면했습니다” 따위의 문구. 이 광고는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라는 자신들의 주장을 더 없이 세련되고 호소력있게 제시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정치적 의견 광고에서조차 '촌스러움', '감정 과잉'이 용납되지 않는 시절을 맞고 있다.
그 자리에 '태극기'가 난무한다고, '국가'와 '민족'이 판친다고 궁시렁거릴 일이 아니다. 태극기가 피 흘리는 사람의 붕대로 쓰이는 순간, 태극기는 전혀 다른 의미와 상징으로 거듭날 수 있다.
진짜 과제는 기존의 상징과 의미들을 새로운 상징과 의미로 탈바꿈시키는 일이다. 냉소적인 좌파들이 진짜 한탄할 것은, 대중의 모호성과 변덕이 아니라, 현장에서 새로운 상징을 만들어낼 능력이 없는 자신들의 무기력이다. 컴퓨터 앞에서 궁시렁거리기만 하리라고 생각했던 여학생들도 거리로 나서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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