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귀퉁이에 앉아 있는 운동권, 당신에게
[완군의 토마토 던지기] 2008년 5월 26일 서울, ‘알 수 없는 인생이라 더욱 아름다운 것’
완군 (공공미디어연구소) / 2008년05월27일 14시43분
확실히, 집회는 변해 있었습니다. 간만에 찾아온 ‘역동(逆動, 거슬러 움직임)’이었습니다. 집회가 역동이었다는 것은 운동이 ‘역능(力能)’을 회복하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선정적인 호들갑의 난무도 경계해야겠지만,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소녀’들을 인정하지 않을 방법도 없습니다. ‘스쳐가던 얘기뿐이던 집회’를 당연시했던 저는 더 이상 그/녀들을 ‘어리다고 놀리지’ 않을 작정입니다.
어떻게 상황이 여기까지 왔는가, 배후를 궁금히 여기는 조중동 만큼이나 당신도 사태를 분석해내고 싶어 한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정말 궁금합니다. '시사IN'과 '오마이뉴스'는 현재의 상황을 세대론으로 갈음하며 10대들이 이명박에게 빚진 것이 없다고 하지만 썩 내키지는 않습니다. 어떤 평론가는 ‘제도 정치를 종언하고 삶 정치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오히려 진부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겠고, 그렇게 ‘알 수 없는 인생이라 더욱 아름다운 것’ 아니겠습니까.
한 번도 투쟁해보지 않은 것처럼 투쟁하고 있는 학생, 직장인, 주부들 사이에서 당신의 모습은 오히려 조금 부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수십 수백의 집회에 참여했던 당신, 재작년부터 미국 소는 물론 한미FTA 자체를 저지하기 위해 무던히도 길을 뛰어다녔을 당신,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며 바닥에 앉아있는 것에 이골이 났을 당신인데 말입니다. 조중동이 말하는 배후(背後)설의 의미가 신체적인 등의 뒤를 말하는 것이라면 아마도 당신이 배후일 듯도 싶습니다. 당신은 시민의 등 뒤에 서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배를 앞으로 드밀어야 할 텐데 자꾸 망설여졌습니다. ‘국익’에 반하는 쇠고기 수입 반대한다는 구호에도 완결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웠고, 태극기를 휘감고 있는 학생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게 영 마땅치 않았습니다. 애국시민 여러분 함께 해달라는 외침에는 왠지 창피하기까지 했습니다. 맞습니다. 당신과 똑같이 저도 그날 대오 주변을 배회하고 귀퉁이에 앉아있고 잘 섞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굉장히 신났습니다. 5천 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시작한 행진이 을지로, 명동을 지나 종로에 도착했을 땐 1만 명이 넘게 불어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손을 흔들었고, 멈춰 있는 차량들도 예전처럼 사납지는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고립되지 않는 오히려 구심력을 갖는 행진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구일까요? 일단, ‘I LOVE MB'를 외치는 이들은 아닐 겁니다. 최소한 먹거리에 대한 각성과 주권에 대한 자존을 갖고 있는 이들일 겁니다. 어쩌면 사회 변화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분명, 그들은 지금은 팍팍하지만 언젠가는 자신도 돈보다는 생명이 존중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긍정하며 퇴근하는 이들일 겁니다.
그들을 애국시민이라고 부르던, 개혁 지지자들이라고 호명하던, 무더기 대중이라고 칭하던 상관없습니다. 운동은 거기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과 우리를 구별짓기 시작한다면 우리에겐 운동할 방법도 대상도 없어집니다. ‘계급과 투쟁의 사회학’을 조금 더 아는 ‘척’으로 우리 스스로를 구별하려고 한다면 운동권은 끝내 종속변수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지 못할 겁니다.
▲ 그들을 애국시민이라고 부르던, 개혁 지지자들이라고 호명하던, 무더기 대중이라고 칭하던 상관없습니다. 운동은 거기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과 우리를 구별짓기 시작한다면 우리에겐 운동할 방법도 대상도 없어집니다. /사진-참세상 자료사진 |
어쩌면 오늘의 상황이 모두 낭만이 되고, “그리움 남기고 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 미워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당신 마음속에는 이미 ‘너무 당연한 것 아냐’ 하는 합리적인 당연시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난 10년간 ‘개혁’과 ‘애국’이 의미했던 정치적 지향에 대한 환멸이 당신의 당연시를 더욱 의심하기 어렵게 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최근의 상황과 집회들을 유리하게 활용하려 몸부림치는 분탕질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냥 ‘경계’하고 일단은 그냥 예의주시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그 시민들의 투쟁에 기꺼이 시민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흔치 않은 정치적 체험이고, 사회적 경험입니다. 언제까지나 운동권만의 무의식적인 습관, 정치적 선호, 문화적 생활양식을 고수하며 시민들의 저항을 구별하려든다면 운동은 끝내 보편화되지 못할 겁니다. 이는 결국 당신의 주변에는 마음씨 좋은 선배의 감언이설에 속아 운동인 줄도 모르고 시작했다가 발을 빼야하는데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는 자조를 농담으로 하는 친구밖에 남지 않게 됨을 의미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반란이라고까지 칭해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좌빨’이라는 힐난이 여전히 ‘꼴통’이라는 경멸과 비등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당신의 대답은 여전히 ‘그들은 계급성이 없다’입니까? 오늘도 상황은 흐릅니다. 당신은 무엇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어제처럼 집회 대오 귀퉁이 보도블록에 앉아 있을 수도 있고, 세미나에 참여할 수도 있고, 동료와 시국을 논하며 술을 마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역동(力動, 힘차고 활발하게 움직임)’적 움직임을 기획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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